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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나비야 나비야 내 머리에 앉지 마라

중앙일보 2020.10.25 07:00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42)

올해 팔순인 엄마는 세상 문제 모두 앞에 갖다 놓고 근심한다. 엄마가 하는 근심을 살펴보면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사진 pixnio]

올해 팔순인 엄마는 세상 문제 모두 앞에 갖다 놓고 근심한다. 엄마가 하는 근심을 살펴보면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사진 pixnio]

 
연세 드실수록 행복보다 근심이 훨씬 많아지는 엄마. 곁에서 보면 사실 근심거리도 못 되는 일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올해 팔순인 엄마는 세상 문제 모두 앞에 갖다 놓고 근심한다. 엄마가 하는 근심을 살펴보면 80%는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나머지 20%는 일어난다 해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근심이 취미인 엄마를 보면 중독이 아닌가 생각들 때가 있다. 물론 나도 비슷한 면은 있다. 그래도 엄마보다야 낫지 않을까 자부하지만, 내 아이들이 나를 보는 견해는 내가 엄마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엄마의 근심은 매일 카멜레온처럼 목록이 바뀐다. 그날그날 뉴스에 따라 소재가 다양해지기도 한다. 어떤 아침에는 뉴스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늘었다고 하자 그것으로 그날의 첫 근심을 시작한다. 그러다 저녁이면 그 자리에 새로운 근심이 들어차 있다. 참 열정도 대단하시다. 또 어떤 날은 큰 비로 근심하고, 태풍으로 근심하고, 어떤 날은 비가 안 와서 근심하고, 또 어떤 날은 강풍이 분다고 근심하며 바람 피해 없냐고 전화하신다. 또 어떤 경우는 강도 사건 뉴스를 보고 아이들 괜찮으냐고 전화하시고, 밤에 절대 밖에 나다니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지난주에는 이 세상 알밤이 한꺼번에 다 떨어졌을 텐데 그걸 다 어떻게 할지에 대한 문제로 엄마의 근심은 며칠간 계속되었다. 또 며칠 전에는 세상 모든 산에 한꺼번에 떨어진 어마어마한 도토리에 대해 근심을 하셨다. 가을바람에 일제히 떨어진 밤과 도토리 걱정에 사로잡혀 나의 엄마는 사나흘을 국토부 장관이나 산림청장보다 더 깊이 한숨을 쉬셨다.
 
엄마의 근심이 당신 혼자만의 것으로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유감스럽게도 엄마의 근심은 잘 익은 사과처럼 두 쪽으로 쫙, 쪼개진다. 바쁜 내게 전화해 내가 그 반쪽의 근심을 나눠 먹길 바라시는 게 문제다. 참 집요하시고 대단한 나의 엄마. 이쯤 되니 엄마의 근심 실력은 가히 국가대표급이시다. 며칠에 한 번씩 전화가 걸려오면, 받기도 전에 오늘 엄마 근심은 뭘까 궁금해진다.
 
행복을 찾아 누려도 부족한 시간에 우리는 왜 근심하며 사는 것일까? 그 이유가 뭘까?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어떤 근심으로 힘들었다. 그때 곁에 계셨던 문단 대선배님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근심이란 나비를 떨쳐버릴 방법이 뭔 줄 알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말라는 거야. 내 정수리에 앉지 못하게 멀리 쫒아버리면 돼." [사진 pxfeul]

"근심이란 나비를 떨쳐버릴 방법이 뭔 줄 알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말라는 거야. 내 정수리에 앉지 못하게 멀리 쫒아버리면 돼." [사진 pxfeul]

 
“김작가, 미리부터 걱정하지 마. 일이 생기면 그때 걱정해도 늦지 않아. 근심이란 놈은 나비와 같아. 늘 우리 머리 위를 뱅뱅 돌며 정수리에 앉으려고 따라다니지. 그러나 그 근심이라는 나비를, 우리가 멀리 쫓을 수는 없어도 내 정수리에 앉지 못하게 할 수는 있어. 그것은 본인 의지에 달린 거야. 그 근심이란 나비를 떨쳐버릴 방법이 뭔 줄 알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걱정을 미리 사서 하지 말라는 거야. 내 정수리에 앉지 못하게 멀리 쫓아버리면 돼. 그런데 우리는 근심이라는 나비를 “어서 오세요” 하고 정수리에 턱 올려놓고 모든 근심을 사서 한다는 게 문제야. 이 얼마나 미련한 짓이고, 불행을 자처하는 일이며, 시간 낭비야? 우리 개개인을 놓고 자세히 보면 행복한 조건이 적지 않은데, 그 시간에 우린 행복과 기쁨보다 근심하는 것을 먼저 택하곤 해. 이건 참 불행한 일이야.”

 
그 후 근심이 나비처럼 머리 위로 날아다니면 나는 그 선배님의 음성을 떠올린다. 그리고 근심이라는 나비가 내 정수리에 앉지 못하게 막는다. 그런데 그 방법을 엄마에게 수없이 알려드려도 소용없다.

 
하기야 고려 25대 충렬왕 시기에 유배지에서 임금과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며 쓴 이조년의 시조 ‘이화에 월백하고’를 보면, 한밤에 눈부시게 배꽃 피고 은하수 흐르고 소쩍새 울어대니,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든다는데…. 근심도 이 정도면 꽤나 운치 있고 멋지긴 하다. 옛날 중국 재상인 범중엄이 쓴 『악양루기(岳陽樓記)』에 선우후락(先憂後樂)이라는 말이 있다. 선우후락은 세상의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하고, 즐거워할 일은 남보다 나중에 한다는 뜻으로 지사나 어진 사람의 마음씨를 이르는 말로 풀이되곤 한다. 참으로 멋진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엄마도 여기에 속하는 것일까? 이건, 며칠 생각 좀 더 해봐야겠다.

 
우리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며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비하지 말자. 아직 생기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근심보다 오늘 내가 잊고 있는 작은 행복과 기쁨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게 더 낮지 않을까.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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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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