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월간중앙] 北 피살 공무원 사건으로 본 청와대 보고 체계

중앙일보 2020.10.25 00:02
사고 당일 보고 이뤄지지 않았고 대통령 지시 없어
재·보선, 대선 앞두고 정무적 판단 남발 가능성 농후

[특별기획 | 정밀진단]
정치 과잉··· 의도된 시스템 오작동 가능성 없었나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북측의 통지문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9월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북측의 통지문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스템은 붕괴했고, 정치만 남았다. 공무원 피살과 관련한 청와대와 정부의 해명을 종합하면, 이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연합뉴스]가 긴급속보로 1보를 한 시점이 9월 23일 오후 1시 31분이다. 9월 21일 소연평도에서 어업지도선 승선 공무원이 실종돼 수색 중이라는 보도였다. 이에 앞서 국방부는 1시 30분쯤 언론 보도문을 내놓았다.
 
언론 보도문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지난 9월 21일 낮 12시 51분경 소연평도 남방 1.2마일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해양경찰에 접수됐음. (…) 신고 접수 후, 동일 13시 50분부터 현재까지 해양경찰 및 해군함정, 해수부 선박, 항공기 등 20여 대의 구조세력을 투입해 실종 해역을 중심으로 집중수색했으나, 아직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음. 한편, 우리 군 첩보에 의하면 9월 22일 오후 실종자가 북한 해역에서 발견된 정황이 포착돼 정밀 분석 중에 있음. 관계 당국은 실종 경위, 경로 조사와 함께 북측에 관련 사실을 확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나갈 것임.”
 
공무원이 피살된 시점은 22일 밤 9시 40분쯤이다. 군 당국은 그 직후인 밤 11시~12시 국방부 장관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이 보고를 바탕으로 청와대에서 관계장관회의가 열린 시점이 23일 새벽 1시다.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시작된 시점은 1시 30분이다. 피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관계장관회의까지 연 것이다. 하지만 23일 오후 1시 30분 국방부의 첫 언론 보도문 어디에도 피살 사실에 관한 언급이 없다. 고의로 숨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23일 오후에는 또 다른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국회국방위원회에서 군 당국이 자진 월북 정황이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는 보도다. 사격을 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사실은 실제 사건 발생 이틀 뒤인 9월 24일 오전에서야 국방부가 정식으로 확인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국방부는 당시 북측 선박에 탄 사람이 방독면을 착용한 상태에서 실종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월북 진술을 들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종전선언 필요성을 강조했다. 23일 언론사들은 이 뉴스를 집중보도했다. 만약 22일 밤이나 23일 새벽에 공무원 피살 사실이 알려졌더라면, 이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것이다. 22일 밤 11시쯤에 피살 사실을 보고받고도 24일 오전까지 이 사실을 청와대와 정부가 숨긴 사실은 스스로 발표를 통해 확인된 팩트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이 묻힐 것을 우려해 늦춘 것이라는 의혹을 샀다.
 
 

이틀 동안 숨겨야 했던 이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 14일 해경 함정을 타고 인천 연평도 인근 해수부 공무원 실종 지점 해역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10월 14일 해경 함정을 타고 인천 연평도 인근 해수부 공무원 실종 지점 해역을 살펴보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피살 사실이 알려지기 전에 자진 월북 가능성을 먼저 전한 것도 그런 점에서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진 월북하려 한 사람이 북한군 손에 죽었다. 그러니 이 사건은 ‘흔한 월북 시도 중 피격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을 이렇게 규정하고 나면, 남는 것은 피살 행위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규탄뿐이다.
 
여론이 들끓지 않았다면, 특히 자진 월북 가능성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점이 제기되지 않았거나 국민 역시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면, 청와대와 정부는 북측에 사과 요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진 월북한 사람이라면, 살리건 죽이건 그건 북측의 재량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2일 밤 11시쯤 문재인 대통령은 공무원 피살 사실을 보고받았을까? 23일 새벽 2시 30분 관계장관회의가 끝난 직후에 문재인 대통령은 보고를 받았을까? 모두 아니라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23일 오전 8시 30분에서야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안보실장이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했다.
 
공무원 실종 사실은 22일 오후 6시 36분에 처음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서면 보고를 했다고 한다. “서해어업관리단 직원이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발생했고 북측이 그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기준으로 정리를 해보면, 실종 신고가 들어온 이후 31시간 만에 첫 번째 서면 보고를 받았고, 그로부터 다시 14시간이 지난 뒤에 두 번째 대면 보고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때서야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고 북에도 확인하라.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면서 “사실관계를 파악해서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실종 발생 45시간이 지난 뒤에야 대통령의 지시가 나온 것이다.
 
연평도 해역은 남북한 간에 두 차례나 해전이 벌어진 곳이다. 연평도 포격 도발이 이뤄진 곳이기도 하고, 천안함이 피격당한 백령도 인근이기도 하다.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이 상시적으로 서린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업지도선 공무원이 실종됐다면, 북측의 의도적 납치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대응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 보고가 이처럼 뒤늦게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불과 10개월 전인 2019년 11월 19일 오전 7시 5분쯤 제주 차귀도 서쪽 76㎞ 인근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통영선적 대성호가 화재로 침몰하면서 한국인과 베트남인 선원 11명이 실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고 당일 보고를 받고 “모든 자원을 총동원해 인명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수색·구조 활동 진행 상황을 최대한 신속하게 알리고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그 사건에 비해 실종자 수가 적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하찮은 것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초기부터 국가 안보 면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사건으로 인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사고 당일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고, 대통령도 아무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청와대 설명이다.
 
 

범여권 인사들의 김정은 ‘칭찬 릴레이’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9월 25일 연평도 인근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9월 25일 연평도 인근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현안보고를 위해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공무원의 피살 사실이 알려진 다음 날인 9월 25일 오전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두 가지 소식을 동시에 전했다. 첫째, 북한 통일전선부 명의로 사과문이 국가정보원에 도착했고, 박지원 원장이 아침에 이것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다. 둘째, 문재인 대통령이 9월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했고, 김 위원장도 9월 12일에 답장을 보내왔다는 소식이다.
 
서훈 실장은 이때 이례적으로 친서 내용까지 공개했다. 두 문건 모두에서 김 위원장은 온화한 이미지로 등장한다. 북한 통전부가 보낸 사과 통지문의 김 위원장 관련 내용은 이렇다.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바이러스) 병마의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에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여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더해준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하라고 하시었습니다.”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은 이렇다.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 남녘과 그것을 함께 나누고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나의 진심을 전해 드립니다. (…) 다시 한번 남녘 동포들의 소중한 건강과 행복이 제발 지켜지기를 간절히 빌겠습니다. 진심을 다해 모든 이들의 안녕을 기원합니다.”
 
청와대가 두 문건의 내용을 공개한 이유는 뭘까?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애쓰는 중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사과 통지문을 신속하게 보낸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쯤에서 공무원 피살 사건은 그만 묻고 넘어가자. 이런 청와대의 바람을 잘 이해한 까닭일까?
 
범여권의 인사들은 김정은 위원장 칭찬 릴레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과거 북측의 태도에 비하면 상당한 정도의 변화인 것으로 보인다. 얼음장 밑에서도 강물이 흐르는 것처럼 남북관계가 엄중한 상황에서도 변화가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고 평가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이 사람이 정말 계몽군주이고, 어떤 변화의 철학과 비전을 가진 사람이 맞는데, 입지가 갖는 어려움 때문에 템포 조절을 하는 거 아니냐? 제 느낌엔 계몽군주 같다”고 평가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역시 “일종의 계몽군주로서의 면모가 있다. ‘통 큰’ 측면이 있다”며 유 이사장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했다. 북측의 사과 통지문이 도착하기 전까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이라고 성토하며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려고 했던 민주당 내 기류 역시 급변했다. 그 결과, 대북 규탄 결의안은 끝내 처리되지 못했다.
 
 

靑 대응 시스템 관련 9가지 의문점

9월 25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해안 경계를 하고 있다. 해안 경계 장병들 뒤로 보이는 곳은 실종 공무원이 관측, 피격된 북한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일대. / 사진:연합뉴스

9월 25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병들이 해안 경계를 하고 있다. 해안 경계 장병들 뒤로 보이는 곳은 실종 공무원이 관측, 피격된 북한 황해남도 옹진군 등산곶 해안 일대. / 사진:연합뉴스

청와대와 정부가 밝힌 그대로 해석할 때 이번 사건에 대한 대응 시스템은 정상적이었을까? 실제로 일을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면, 비정상도 이런 비정상이 없다. 정상적인 상황 처리 방식을 정리해보면, 더욱더 그러하다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21일 오전 11시 30분 해경 실종 신고 접수→21일 오전 11시 40분 해경 실종 사실 해양수산부 장관과 청와대에 보고→11시 50분 노영민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구두 보고→문재인 대통령 신속한 수색과 구조 지시→12시 10분 문재인 대통령 지시 내용 해양수산부와 국방부에 전달→해경과 해군 오후 1시 50분부터 수색 개시→오후 2시 주요 언론사 공무원 실종과 수색 개시 사실 보도→오후 6시 주간 수색 종료와 야간 수색으로 전환→주요 언론사 수색 성과 없다는 사실과 야간 수색 개시 사실 보도→해양수산부와 국방부 야간 수색으로 전환 사실 청와대 보고→22일 오전 8시 주요 언론사 야간 수색 성과 없다는 사실과 수색 범위 확대 보도→22일 오후 3시 30분 실종자 북한 해역에서 발견→오후 4시 30분 정보 확인 뒤 국방부 청와대에 보고→오후 4시 40분 노영민 비서실장과 서훈 국가안보실장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문재인 대통령 모든 연락망 가동해 북측에 연락 지시→오후 5시 국가정보원 북한 통일전선부 핫라인 가동해 실종자 보호와 구조 요청→국방부도 군 통신선 가동해 북측에 연락→유엔사 군사정전위 연락망도 가동→오후 5시 10분 주요 언론사 실종자 북한 해역 발견 사실 보도→북측이 무응답인 가운데 북측이 실종자 구조를 고의로 지연시키는 정황 포착→오후 6시 국방부 구조 지연 사실 청와대에 보고→오후 6시 10분 서훈 안보실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구조 지연 사실 구두 보고→문재인 대통령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해상기동 시위와 국제상선망을 활용한 구조 요청 지시→오후 7시 해군과 해경 장산곶 인근 해역에서 해상기동 국제상선망을 통한 구조 요청→오후 9시 40분 북한군 공무원 사살 후 소각 정황 포착→오후 10시 10분 국방부 청와대에 보고→오후 10시 20분 서훈 안보실장과 노영민 비서실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구두 보고→문재인 대통령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 지시→오후 11시 주요 언론사 공무원 피살과 국가안전보장회의 소집 사실 보도→오후 11시 30분 문재인 대통령 주재 국가안전보장회의 개최→공무원 피살 이후 대응책과 유엔총회 연설 연기 여부 토의→유엔총회 연설 강행 결정→23일 오전 10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결정 내용과 대북 항의문 발표.
 
이상에서 제외한 한 가지 변수, 자진월북 가능성을 더하면 대응에 다소 차이가 날 수는 있다. 하지만 일반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첩보 내용이 확실하지 않다면, 끝까지 실종으로 보고 접근하는 게 맞다. 아울러 자진월북이 확실했다고 하더라도 북측이 곧바로 구조하지 않는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면, 실종자 구조에 준해 대응 조치를 계속 취해나갔어야 한다.
 
북측은 남하한 자진 탈북자에 대해서 적십자 접촉까지 제안하면서 인도를 요청하곤 한다. 우리 정부가 귀순자로 규정한 뒤에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설령 북측이 귀순자로 규정을 내렸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는 인도를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공무원이라면 더욱더 그러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정상적 상황 처리 방식에 견줘볼 때, 추가로 의문이 드는 대목은 이런 것들이다.
 
①왜 9월 21일 실종 당일 그 사실을 언론에 알리지 않고 비밀에 부쳤을까? ②왜 9월 22일 북한 해역에서 발견한 사실을 곧바로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숨겼을까? ③문재인 대통령에게 첫 보고를 31시간 만에 한 이유가 뭘까? ④문재인 대통령이 첫 보고를 받은 뒤 아무런 지시도 내리지 않은 이유는 뭘까? ⑤9월 22일 오후 3시 30분부터 사망 시점인 오후 9시 40분까지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무런 보고도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⑥청와대에 피살 보고가 된 직후 문재인 대통령에게 곧바로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⑦23일 오전 1시 긴급하게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면서 이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⑧야심차게 준비한 유엔총회 연설을 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왜 이 사건을 모니터링하지 않았을까? ⑨오전 8시 30분 사살 사실을 보고 받은 뒤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즉시 국가안전보장회를 소집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책임질 사람은 누구일까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운데)가 10월 14일 해양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사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운데)가 10월 14일 해양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던 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사진:김상선 기자

이런 의문점의 연장선에서 우리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비정상적인 처리 과정에 관한 일련의 설명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하나로 모아지는 그것은 이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이 이뤄진 23일 오전 1시 30분 전까지 공무원의 피살 사실을 몰랐다는 것. 그래서 책임질 것도 없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청와대 설명대로라면 정부와 청와대의 보고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내려야 할 지시도 제때 내리지 않았다.
 
그래도 책임질 일이 없는 것일까? 실종자 수색에 나선 해경과 해군, 상급 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국방부가 청와대에 보고를 제때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면, 그 보고 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청와대에서 보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대통령에게 전달하지 않았다면, 부처에서 보고받은 사람부터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국가안보실장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이 모든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연히 문재인 대통령 책임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검토해봐야 한다. 청와대의 설명이 사실과 다른 경우다. 어떤 추정을 해볼 수 있을까? 사건 발생 초기부터 앞서 살펴본 정상적인 처리 방식이 작동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 추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월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 했다. 그래서 9월 8일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도 친서를 보냈다. 그 사이에 국가정보원과 북한 통일전선부 간에 물밑접촉이 이뤄졌다. 북측이 이때 관계개선과 관련해 신뢰할 만한 선행 조치를 요구했다. 그래서 비핵화 전제가 없는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부 라인을 총동원해 대미 설득에 나섰다. 미국은 비핵화를 전제로 한 종전선언에만 동의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유엔총회 연설에서도 ‘종전선언’을 재차 제안하기로 했다. 그런 내용으로 9월 15일 녹화를 마쳤고, 18일에 유엔으로 영상까지 보냈다. 그런데 불과 3일 뒤인 9월 21일에 공무원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 돌발 악재가 불거진 것이다. 가능한한 이 사건의 보도를 막아야 한다. 그래서 사건 초기에 보도를 통제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또다시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북한군이 공무원을 사살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유엔총회 연설을 불과 몇 시간 앞둔 시점이었다. 이대로 덮는 것은 불가능하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이런 가정은 해볼 만 하다. 예컨대 최대한 발표 시점을 뒤로 늦춰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한 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 시점을 23일 오후로 하기로 하고, 피살 사실도 천천히 알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피살 사실을 보고받은 시점은 23일 오전 8시 30분으로 하기로 한다.
 
아울러 북측에 핫라인으로 공무원 피살 사실에 대한 사과 통지문을 보낼 것을 요청하기로 한다. 통지문이 도착하면, 그것과 함께 친서 교환 내용도 공개하기도 한다. 그 이후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 행보를 계속 이어나가기로 한다. 그래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 공무원 피살 문제는 차차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
 
만약에 이런 식으로 처리한 것이 맞다면, 이것은 잘못된 ‘정무적 판단’이 과도하게 개입한 결과, 보고 시스템을 무력화시킨 경우에 해당한다. 아예 시스템이 붕괴한 것이건, 과도한 정무적 판단으로 시스템이 무력화된 것이건, 비정상 상태임은 분명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요즘 종전선언에 올인 중이다. 북한 통일전선부가 보낸 사과 통지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인 9월 27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미국에 파견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특별대표와 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 본부장은 종전선언과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아주 폭넓고 의미 있게 얘기를 계속했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더 좋은 토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 본부장이 미국으로부터 돌아온 일주일 뒤인 10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화상으로 진행된 코리아 소사이어티(Korea Society) 연례 만찬 기조연설에서 재차 종전선언을 강조했다. “나는 유엔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완전히, 영구적으로 종식돼야 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 평화의 시작이며,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만이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보답하는 길이다.”
 
 

종전선언에 올인 중인 대통령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배현진 의원은 서해상 실종 공무원에 대한 북한군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해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사진:오종택 기자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오른쪽)와 배현진 의원은 서해상 실종 공무원에 대한 북한군 총격 사망 사건과 관련, 청와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해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 사진:오종택 기자

한·미 간에 조율은 잘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이도훈 본부장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수혁 주미대사도 10월 12일 화상으로 진행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미국은 종전선언을 검토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반응이다. 법률적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면 관련국들이 정치적으로 선언할 만한 의미가 있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대사는 같은 자리에서 이런 발언도 내놓았다. “한국은 70년 전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70년간 미국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미국을 사랑할 수 있어야,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대사의 발언을 돌출 발언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중요한 발언을 청와대와 사전 교감 없이 내놓았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대사도 나름 친문계 핵심이다. 이 대사가 이 발언을 내놓은 의도가 분명해 보이는 점도 그렇게 보는 이유다. 우리 정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비핵화 없는 종전선언’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종전선언 카드를 받지 않으면 한·미 동맹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일종의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 절실하다는 의미인 것으로 읽힌다. 최근 북한의 노동당 창건일 열병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명하게 다른 점도 한·미 간의 인식 차를 잘 보여준다. 종전선언은 사실 미국 정부의 작품이다. 2005년 무렵 6자회담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돌파구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종전선언’ 카드를 내놓았던 것이다. 그 이후 미국의 입장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이번 열병식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장거리 미사일 개량형을 선보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당분간 변할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봐야 한다.
 
다시 공무원 피살 사건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문제를 삼지 않을 수 없는 점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위기관리 역량이다. 시스템이라는 것도 결국 위기관리에 필요한 기제로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을 붕괴시키거나 무력화시키는 일은 절대 피해야 한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에 한해 단발성으로 빚어진 일이라고 치부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한번 붕괴된 또는 무력화된 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임기 말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내년 재·보선이 다가오고 있다. 연이어 차기 대선이다. 정무적 판단이 남발될 여지가 많은 환경이다. 이런 정치 과잉으로 말미암아 시스템은 더 버벅댈 것이 분명하다.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