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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월급 받아 첫 기부…후원할수록 겸손·존중의 힘 생겨

중앙선데이 2020.10.24 00:21 708호 22면 지면보기

‘기부 가이드북’ 낸 이상현 태인 대표

이상현 대표는 ’가족이 동참은 안 하더라도 나의 기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이상현 대표는 ’가족이 동참은 안 하더라도 나의 기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기부에 대한 철학은 물론 기부 방법, 기부 기관, 관련 세제 등 그야말로 기부에 대한 모든 것을 소개한 책이 나왔다. 제목도 『대한민국 기부 가이드북』이다. 뭐, 그런 책 나올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저자가 범상치 않다. 재벌가 사람이다.  
 

철학·방법·기관·세제 등 총정리
순수한 기부자 모임 만들고 싶어

착한 가정·건물 1호 등 ‘나눔 왕’
34년째 우표 수집, 잡지 인기작가
우표 통한 남북 문화 교류 꿈도

LS그룹 3세 경영인인 이상현 (주)태인 대표다.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 서울시 착한 가정 1호, 착한 건물 1호 등 기부 관련 각종 타이틀을 가졌다. 그래도 그렇지, 재벌가 경영인이 ‘나의 기부 철학’ 같은 폼 잡는 책을 쓴다면 몰라도 기부 가이드북이라니. 호기심 수치가 급상승해 이 대표를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재벌과 기부 가이드북이 익숙한 조합이 아닌데 본인 아이디어인가.
“그렇다. 그렇잖아도 돈 안 되는 책이다 보니 출판사들이 꺼려 애를 먹었다. 출판사들은 ‘기부로 인생을 배웠다’ ‘내가 기부하는 이유’ 같은 개인적 에피소드를 원했다. 다행히 내 생각에 동의하는 출판사를 찾을 수 있었다.”
  
첫 사병 휴가 때 후원 아동부터 만나
 
왜 가이드북인가.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도 문화적으로 받쳐주지 않으면 소용없다. 아주 작은 도움일지라도 사회에 대한 개인의 고민이 담겨야 한다. 그런 문화가 깔려 있어야 시스템도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부의 저변을 확대하는데 기여하고 싶었다.”
 
어떡하면 저변이 확대될까.
“기부 정책이나 모금 생태계가 기부자의 입장에서 구성돼야 한다. 하지만 흔히 기부 이후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사회 문제를 개선하고 투명한 기부 생태계를 조성하려면 현명한 기부자가 돼야 한다. 자기가 한 기부의 진행 과정, 성과까지 책임감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첫 기부를 군 복무 시절 했다.
“내 힘으로 처음 번 돈이 군대 월급이었다. 1만원도 안 되는 돈이지만,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받은 것이어서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이 소중한 돈을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쓴다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군 생활이 되겠다 싶었다. 월급이 적어서 대학시절 모아뒀던 돈을 합쳐 한 달에 3만원씩 기부하는 정기후원을 시작했다.”
 
어떤 프로그램이었나.
“월드비전에서 하는 국내 아동 결연 프로그램이었다. 책에는 못 실었는데, 첫 휴가를 나와서 집 대신 곧장 후원 아동을 만나러 청주에 갔다. 아이와 어머니도 만나고 식사도 함께 했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느낌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힘든 군 생활 중에 나 말고 남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기부 유전자라도 있나 보다.
“사실 부모님 모두 베푸는 삶을 살아오셨다. 아버지 사무실은 지금도 시장통 같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챙겨주느라 이런저런 상자들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을 때가 많다. 어머니는 별명이 ‘산타 할머니’일 정도다. 언젠가 신문에 백화점 포장 코너를 운영하는 분 기사가 실렸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을 묻는 질문에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돕는 선물도 정성껏 포장하러 오시는 구태회(LS그룹 창업주)씨 딸 구혜정씨’라고 답하더라. 지인들에게 뭐라도 나눠주려고 애쓰시는 걸 보고 왜 저러시나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눔이 곧 기쁨이고 즐거움이라는 사실을 체득하게 된 것 같다.”
 
총학생회장 경력도 특이하다(그는 2004년 한양대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돼 ‘재벌가 총학생회장’으로 화제가 됐었다.)
“비운동권 출신 총학인 ‘학생연대21’ 의장 자격으로 (운동권인) 한총련 출범식에도 참석했다. 신분을 밝히고 발언권을 신청하니 다들 놀라서 바라보더라. 운동권은 학내 복지와 교육에 무관심, 비운동권은 통일과 사회에 무관심하다고 이분법적 담벼락을 쌓은 채 서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게 싫었다. 서로 잘하는 부분을 공유하자고 의견을 냈는데, 연설 후 큰 박수를 받았다.”
 
북한의 우표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이상현 대표(오른쪽)는 남·북한에서 발행된 전통음악 우표 45종(370장)을 최근 국립국악박물관에 기증했다. [사진 태인]

북한의 우표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이상현 대표(오른쪽)는 남·북한에서 발행된 전통음악 우표 45종(370장)을 최근 국립국악박물관에 기증했다. [사진 태인]

북한 방문도 여러 차례 했다.
“2003년 평양에 유경 정주영 체육관이 문을 열 때 처음 갔다. 단과대 학생회장 할 때였다. 박근혜 정부 때도 대한체육회 남북교류위원, 민화협 체육위원 자격으로 방북했다. 스포츠가 남북교류의 물꼬를 틀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스포츠에는 원래 관심이 있었나.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자질이다. 아버지는 산악인으로 대한산악연맹 회장을 지내셨고 지금도 대한체육회이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독도 표목(標木) 사진을 갖고 계셨나 보다.
“조선산악회가 해방 후 울릉도와 독도 학술조사를 했을 때 설치하고 찍은 것인데, 사진은 남아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사진을 정리하다 우연히 눈에 띄었다. 예사롭지 않아 돋보기로 살펴보니 1947년이라는 연도가 보였다. 몇날며칠을 조사하다 확신이 들어 동북아문화재단에 가져가 보였다. 맞다는 판정을 받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했다(이 표목에는 ‘조선 경상북도 울릉도 남면 독도’라는 행정구역명이 표기돼있으며, 독도가 한국령임을 표시한 최초의 시설물로 꼽힌다).”
 
우표 전문가로도 명성이 높다.
“아홉 살 때부터 우표 수집을 시작해 34년째 계속하고 있다. 민화협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민족화해’에 ‘우표로 보는 남과 북’이라는 기사를 4년 넘게 연재하고 있다. 민화협 창립 이후 가장 롱런하는 기고자이자 독자란에 가장 이름이 많이 오르는 인기작가다. (웃음)”
 
북한 우표는 어떻게 모으게 됐나.
“일본 수집가가 북한 우표로 큰 상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고 자존심이 상했다. 북한 우표도 통일시대의 중요한 문화재인데, 북한이 관리를 못한다면 적어도 우리가 해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홍콩 등지까지 가서 적극적으로 모았다. 북한이 발행한 우표 목록에도 없는 우표도 내게 여러 개 있다. 내년도 북한 우표 발행 계획도 알 수 있다(그는 최근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강조하며 발행한 기념주화도 입수해 처음 공개했다).”
 
우표에도 정치적 메시지가 있을 텐데.
"물론이다. 재미있는 것은 발행 목록에서 사라지는 우표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평양민속공원 우표가 갑자기 목록에서 빠져 왜 그런가 봤더니 숙청된 장성택이 주도한 사업이었기 때문이었다.”
 
북한 우표의 수준은 어떤가.
"굉장히 선진적이고 상업적이다. 입체적 디자인의 우표도 있고 나무로 만든 우표도 있다. 판매 역시 ‘페이팔’로 결제를 할 정도로 경쟁력이 있다. 우표를 통한 문화 교류를 해보고 싶을 정도다. 해외 문화원에서 남북우표 전시를 하면 외국인들에게 남과 북의 동질성도 보여줄 수 있다. 비용도 별로 안 들고 정치적인 부담도 적다.”
  
가족 모두 기부의 길로 이끌어 뿌듯
 
대학 시절 독도 우표를 주문해 화제가 됐었다.
"학생회장 때 독도 우표가 없다고 생각해 신청했던 건데, 민감한 문제인 만큼 공개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일본 수집가가 주문형 독도 우표를 먼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일주일 먼저 만든 거였다.”
 
다시 기부로 돌아가자. 책 내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
"나름 전문가라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니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그래서 4년이나 걸렸다. 게다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접촉한 기관들한테 잡상인 취급을 많이 당했다. ‘도움 필요 없다’며 사진 하나 주지 않으려는 곳도 많았다. 공적일수록 더욱 어려웠다.”
 
가장 보람있었던 순간은.
"우리 가족 모두를 기부의 길로 이끈 것이다. 가족이 동참은 안 하더라도 나의 기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300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데, 내가 권유했다. 그동안 소리 없이 남을 도와 오셨지만 이제부터는 공식적으로 기부를 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따라주셨다.” 
 
앞으로 바람이 있다면.
"기부자 모임을 만들고 싶다. 기부자를 관리하는 차원이 아니라, 분야와 금액을 떠나 순수한 마음들의 모임 같은 것이다. 기부는 할수록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주위 사람들을 더욱 존중하게 해준다. 기부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또 함께 살아가는 우리를 존중하게 되는 기부, 우리 사회 화합과 통합을 위한 품격 있는 실천적 삶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
 
이훈범 대기자 / 중앙콘텐트랩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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