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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본인 책임진다면 접종”…엇박자 방침에 시민들 혼란

중앙선데이 2020.10.24 00:02 708호 3면 지면보기

독감 백신 불안 증폭 

23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시민이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1주일새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람이 30명을 넘자 우려 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시민이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있다. 1주일새 백신을 맞고 사망한 사람이 30명을 넘자 우려 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본인이 (결과를) 다 책임진다고 할 때만 (독감 백신을) 놔드립니다. 요새 말이 많아서 권장하진 않아요.”
 

정부는 문제 없다는 입장이지만
지자체 등 일시 보류 조치 늘어
“질병청이 빨리 교통정리 해야”

일각선 “수입 백신이 안전하다”
전문가 “국산 수준급, 차이 없어”

23일 오후 12시 30분 경기도 성남시의 한 내과. 독감 백신을 접종할 수 있냐고 묻자 이 내과 관계자는 이렇게 답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병원은 지난주만 해도 독감 백신을 맞으려는 이들로 붐볐다. 하지만 이날은 대기 인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이 관계자는 “사망 보고가 잇따르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에 오시라고 안내하고, 오늘 꼭 맞아야 한다는 분에게만 접종하고 있다”며 “질병관리청이 빨리 교통정리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근 독감 백신을 맞은 뒤 숨진 사례가 전국에서 속출하자 일선 병원이나 시민이 접종 여부를 놓고 혼란에 빠졌다. 백신의 안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정부 입장과는 달리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백신 접종 1주일 연기를 권고하는 등 정부와 의료계 목소리가 엇갈려서다.
 
의협 권고나 병원장의 독자적 판단에 따라 백신 접종을 중단한 병원도 있다. 대전 동구 근화내과는 이날 독감백신 접종을 잠정 중단했다. 이 병원 김근화 원장은 “백신 접종 뒤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종을 계속하는 건 문제가 있다”며 “의협 권고에 따라 접종을 중단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가 아무 지침을 주지 않아 백신 접종을 계속하겠다”는 곳도 있다. 대전 서구 A내과는 “정부 지침이 따로 없어 백신 접종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구의 또 다른 내과도 “유·무료 백신이 아직 남아있는데 의협 권고와 상관없이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질병청 판단과 달리 지자체 차원에서 독감 예방접종을 일시 보류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전날 서울 영등포구보건소에 이어 경북 포항시는 이날 독감 백신 안전성을 확보할 때까지 유·무료 독감 예방접종을 유보한다고 밝혔다.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서울의 한 병원이 독감 예방접종 일시 중단 안내문을 게시했다. [뉴스1]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잇따라 발생하자 서울의 한 병원이 독감 예방접종 일시 중단 안내문을 게시했다. [뉴스1]

시민도 접종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백신 접종과 사망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막상 맞기 꺼림칙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사망자가 나온 지역에서 불안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다. 성남에 사는 30대 임신부 A씨는 “추워지기 전 맞는 게 좋다고 해서 독감 백신을 맞으려고 했지만, 어제 성남에서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들었다”며 “임신부가 국가 필수 예방접종 대상자인 만큼 안전성에 대한 답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당분간 주사를 맞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 병원과 보건소에는 백신을 맞아도 될지 문의하는 전화가 잇따랐다. 성남의 한 병원 관계자는 “백신 종류를 물으며 안전하냐고 묻는 전화가 늘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조달 계약을 맺은 무료 백신보다 유료 또는 수입 백신이 안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날 온라인 게시판에는 ‘고령의 아버지가 무료 접종 대상자인데, 너무 찜찜하다. 수입 백신을 맞으려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하느냐’, ‘국산 백신을 맞고 죽는 사람도 나오고 불안해서, 만원 더 내고 수입 백신을 맞았다’는 등의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감염병 전문가들은 국산과 수입 백신의 효능 차이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독감 백신은 전세계 제조사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똑같이 균주를 배분받아 생산한다. 마상혁 경남도의사회 감염병대책위원장은 “세계적으로 독감 백신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이 있는 나라가 얼마 없다”며 “녹십자, 일양,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제조사는 오래 전부터 백신을 생산했고 순도 측면에서 수입산보다 낫다는 평가도 받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 기준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전국 36명으로 집계됐다. 질병청이 공개한 ‘2009~2019년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후 사망 사례 신고 현황’ 통계를 보면 독감 백신 관련 사망 신고는 매년 이어졌다. 연도별로 2009년 8명, 2010년 1명, 2011년 1명, 2013년 1명, 2014년 5명, 2015년 3명, 2017년 2명, 2018년 2명, 2019년 2명 등 모두 25명이다. 서동철 중앙대 약학대학 교수는 “공장에서 출하된 자동차도 한두 대에 문제 생기면 원인을 찾아내고 리콜을 한다”며 “아무래도 기저질환이 많아 리스크가 큰 노년층은 역학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능하면 접종을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질병청은 백신 예방접종과 사망 간의 연관성이 밝혀지지 않은 단순 신고 통계라는 입장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에서 매일 70세 이상 어르신 560명이 돌아가시는데 이 가운데 절반은 예방접종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최근 백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다 보니 사망 원인을 집계하는 경찰청 입장에서는 사망 신고가 들어오면 무조건 백신을 맞았는지 물어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질병관리청예방접종 전문위원인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교수 역시 “독감 백신은 1945년 개발된 이후 70년 이상 사용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2000만명 이상이 접종한다”며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독감 접종에 관심이 높아져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접종 후 사망 사례가 부각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신 자체보다 접종 전후 건강 관리와 백신 유통과정의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유료 백신과 정부가 공급하는 무료 백신 사이에 효능 차이는 없고, 고령자의 경우 접종하지 않을 경우 독감으로 인한 폐렴, 기저질환 악화 등의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무조건 접종을 피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오히려 백신 유통 과정에서 상온 노출 사고 등을 철저히 검사하고 관리하는 동시에 고령자 등이 편안한 상태에서 접종하고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는 환경 등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질병청은 ▶예방접종은 건강상태가 좋은 날 ▶혼잡을 피하고 장시간 기다리지 않도록 사전에 예약하고 ▶접종 후 15~30분간 접종기관에서 이상 반응이 있는지 관찰하고 귀가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긴 ‘예방접종 주의사항’을 내놨다.
 
채혜선·이태윤·김나윤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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