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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아닌 대북 접촉은 무제한 허용해야 통일 물꼬”

중앙선데이 2020.10.24 00:02 708호 10면 지면보기

젤리거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

베를린장벽 붕괴(1989년 11월 9일)와 독일 통일(1990년 10월 3일) 30주년을 맞아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인 베른하르트 젤리거 박사는 지난 1년 동안 중앙SUNDAY에 당시의 급박한 과정을 되돌아보는 특별기고를 연재했다. 30년이 흐르는 사이 독일 통일 과정은 독일 현지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서서히 ‘과거사’가 되어 가고 있다. 그날의 환호와 열광은 이제 어디서도 다시 찾아보기 어렵게 됐지만 독일은 통일 후의 온갖 혼란과 난제를 뚫고 오늘날 유럽을 이끄는 핵심국가로 자리를 굳혀 가고 있다. 독일이 어떻게 통일 후유증을 극복해 왔는지를 복기해 보는 새 연재를 앞두고 젤리거 대표를 만나 통일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독일 통일 30돌 교훈
젊은 세대 동서독 따로 생각 안해
일상생활 문제는 일단락된 상황
일부 고령층 ‘머릿속 장벽’ 남아

북 민주주의 경험없어 만남 중요
북방정책 일관적으로 추진해야

과거 독재청산은 기대에 못 미쳐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베른하르트 젤리거 대표는 ’북한인들이 외부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최 대한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한스 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베른하르트 젤리거 대표는 ’북한인들이 외부 세계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최 대한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올해 축제 열기나 분위기는 어땠나.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념행사가 상대적으로 차분한 가운데서 거행된 건 사실이다. 독일에서 통일은 이미 역사가 돼 가고 있다. 물론 통일로 인해 생겨난 문제가 아직 남아 있긴 하다. 하지만 이것이 더는 가장 주요한 현안은 아니다. 코로나 방역이나 외부에서의 이주, 환경 등이 더 시급한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통일 당시 태어난 사람들이 벌써 30세가 됐다. 이들 세대의 특징은.
“분단이란 게 더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30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젊은 세대가 벌써 옛날 동독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자유, 이동의 자유, 여행의 자유를 갈망했기 때문에 동독에서 평화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들의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다.”
 
지금 돌이켜볼 때 당시 특별히 잘못됐거나 잘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당시엔 나름대로 복잡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답변하기가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화폐통합이나 동독인의 과거 청산 등을 많이 예로 든다. 그런데 당시 동독에 관한 정보들이 매우 부족했다. 이래도 욕먹고 저래도 비판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헬무트 콜 총리의 화폐통합 정책 등이 나중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수백만 명의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해 엄청난 혼란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런 문제에 젊은이들은 관심이 있나.
“별로 없다고 본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70년 지난 한국전쟁에 관해 관심 있는 젊은이들 적지 않나.”
 
역설적으로 말하면 독일 통일이 벌써 완성됐다고 해석해도 될까.
“통일과 관련된 일상생활의 문제는 일단락됐다고 말할 수 있다.”
 
동서독 간에는 여전히 경제적 격차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느 정도인가.
“차이가 아직은 있다. 동독의 소득 수준은 서독의 80~90% 정도 된다. 그런데 부동산이나 금융자산 등은 서독인이 더 많다. 통일 이전 서독인은 이미 많은 자산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자손들에게 상속하거나 물려주기도 했다. 반면 동독인은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주요 수출 기업이나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도 서독에 더 많다. 하지만 서독 지역 내에서도 경제적 차이는 크다. 반면 동독의 동베를린이나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등은 발전 속도가 빠르다. 이젠 분단과 통일이라는 조건에서 보는 동서 차이가 아니라 지역의 차이가 더 중요해졌다.”
 
사회통합은 잘 돼 가나.
“전체적으로 볼 때 사회적 격차는 꽤 많이 사라졌다. 특히 젊은 세대는 동서독 분리 구도로 사고하지 않는다. 다만 일부 고령층에선 사회심리적인 ‘머릿속 장벽’이 남아 있다.”
 
동독의 과거청산 문제 중 아직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독재청산재단이 주가 돼서 주로 역사적인 청산작업을 하고 있다. 동독 출신 인권운동가인 노이에스 포룸 지도자 베르벨 볼라이는 ‘우리가 통일을 통해서 얻기를 바란 것은 정의였는데 정작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법치국가였다’라는 말을 했다. 잘못된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희생자나 피해자 입장에선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인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통일’ 먼저 따지면 어려워
 
북한 주민의 인권, 민주주의 의식은 동독에 비해 약한 것 같다. 이를 고양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동독인들의 경우 나치와 공산 독재 이전에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불완전하기는 했지만 민주주의 경험은 가지고 있었다. 반면 북한 사람들은 조선시대에서 일제 식민지시대를 거쳐 바로 공산 독재정권하에 살고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경험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외부 세계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변화가 곧바로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분단 시절 동서 간 교류 경험이 있나.
"고등학교 다닐 때 동독 지역을 방문해 청년들과 만나는 프로그램 있었다. 동독에서 선발된 사람들은 훈련을 받아서인지 우리보다 말도 더 잘했다. 우리는 토론에서 밀리기도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만남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 예를 들자면 우리 중에 누군가가 ‘얼마 전에 미국에 갔다 왔는데 이런 게 좋았다’고 말했는데 동독 쪽에선 서독 학생들의 자유로운 여행에 관해 관심을 가지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옷차림이나 외모에 대해서도 유심히 보는 것 같았다.”
 
남북한 간에는 통신·우편·방송·인적 왕래 등 모두 꽉 막혀 있다. 독일과 같은 ‘접근을 통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떤 돌파구가 있겠나?
"딱히 돌파구를 찾기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에 대한 모든 접촉이나 관계를 허용하는 게 좋은 방법일 것이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저촉되거나 불법적인 게 아니라면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접촉을 장려하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북한이 만남을 꺼리는 점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이 내부적으로 북과의 교류를 통제하는 경우도 많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회의 참석이나 국제적인 만남 기회 등을 무제한 허용해야 할 것이다.”
 
서독 정부들은 갈등이 있긴 했지만 동방정책을 좌우 정권 모두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 통일에 이르렀다. 한국의 북방정책은 어떤 식으로 진행돼야 할까.
"정책의 지속성은 한국 정치의 구조적인 문제인 것 같다. 단지 보수와 진보 정권 사이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보수 정권 내에서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대북 정책에 차이가 있었다. 인물 중심 정치여서 정책 담당자들이 다 바뀌어야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정치적인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게 맞는다고 본다.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내고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매우 중요하다. 분단 상황을 잘 관리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통일에 이르게 될 수 있다. ‘어떻게 통일할 거냐’를 먼저 시작하면 문제가 어렵고 복잡해진다. 먼저 접촉하고 교류하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판 ‘코카서스 기적’ 위해 중·일과 관계 개선해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 셋째)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왼쪽 셋째)이 지난 3일 포츠담에서 열린 통일 30주년 행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 셋째)와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왼쪽 셋째)이 지난 3일 포츠담에서 열린 통일 30주년 행사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국도 중국·러시아·미국·일본 등 주변 이해관계 국가들의 지지 없이는 통일의 기회가 찾아와도 ‘코카서스의 기적(콜 총리와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외교 담판)’을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프랑스·소련·폴란드 등 주변 국가들 모두가 처음엔 독일 통일을 반대했다. 지금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도 주변국의 입장은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웃 국가들과 관계 개선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중국보다는 일본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민주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양자 관계도 중요하지만 다자 관계도 중요하다. 독일의 숙적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가 2차 대전 후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물론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과 일본 관계의 복잡성을 잘 안다. 계속 시도하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는 미래 세대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독일과 프랑스가 관계 복원에 처음 시작했던 분야는 청소년 교류다. 한국은 K팝이나 한류 같은 영향력 있는 소프트파워를 가지고 있다. 일본이나 중국 청소년 중에 이런 데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청소년 교류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위안부 문제 같은 난제를 해결하기는 어렵지만 그렇게 접촉하는 게 중요하다. 역사는 ‘쏟아진 물’이며 이미 일어난 일이다. 되돌릴 수는 없다. 독일은 2차 대전 후 반성을 많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희생자들이 살아 돌아오고 피해 입은 사람이 완치되지는 않는다. 반성은 해야 하지만 역사로 인해 미래가 발목 잡히면 안 된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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