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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코로나 시대 생존법은 환기…기준 더 엄격해져야”

중앙일보 2020.10.23 00:40 종합 28면 지면보기

국내 1위 환기 가전 힘펠 김정환 대표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10여년간 주방가구 공장에서 일해 온 32살의 청년은 창업을 결심했다. 1989년, 직원 5명을 데리고 경기도 안양 월세 공장에서 만든 첫 아이템은 가구용 손잡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자 자기 브랜드를 가진 제품을 만들고 싶었다. 욕실용 환풍기가 눈에 들어왔다. 신도시 개발붐이 불던 때라 전망이 괜찮겠다 싶었다. 일본을 오가며 얻은 아이디어도 자신 있었다. 당시만 해도 환풍기는 프로펠러식 일색. 청계천 공구상을 드나들며 만든 터보팬 장착 시제품을 들고 전국의 아파트 공사 현장을 돌며 영업에 나섰다.
 

“냉난방 등 때문 자연 환기 어려움
감염병 막으려면 기계 이용 필수
습관화 위해 편리한 제품 나와야”
30년 기술에 새 트렌드 접목 시도

청년은 이제 국내 욕실 환풍기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강소기업의 주인공이 됐다. 환풍기뿐만 아니라 가정용 전열교환기, 주방용 후드, 스탠드형 환기 청정기 등의 제품군을 갖추고 환기 가전업계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30여년 외길을 걸으며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주택시장 부침 등을 겪으면서도 보기 드문 제조업 성공 스토리를 썼다. 2010년 ‘진도’에서 바꾼 ‘힘펠’이라는 사명은 ‘힘센 임펠러(유체 압력 에너지를 만드는 날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힘펠 사옥을 찾아간 것은 코로나19 시대 환기 산업의 중요성이 새삼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초미세먼지·새집증후군 등의 문제로 커졌던 환기 시장이 또 한 번 변곡점을 준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국내 환기 산업의 규모를 대략 3000억~4000억원 정도(에어컨·공기청정기 제외)로 추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 4월, 환기 장치 의무설치 대상을 30가구 이상 공동주택 및 민간 노인요양시설, 영화관, 어린이 놀이시설 등으로 확대했다. 2006년 이후 100가구 이상 공동주택 및 다중이용시설에 적용되던 환기 설비 기준을 더 강화한 것이다.
 
경기도 화성의 힘펠 사옥 1층 제품 전시실에 선 김정환 대표. 김 대표는 ’코로나19 시대, 감염 위험을 낮추려면 환기가 생활 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한 개인과 업계, 정부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경기도 화성의 힘펠 사옥 1층 제품 전시실에 선 김정환 대표. 김 대표는 ’코로나19 시대, 감염 위험을 낮추려면 환기가 생활 문화로 자리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한 개인과 업계, 정부의 노력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사옥은 공장을 겸한 건물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쾌적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김정환 대표(63)는 휴대용 이산화탄소(CO₂) 측정기를 꺼냈다. “지금 켜져 있는 환기 청정기를 잠깐 끄고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수치가 금방 올라갈 겁니다.” ‘환기 전도사’다운 인사법이다. 30여분 후 측정기의 수치는 400에서 1000(ppm)을 넘어섰다. 국내 다중이용시설 이산화탄소 농도 기준은 1000ppm이다.
  
강제 환기, 감염 위험 크게 낮춰
 
코로나19 사태가 사업에는 기회로 다가올 것 같다.
“환기에 대한 높아진 관심을 실감하고 있다. 고객서비스센터에 걸려오던 문의 전화가 코로나 이전보다 두 배 정도로 늘었다. 건설업체가 달아주는 환기 설비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업그레이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B2B에 치중해온 영업을 B2C로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650억원이었던 매출이 올해 800억원으로 늘 전망이다. 이 추세라면 내년 1000억원 달성도 가능할 듯하다.”
 
환기하면 보통 창문을 열어두는 정도, 즉 ‘자연 환기’를 떠올리는데.
“냉·난방을 하면서 창문을 자주 여는 것이 어렵다. 미세먼지나 소음 때문에 꺼려지기도 한다. 갈수록 ‘강제 환기’ 혹은 ‘기계식 환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을 높인 밀폐형 건물이 많아지면서 기계식 환기 설비 시장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자연 환기로는 불충분하다는 건가.
“기계식 환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와 호주 대학 연구팀의 실험에 따르면 효과적인 기계식 환기가 자연 환기보다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최대 17분의 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대한설비공학회도 최근 비슷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밀폐된 실내에 감염자가 60분가량 있을 경우, 시간당 6회 이상 환기장치를 가동하면 밀폐 조건보다 감염률을 10% 선으로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욕실 환풍기나 주방 후드 정도를 빼면 환기 장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아파트 다용도실이나 베란다 천장에 설치된 전열교환기를 들여다본 적 있나. 실내외 공기를 교환하면서 열 손실은 최대한 줄인 환기 청정 장치다. 2006년부터 웬만한 규모의 아파트 단지에는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제대로 관리되는 경우는 경험상 10%도 안 되는 것 같다. 심지어 존재 자체를 몰라 사용 안 하는 입주자들도 수두룩하다. 실내 감염이 많은 교회에서 강제 환기 장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환기는 이제 문화가 돼야 한다. 한 시간에 최소 6회, 가능하면 12회 이상의 환기를 권한다.”
 
필터 교환 등 환기 장치를 관리하는 일이 번거롭고 힘들다. 소음도 좀 거슬린다.
“업체들 책임도 있다. 제조업체들은 편리하고 혁신적인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건설업체도 무조건 싼 제품만 선호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열 교환기 필터는 6개월에 한 번씩 교환하거나 청소해야 하지만, 제대로 실천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의자 위에 올라가 나사를 풀어 무거운 금속 재질의 뚜껑을 열고 필터를 갈아 끼우는 작업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가 좋은 계기라고 본다. 조용하고, 질 좋은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느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환기 문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
“노후 건물에 대한 전열교환 장치 설치를 권고 내지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일정 환기량을 확보하게 하고, 공기 질을 높이는 등 환기 관련 규정을 지금보다 엄격하게 정비해야 한다. 바이러스를 잡는 헤파필터나 살균 필터의 활용을 높이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다중시설 환기 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인터넷 및 센서 기반 기술에 대한 지원을 늘렸으면 한다.”
  
환기 관련 규정 더 강화해야
 
힘펠이 추구하는 기업 사명(mission)은 ‘공기·에너지 기술을 통한 인간건강 기여’다. 김 대표는 “쓰기 쉽고 편리한 제품을 만들어 환기를 생활 문화의 일부로 정착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사옥 1층에는 환기 시스템에 가전의 개념을 도입한 제품들이 전시돼 있다. 환풍과 함께 온풍·건조까지 한 번에 해결하는 ‘올인원’ 제품, 리모컨으로 바람량을 10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환풍기, 팬 돌아가는 소리를 낮춰 종일 틀어 놓아도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저소음 제품 등이다. 가벼운 EPP(발포 폴리프로필렌) 소재를 쓰면서 필터도 간편하게 갈아 끼울 수 있도록 만든 가정용 전열교환기도 생활과 환기를 가까이 두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전시 제품 중 에어컨처럼 실내에 설치하는 스탠드형 환기 시스템(휴벤S 시리즈)은 최근 교회·학교·헬스장 등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한다.
 
혁신 제품 개발에 중소기업으로서 어려움은 없나.
“30년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가 최대 자산이다. 가령 배관 길이와 관계없이 일정한 바람을 유지하는 ‘정풍량 기술’은 일본 업체를 능가한다. 대기업과의 협업도 큰 힘이 되고 있다. LG유플러스와 협력해 만든 사물인터넷(IoT) 기반의 환기 제품, 대림산업과 협업해 만든 무소음 주방 후드 등이 그 결실들이다.”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건물(제3공장)이 특별하다고 들었다.
“작년 말 완공 후 공장으로는 국내 최초로 제로 에너지 건물(ZEB) 인증을 받았다. 기밀·고단열·열교환 환기 등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했다. 건물 외벽과 옥상에 설치한 태양광 전지판에서 자체 생산한 전기를 쓴다. 터파기 공사까지 진행한 상황에서 전문가 권유를 받고 공법을 바꿨다. 공사비가 15% 이상 늘었지만 ‘공기·에너지를 통한 건강 기여’라는 기업 모토에도 어울려 흔쾌히 결정했다.”
 
힘펠은 지난해 100만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주력 수출 지역인 동남아와 러시아 시장에선 일본·유럽산 제품보다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30년 전 일본 제품을 어깨너머로 벤치마킹하며 겨우 뗀 걸음이 이제 세계로 향하고 있다.
 
전열교환기만 제대로 사용해도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해 2시간마다 1회 이상의 환기를 권고한다. 비말은 수분이 증발하면 크기가 5㎛ 이하인 비말핵(에어로졸)으로 변해 미세먼지처럼 공기 중에 떠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 업소는 많지 않은 것이 현실.
 
자연 환기가 쉽지 않을 때는 전열교환기(열회수형 환기장치·ERV)가 대안이다. 홍희기 경희대 교수(기계공학)의 연구에 따르면 ERV는 송풍기나 환기 팬을 이용할 때보다 전력을 최대 68.4% 줄일 수 있다. 서울시도 전열교환기를 한 시간 가동하면 초미세먼지 농도가 63%, 두 시간 가동 땐 79% 줄었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휘발성 유기성 화합물(VOCs), 이산화탄소(CO₂) 감소는 덤.
 
현재 전열교환기는 30가구 이상 공동주택과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그 대상을 일반주택, 근린생활시설 같은 일반 건물에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 설치된 전열교환기에 대해서도 효율적인 사용·유지·관리가 되도록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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