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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없다는 택배 상·하차…“외국인 근로자 쓰면 될 텐데”

중앙일보 2020.10.23 00:04 경제 2면 지면보기
A 택배 회사의 화물 터미널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는 김준식(가명·37)씨는 월 3~4회가량 화물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에 투입된다. 사무직 정직원이지만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작업 자체가 고되다 보니 ‘아르바이트 비용(이하 알바비)’을 꽤 많이 쳐줘도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산업현장 옭아매는 규제들

내국인, 택배 나르기 꺼리는데
국토부 “일자리 뺏긴다” 반대

택배 가능 트럭 1.5t 이하 제한
물량 폭증해도 적재량 못 늘려

중소기업에 맡긴 전자정부 기술
수출 3년새 5.3억→2.5억 달러

국내 대기업 공공SW 진출 막혀
영상회의 시스템 외국계가 장악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택배 상·하차 작업의 시간당 알바비는 1만1000원 선. 최저임금(시간당 8590원)보다 2000원 이상 많다. 택배회사들은 이 알바비를 올려서라도 상·하차 인력을 구하고 싶지만, 이를 위해선 사실상 택배 가격 자체도 올려야 해서 손이 묶여있다.
 
이런 중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택배 물동량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18일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동량은 27억8980만 상자였다. 매년 10% 이상 증가세다. 올 상반기엔 이미 16억 상자(추정치)가 배송됐다.
 
연도별 전자정부 수출실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연도별 전자정부 수출실적.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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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회사들은 속이 탄다. 일감이 넘치고, 지불할 돈이 있어도 힘든 상·하차 작업은 일할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 그래서 택배회사들은 상·하차 작업 만에라도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다. 지난해 국무조정실 주도로 택배 상·하차 작업에 한해 해외동포 방문취업(H-2) 비자를 내주는 방안도 추진됐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등이 내국인 일자리를 뺏는다는 이유로 반대해 별다른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택배 현장에서의 일손 부족은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단 얘기다.
 
익명을 원한 택배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고용과 관련된 민감한 이슈라는 건 알지만, 택배 상·하차 작업의 경우 이미 내국인들이 꺼려 일손을 구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택배시장 물동량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처럼 경직된 규제는 산업현장 곳곳을 옭아매고 있다. 택배 배달용 트럭 크기 제한도 그런 사례다. 현재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상 1.5t 이하의 트럭에만 택배 배달이 가능한 번호판을 주고 있다. 택배 물량은 폭증했는데, 작은 차로 배달과 화물 픽업을 반복하다 보니 그만큼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적재량 2.5t 이하 트럭의 택배 배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발의됐지만, 법안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용달 차주 등이 반대하고 있어서다.
 
소프트웨어산업계에선 국내 중소기업 보호 등을 위해 만든 규제가 국내 대기업을 역차별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9월엔 글로벌 IT 기업인 시스코의 ‘웹 엑스’가 국회 영상회의 솔루션으로 채택됐다. 국내 IT 업계는 속수무책이다. 중견·중소기업의 기술력으론 아직 글로벌 IT 기업에 맞서기 어려운데 정작 대기업은 2013년 이후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참여가 제한돼있다.
 
이런 가운데 소프트웨어산업 전반의 경쟁력은 약화하고 있다. 행정안전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전자정부 관련 수출 실적은 2015년 5억3404만 달러에서 2018년 2억5832만 달러로 반토막 났다. 대기업 참여제한 시행 이후 벌어진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이 해외 수출을 늘리려면 사업 실적이 쌓여야 하는데, 정작 국내 공공사업에선 글로벌 IT기업에 밀리기 때문”이라며 “대기업을 무조건 배제하기 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윈윈할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광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규제 개혁이 어려운 건 해당 규제로 인해 반사이익을 누리는 집단이 있기 때문”이라며 “기득권 세력의 눈치만 살피다 보니 제대로 된 규제 개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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