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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단문세상] 문재인 정권의 ‘항미원조’ 시선

중앙일보 2020.10.22 00:37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항미원조’는 교묘하다. 그 말은 중국의 6·25 참전 구호다. 그것은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작품이다. 그 어휘에 명분이 저장됐다. “중국이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도운(抗美援朝)전쟁이다.” 거기엔 세 나라뿐이다. 한국은 빠져 있다. 그 조어는 기억의 판을 다시 짠다. 그 넉 자는 언어의 기만술이다.
 

10·25 기념일, 한국군 격파한 날
시진핑 ‘평화·정의승리’ 진실 왜곡
항미원조 넉 자, 역사전쟁 무기다
‘문재인 사람들’ 제3자처럼 방관

항미원조의 진실은 선명하다. 그것은 중국의 한반도 무력침공이다. 중공군의 총부리는 어디로 향했는가. 한국군은 처음부터 집중 표적이다. 한국인은 가장 큰 피해자다. 미군은 그들의 후순위 과녁이다. 그 말은 능청맞게 작동한다. 어느 순간 한국은 제3자로 밀려났다. 그 넉 자는 역사전쟁의 무기다(중앙SUNDAY 2020년 10월 10일자 ‘박보균의 현장속으로, 1·4 후퇴 서울 점령한 마오쩌둥 군대···’).
 
항미원조는 6·25전쟁 2막이다. 1막은 김일성의 기습남침이다. 그 무대는 짧았다. 2막1장은 중공군 출병이다. 그날이 1950년 10월 19일. 18만 대부대가 압록강 국경을 넘었다. 2막은 길었다. 겨울이 세 번 왔다. 6·25 영웅 백선엽 장군의 정리다. “전쟁 3년1개월 중 중공군과 싸운 기간이 33개월로 거의 전부였다.” 그것으로 상식이 깨진다. 긴 세월만큼 유혈의 아픔은 깊다. 1천만 이산가족 대부분이 그때 유산이다. 항미원조는 자유통일을 막았다. 그 네 글자는 간교하다. 그런 회한과 울분을 피해 간다.
 
항미원조는 마오쩌둥의 서사시다. 그 구성은 변칙과 파격이다. 그는 언어부터 공급했다. 보가위국(保家衛國, 집과 나라를 지킨다)-.  그 말은 대중동원 무대에 올려졌다. 중국 인민지원(志願)군의 조선 출병-. 그 표현은 위장술이다. 실제는 최정예 정규군(인민해방군)이다. 그의 전략적 본능은 한국군 멸시다. 훙쉐즈(洪學智) 지원군 부사령관의 회고록은 실감난다. “(마오쩌둥 주석은) 위군(僞軍)부터 집중해 타격하라고 했다 (『항미원조전쟁 회억(回憶)』).” 위군(괴뢰군)은 마오(毛)의 한국군 지칭이다.
 
올해는 항미원조 70주년. 10월 25일은 기념일이다. 왜 70년 전 그날인가. 그 무렵 한·미군은 압록강 쪽으로 질주했다. 인천 상륙→9·28 서울수복→38선 돌파 후다. 북한군은 궤멸상태였다. 재앙이 다가왔다. 매복·포위는 중공군의 필승 기량. 한국군 6사단 2연대가 거기에 걸렸다. 위치는 평북 온정리 양수동.  
 
중국 중앙(CC)-TV-4 특집 다큐(『항미원조 보가위국』)는 이렇다. “우리 군의 난두(攔頭, 선두 막아서기)·절미(截尾, 꼬리 끊기)·참요(斬腰, 허리 자르기)전법으로 남조선 부대를 격파했다(10월 15일 방영).” 그것이 항미원조 첫 전투다. 환호의 첫 승전이다. 한국 전쟁사에선 치욕이다. 그 사연은 불편하다. 대다수 한국인에겐 낯설다. 6·25 전문가 대부분은 전쟁 기원론(남침문제)에 멈춰 있다.
 
항미원조의 위상은 신화다. 중화(中華)민족주의가 그 속에서 춤춘다. 방탄소년단(BTS) 발언 논란은 그 반영이다. BTS의 수상소감은 잔잔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양국(한·미)이 함께 겪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10월 7일 밴플리트상).” 중국 네티즌의 BTS 비난은 어설펐다. 그것은 ‘항미’ 반대편에 서지 말라는 트집이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태를 유치하게 몰고 갔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쳐다보기만 했다.
 
항미원조 넉 자가 활개 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그 말에 생기를 넣었다. 10월 19일은 중공군의 입조(入朝, 조선 진입) 70년. 그날 그는 베이징 군사박물관(항미원조 전람회)에 갔다. 시진핑의 발언은 거침없다. “70년 전 평화를 수호하고 침략에 맞서기 위한 역사적 결책(決策)… 항미원조 전쟁 승리는 정의의 승리, 평화의 승리, 인민의 승리다.”
 
그 말은 도발적이다. 역사 해석의 배타적 독점이다. 그 구절은 사실 왜곡이다. 6·25전쟁의 근원은 북한의 남침이다. 중국의 시각은 ‘내전 폭발’. 그로 인해 평화가 깨졌다. 동북아 질서가 요동쳤다. 압록강 단교에 항미원조 기념조각상이 있다.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팽덕회)와 중공군이 형상화됐다. 도강 직전 장면의 묘사다. 받침대 글씨는 ‘爲了和平(위료화평, 평화를 위하여)’. 그 글자는 조각상의 침공 이미지와 충돌한다.
 
시진핑의 언어는 미국을 겨냥한다. 미·중의 군사·경제 대립은 험악하다. 그의 발언은 한국을 배려하지 않는다. 한국인의 역사적 시련을 외면한다. 항미원조로 당한 고통은 묵살된다. 그것은 다수 한국인의 분노와 반발을 낳는다. 문재인 정권의 반응은 침묵이다. ‘문재인 사람들’은 제3자의 방관적 자세다.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일본·미국 지도자들이 그랬으면 어땠을까. ‘문재인 사람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마오의 한국 경멸은 중국 리더십의 유전자다. 그의 야심은 시진핑의 중국몽으로 부활했다. 그것은 한반도 신조공(朝貢) 체제다. 국제관계의 속성은 인간관계와 같다. 저자세는 더 큰 모욕을 불러온다. 용기와 당당함이 적시에 요구된다. 그것이 건강한 협력과 교류를 보장한다.
 
동북아는 기억의 전쟁터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과의 전선에 치중한다. 중국과의 전선에선 패주하고 있다. ‘문재인 사람들’은 중국 세력권에 편입하려 한다. 그 자세는 자발적이다. 한국 역사는 수모로 얼룩진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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