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찬호의 시선] "우상호 · 고민정,고개 홱 돌려 피해가더라" 빨간 조끼만 보면 도망가는 ‘노동 존중’ 민주당

중앙일보 2020.10.22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강찬호 논설위원

강찬호 논설위원

“민주당이 이렇게 변했구나! 입만 열면 ‘노동자가 먼저다’라던 민주당이 노조 위원장 얘기도 못 들을 정도로 변했어!”
 

이스타 노조위원장 열흘째 단식
여당 의원들,눈 안 마주치며 외면
대통령이 ‘이상직 진상’ 밝힐 때

지난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 최근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이상직(현 무소속 의원)이 창업주인 이스타항공의 노조위원장 박이삼이 출석해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9개월째 300억원 넘는 임금이 체불되고 600명 넘는 직원들이 해고된 딱한 처지를 호소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짧게 하라!” “적당히 하자!”고 윽박질렀다.
 
박이삼이 “이게 정상적인 나라입니까”라고 반문한 순간 임종성 의원이 “연설하러 온 것도 아니고 말이야… 어느 정도 해야지”라며 “짧게!”를 연발했다. 윤준병 의원도 “일방적으로 하는 얘기”라며 “오버했다고 인정하라”고 가세했다. 이에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뭐가 오버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이러겠나”고 항의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노동운동가 출신으로 국민의힘 환노위 간사인 임이자 의원(재선·상주문경)이 “민주당이 변했다!”고 외친 이유다.
 
민주당은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해왔다. 노조가 당사를 7번이나 찾아갔지만, 어느 의원 하나 만나주지 않았다. 이낙연 대표에게 대책을 촉구하는 서한도 보냈지만, 달포 넘게 무소식이다. 결국 노조위원장 박이삼은 국회 정문 앞에 천막치고 단식에 들어갔다. 22일로 9일째다. 그의 체중은 6일 만에 4kg이나 빠졌다. 하지만 입에선 노기 띤 열변이 속사포처럼 튀어나온다.
 
“내가 ‘왕문빠’였다. 자고 나면 촛불 집회 나갔던 사람이다. 그런데 요즘 민주당의 민낯을 보니 치가 떨린다. 갑자기 택배 노동자들 열심히 찾아간다는데 국회 바로 앞 차디찬 땅바닥에서 굶으며 농성하는 우리에게도 한번쯤은 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매일 내 앞 지나가는 민주당 의원들은 나랑 눈도 안 마주친다. 우상호 의원이 지나가다 나랑 마주치니 홱 눈길을 돌리더라. 고민정 의원도 그랬다. 분명히 우리를 의식은 하는데, 저 멀리서 보고 오다가 고개 돌리고 가버린다. 빨간 조끼(이스타 노조원 복장)만 보면 도망가는 거다. (몰라봤을 수도 있지 않나?) 민주당사 앞에서 그렇게 집회 많이 했는데 우릴 왜 모르겠나. 그때 정청래 의원도 지나갔는데 ‘생’까더라(모른 척하더라). 민주당에서 눈곱만치라도 해줬으면 내가 이렇게 단식까지는 안 했다. 노동이 먼저라는 이 정부 들어 정규직을 이렇게 많이 해고한 업체는 없었다. 그나마 생뚱맞게 임이자 의원 등 국민의힘에서 힘써줘 국감장에서 목소리나마 낼 수 있었다.”
 
이스타 사태는 청와대·민주당의 외면과 정부의 직무유기가 본질이다. 국토교통부는 경영진의 묻지마식 셧다운 조치를 눈감았고, 고용노동부는 체불을 눈감았고, 국세청은 탈세 의혹을 눈감았다. 검찰도 노조와 야당이 고소한 숱한 의혹(배임·횡령·불법증여 등)을 뭉개기로 일관하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휘하는 대검찰청이 관할 지검(전주)에 수사진을 보강해줘 비로소 수사에 기지개를 켰을 뿐이다. 민주당 의원들이 멀찍이 돌아가는 박이삼 위원장의 단식농성장에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항공노동자 출신인 허은아 의원을 필두로 주호영 원내대표와 임이자·김성원·성일종 의원이 잇따라 박 위원장을 만나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을 편든 ‘문빠’가 주류였던 이스타항공 노조가 지금 기댈 곳은 ‘국민의힘’과 ‘윤석열’뿐인 현실이 기막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서야 한다. ‘이상직’의 ‘이’자만 나와도 정부는 경기를 일으키고, 여당은 탈당해 남이 된 의원을 ‘결사옹위’하고 있다. 이상직의 뒷배가 보통 뒷배가 아니고선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이상직은 문 정부 출범 직후 대통령 직속 일자리 위원을 거쳐 요직인 중소벤처기업진흥 공단 이사장을 지냈다. 4·15 총선에선 지지율 1위를 달리던 경쟁자가 이유 없이 탈락한 가운데 손쉽게 공천돼 재선 금배지를 달았다. 그가 창업한 이스타항공은 남북교류가 한창이던 2018년 잇따라 방북 전세기에 선정돼 정권과 끈끈한 관계란 설이 돌았다. 또 이스타항공이 지급보증을 서 준 타이이스타젯에는 문 대통령 사위가 근무했다.
 
이상직이 누린 이례적 특혜들이 청와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추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저 이상직을 탈당시킨 것으로 손을 털 수 있다 여기면 오산이다. 불법 의혹의 사이즈가 엄청나고, 피해자 숫자도 대규모다. 정권이 진상을 가리면 가릴수록 의혹은 더욱 커지고, 공분의 칼끝은 청와대를 향할 것이다. 그전에 국민에게 투명하게 진상을 밝히고, 이스타항공 노동자들을 구제하는 게 옳다.
 
강찬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