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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관범의 독사신론(讀史新論)] 전사와 전사가 맞붙은 근대 신문명의 표상

중앙일보 2020.10.22 00:15 종합 22면 지면보기

대한제국 운동회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기마전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 기마전은 어린이들의 단결과 사기를 일깨우는 예전 학교 운동회의 단골 종목이었다. [중앙포토]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기마전을 벌이고 있는 아이들. 기마전은 어린이들의 단결과 사기를 일깨우는 예전 학교 운동회의 단골 종목이었다. [중앙포토]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한로(寒露)를 지나 곧 상강(霜降)이다. 찬 이슬 맺히고 서리 내리는 이 절기는 수확의 계절이다. 예로부터 망종 후 보름 동안 모내기하고 상강 후 보름 동안 가을걷이한다고 했다. 한 해 농사를 보는 기쁨이 얼마나 클까. 그 기쁜 마음으로 곱게 물든 단풍을 구경하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울까.
 

정부가 서양식기·만국기 빌려줘
내외빈 출동하고 관광객도 몰려
운동장에 대문과 군막까지 설치
공격팀과 방어팀, 초대형 이벤트

어느 해 정약용은 상강 사흘 후 백련사 단풍잎을 구경하고는 빛과 소리를 생각했다. 한 해의 풍광은 하나의 악장(樂章)이던가. 첫 악기로 음을 내서 아름답게 음악을 연주하다가 마지막 악기로 음을 거두어 감추듯 그렇게 꽃이 피고 우거지고 화려한 단풍이 들다가 이내 풍광이 거두어져 감추어진다는 것. 늦가을은 천지의 마지막 음악인가.
 
늦가을의 단풍은 자연의 잔치다. 아직 늦가을에 이르기 전 청명한 가을 하늘을 이고 열리는 사람의 잔치도 있다. 가을 운동회가 그것이다. 시골 마을에서 가을에 열리는 학교 운동회는 온 마을의 잔치였다. 시인 이성교의 시집 『보리 필 무렵』(1974)에는 잔치의 정경이 잘 그려져 있다. ‘둥둥 북소리에 만국기가 오르면 온 마을엔 인화(人花)가 핀다.’(1연) ‘차일 친 골목엔 자잘한 웃음이 퍼지고 아이들은 쏟아지는 과일에 떡타령도 잊었다.’(4연) 시집이 나왔을 무렵 한국 사회는 운동회가 위축돼 있었다. 기부금 징수 문제로 한동안 운동회가 금지됐고 재개한 뒤에도 경비 조달 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최남선과 문일평, 임시 소식지 발행
 
1906년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교본』 권4에 소개된 운동회 경기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1906년 『보통학교 학도용 국어교본』 권4에 소개된 운동회 경기 모습. [사진 국가기록원]

한국 학교에서 운동회를 시작한 것은 신학문을 가르치는 근대 학교가 설립되면서였다. 특히 대한제국 학부는 관립 소학교와 외국어학교의 운동회 개최를 지원했다. 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  
 
『학부내거문(學部來去文)』(규 17798)에는 관련 공문서가 편철돼 있다. 이를테면 1899년 어학교 연합 운동회와 소학교 운동회에 필요한 집기를 지원하기 위해 학부는 외부에 공문을 보내 대여를 요청했다. 이후 운동회 관련 공문서가 보이지 않는다. 또 다른 『학부내거문(學部來去文)』(규 17774)에는 1906년과 1907년의 운동회를 위해 학부가 이번에는 의정부에 집기 대여를 요청하는 공문이 들어 있다.
 
대한제국 학부가 외부 또는 의정부에 요청한 집기는 대개 만국기와 식기였다. 식기의 이름을 표기하는 방식이 재미있다. 빌릴 때는 폭쓰·쓰분·도자(刀子)·중접시(中接匙)라고 썼다가 돌려줄 때는 삼지시(三枝匙)·양시(洋匙)·도자·중접시라고 썼다. 스푼과 포크를 모두 숟가락으로 풀이해서 스푼을 서양 숟가락, 포크를 삼지 숟가락이라 표기했음이 인상적이다. 맥주잔은 맥주배(麥酒盃)라고 표기했고 유리컵은 유리곡보(琉璃曲甫)라고 표기했다. 도자는 나중에 양도(洋刀)라고 표기를 바꾸기도 했다. 모두 서양 음식에 필요한 식기인데, 외국인 내빈도 운동회를 참관했음을 의미한다.
 
문일평

문일평

대한제국 사회에서 학교 운동회는 단순한 체육 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학문을 가르치는 학교가 문명을 선보이는 특별한 이벤트였다. 1907년 전주 진북정(鎭北亭)에서 열린 전주 공립보통학교 운동회에는 많은 관중이 운집해 구경했는데 ‘전주 파천황 성거(盛擧)’라고 할 정도로 대성황이었다. 전주가 예부터 부화(浮華)의 풍속을 숭상했는데 이제 실학에 힘써 문명에 도달할 것이라는 신문 논평도 나왔다. 1910년 평양 대성학교 운동회는 더욱 빛나는 문명 행사로 비쳤다. 과장된 수치일지 모르나 4000~5000명의 관광객이 모였고 운동회 소식을 특별히 전하고자 임시로 시보사(時報社)를 설치해 최남선과 문일평이 주필을 맡아 소식지를 6호나 발행했다.
 
최남선

최남선

학교 운동회 진행에는 운동 경기를 위한 시설물, 곧 운동장 설치가 필요하다. 개성학회가 1909년 반구정(反求亭) 앞에서 개최한 운동회에 대해서는 이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다. 즉 운동장 입구에는 대문을 세워 안팎에 이화(李花)와 태극(太極)이 새겨진 현판을 높이 달고, 다시 동쪽과 서쪽으로는 색색 주단으로 화려하게 수놓은 협문(挾門)을 세우며, 중앙에는 35척 높은 장대에 태극기를 매달고 운동장 안에 만국기 600여 개를 걸었다고 한다. 1907년 만월대(滿月臺)에서 열린 개성 공·사립 학교 연합 대운동회는 운동장 좌우에 군막(軍幕)을 차례로 배열했다고 한다.
 
운동회 경기로는 무엇이 있었을까. 위에서 말한 만월대 운동회는 한 가지 사례로 참고할 만하다. 오전 10시에 개회하면 운동가를 제창한 다음 학교 대표 다섯 명씩을 선발해서 백보(百步) 경주, 정장(正裝) 경주, 취물(取物) 경주의 순서대로 경기를 진행했다. 점심을 마친 후에는 계산(計算·달리기 도중 계산 풀기) 경주, 투구(投球) 경주, 기마 깃발 뺏기 등이 이어졌고 여학생의 회간(廻竿·장대 돌아오기) 경주도 있었다. 저녁이 되면 만세를 외치고 내빈의 연설을 들은 다음 운동회를 마쳤다. 앞서 전주 진북정 운동회도 그랬지만 같은 해에 펼쳐진 개성 만월대 운동회도 기백 년간 처음 맞이하는 성대한 행사였다고 명성이 자자했다.
  
갑·을·병 등수 판정 놓고 시비 일기도
 
운동회는 경기만 치르는 것이 아니라 등수를 가려 시상까지 마쳐야 하는 행사였다. 오늘날 올림픽 경기에 금·은·동메달이 있듯이 이 당시 운동회에도 갑등·을등·병등이 있었다. 때로 등수 문제 때문에 분쟁이 일어났다. 1906년 서울 훈련원에서 열린 소학교 연합 운동회는 강화 보창학교 학생이 제광(提筐·광주리 끌기) 경주에서 갑등인데 병등으로 강등되고, 인천 영화학교 학생이 계산 경주에서 병등인데 탈락해 버리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특히 서울 계산학교 학생이 계산 경주에서 갑등인데 학부 관리가 억지를 부려 탈락시키고 심지어 항의하는 학교 교감 유근(柳謹)을 구타하자 분노한 계산학교는 수상한 상품을 모두 반납하고 일제히 학교로 돌아가 자체적으로 시상했다.
 
이동휘

이동휘

운동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어느 의미에서 씩씩한 전사(戰士)였다. 운동회는 전사와 전사 사이에 일어나는 혈전을 보여주는 거대한 공연이었다. 1907년 당대 최고의 교육자로 성망이 높았던 이동휘(李東輝)는 강화군 찬성회와 기독교 교회의 도움을 받아 강화 보창학교 및 32개 지교와 인근 학교가 연합한 강화 대운동회를 열었는데, 이 운동회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새로 발명한 경기인 ‘방어공격’이었다. 420명 이상이 참여한 이 대형 경기에서 공격팀은 포병 및 보병 소대·결사대·적십자로 꾸몄고 방어팀은 장사진(長蛇陣) 편성, 성곽 호위로 꾸몄다. 결사대의 활약과 적십자의 의무를 핵심 장면으로 전투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근대 한국의 학교 운동회는 새로운 풍속도였다. 서울·강화·개성·평양·전주, 그밖에 전국 각지에서 열린 운동회는 지역 사회에 초유의 광경을 선사했다. 그 후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 광경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마도 올해처럼 급격한 광경의 변화가 일어났던 해도 드물지 않았을까. 내년 가을에는 곱게 물든 천지의 마지막 음악을 듣기 전에 학교 운동회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영화 속의 옛날 운동회
아름다운 시절

아름다운 시절

학교 운동회는 늘 작은 축제였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는 오자미 던지기 했던 일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에는 카드 섹션 했던 일이 생각난다. 미션 달리기도 있었는데 어떤 짓궂은 남학생은 미션 종이를 던져 버리고 응원 연주하러 온 여학교 악단 한 명의 손을 잡고 뛰기도 했다.
 
한국영화 감상하며 옛날 운동회를 추억할 수 있을까. 어떤 작품이 좋을까. 1998년과 1999년에 각각 개봉한 ‘아름다운 시절’(사진)과 ‘내 마음의 풍금’이 떠오른다. 두 작품은 각각 1950년대의 전라도 마을과 1960년대의 강원도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 영화 속에 많은 장면이 있지만 학교 운동회도 인상적이다. 2016년에는 ‘운동회’라는 제목의 가족 영화도 나왔다. 한국영화로 보는 학교 운동회의 역사, 영상역사학의 한 가지 소주제다.
 
노관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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