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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철도·담배·통신·IT…산업 독점 때마다 공중분해 칼 뺐다

중앙일보 2020.10.22 00:04 경제 3면 지면보기
이번엔 구글이다. 130년에 걸친 미국의 반(反)독점 규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업체인 구글이 장식하게 됐다. 미국 법무부가 20일(현지시간) 구글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면서다. ‘석유왕’ 존 록펠러와 투자은행 JP모건의 창업자 존 피어폰트 모건을 무릎 꿇렸던 칼날이 구글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 ‘반독점’ 규제의 역사
1890년 셔먼법 “경제 독점 안돼”
석유왕 록펠러, 철도왕 JP모건 등
수십 개 회사로 분할, 무릎 꿇려
MS 분할 피했지만 빌 게이츠 퇴장

미국의 반독점 규제는 사법 당국의 단순한 기업 손보기가 아니다. 자유 경쟁은 시장경제의 핵심 요소다. 그 경쟁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총력을 다해 독점 출현을 막아온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석유·철도와 담배, 통신에서 정보기술(IT)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산업 구조가 바뀌는 고비마다 등장한 반독점 규제는 자유경쟁의 파수꾼 역할을 했다.
 
거대 기업 운명 가른 미국의 반독점 규제 130년

거대 기업 운명 가른 미국의 반독점 규제 1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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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첫 반독점법은 1890년 제정된 셔먼법(the Sherman Act)이다. ‘공정경쟁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로 불리는 이 법은 대표 발의자인 공화당 존 셔먼 의원 이름을 땄다. 록펠러가 1870년 세운 정유회사인 스탠더드오일이 미국 각지의 석유 기업들을 인수하면서 미국 내 석유 생산량의 90%를 점유한 게 발단이 됐다. 19세기 후반 산업의 쌀인 석유를 특정 기업이 쥐락펴락한 것이 문제였다. 셔먼은 당시 “정치에서 전제 군주를 원치 않듯, 경제에서도 독점 기업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반독점 규제 역사에서 가장 굵직한 사건은 스탠더드오일의 해산이다. 미 법무부는 1909년 스탠더드오일을 셔먼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대법원은 1911년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며 기업 분할을 명령했다. 스탠더드오일은 34개 기업으로 흩어졌다. 그 후신이 엑손모빌과 셰브런 등이다.
 
JP 모건이 소유했던 철도 기업인 노던 시큐리티즈 역시 반독점법의 철퇴를 맞고 해체됐다. 미국 담배 시장의 95%를 독점했던 아메리칸 타바코도 반독점 위반 혐의로 제소된 뒤 1911년 11개 회사로 찢겼다.
 
반독점 규제 역사는 미국 산업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미국 산업에서 통신업이 부상한 1980년대엔 미국 최대 통신사였던 AT&T가 도마 위에 올랐다. AT&T는 장거리 통신 사업 본부와 미국의 22개 지역의 시내 전화 사업을 독점하던 공룡이었다. 법무부는 AT&T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법원이 법무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AT&T는 1984년 7개 지방전화사업 회사를 포함한 8개의 개별 기업으로 분할됐다. AT&T는 장거리 통신사업 운영회사로 쪼그라들었다. 이후 통신 시장의 자유경쟁이 활성화됐고 2000년 설립된 버라이즌이 AT&T를 제치고 2009년 미국 내 업계 1위가 됐다.
 
IT가 대세가 된 1990년대엔 마이크로소프트(MS)가 규제 대상이 됐다. MS가 윈도우 체제를 판매하면서 MS워드 및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 다른 프로그램까지 한꺼번에 끼워팔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법무부는 2000년 MS를 제소하며 운영 체제를 판매하는 기업과 기타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기업으로 각각 분할하라고 요구했다.
 
지난한 법정 공방 끝에 MS는 기업 분할을 피했다. 대신 엄청난 벌금을 물고 사업 운영 방식을 개편했다. 창업자 빌 게이츠가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내려와 경영 일선을 떠난 것도 그 여파였다. 반독점 규제는 산업계의 굵직한 인수합병 여러 건도 제동을 걸었다. AT&T의 T모바일 인수(2011년) 무산도 그중 하나다. 반독점법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대표주자가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다. 그린스펀은 2014년 쓴 글에서 “셔먼법은 새로운 기업이 인수합병을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새로운 제품을 만들 기회를 죽이는 법”이라며 “경제적 불합리성과 무지의 결과”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반독점 규제 필요성에 대한 미국 내 공감대는 공고하다. 자유 경쟁의 토양을 조성하기 위해 때로는 사법적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초당적으로 공유하는 가치다. 이달 초 미 하원은 “(구글·애플·MS·페이스북 등) 빅테크 업체들이 과거 석유·철도회사처럼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며 449쪽짜리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미 법무부의 이번 반독점 제소는 구글이 IT 업계에서 지배적 위치를 남용해 독점을 강화한다면 ‘넥스트 구글’이 나올 수 없다는 우려가 녹아있다. 그 배경은 기업보다 시장이 먼저라는 철학이다. 미국 검색엔진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업계 지배력을 감안하면 제소는 시간문제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예견됐던 조치”라고 평가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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