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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져야 산다는 코로나 역설..."일상의 절반이 날아가버렸다"

중앙일보 2020.10.20 05:00
양조시설을 갖춘 맥주 가게(브루펍)를 창업하려던 이재성(27·충북 청주)씨는 최근 꿈을 접었다. 예정대로라면 지난 4월 양조 기술을 배우고 사업 밑천을 만들기 위해 호주로 떠났어야 했다. 이를 위해 국내 양조 공장에서 일하며 비행기 푯값, 현지 정착비용도 모았다. 수년간 차근차근 세워온 계획을 꺾은 건 코로나19 확산이었다.    
 

[시리즈]‘코로나 섬’에 갇힌 인류①
코로나19 10개월째, 유럽·미 재확산
확산과 봉쇄 반복 '끝 안 보이는 터널'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 조사에서
"코로나 이전 일상 생활 절반도 못해"
젊은층·여성에서 일상 위축현상 뚜렷

최근 영국에서 한 학생이 기숙사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길고 긴 코로나19 터널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인류는 '코로나 섬'에 갇힌 형국이다. [AFP=연합뉴스]

최근 영국에서 한 학생이 기숙사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길고 긴 코로나19 터널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인류는 '코로나 섬'에 갇힌 형국이다. [AFP=연합뉴스]

그는 “올 초까지만 해도 과거 사스나 메르스 사태 때처럼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면서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이씨는 “수년간 경험하지 못한 급격한 변화를 지난 7개월 동안 겪으면서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면서 “기업 채용문도 좁아져, 그나마 예정대로 시행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8일(현지시간) 40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 약 111만명이 사망했다. 문제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류가 '코로나 섬'에 갇힌 형국이다. 
 
미국과 유럽은 가을철에 접어들면서 재확산 조짐이 뚜렷하다. 미국에선 16일 하루 확진자가 7만명 이상 쏟아졌다. 미국 일일 확진자는 지난달 말 3만명대로 줄었다가 이달 들어 다시 평균 5만명대로 늘었다. 미국에서 하루 확진자가 7만명 넘게 나온 건 지난 7월 대유행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마스크를 쓴 영국의 한 젊은이가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영국의 한 젊은이가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16일 유럽에선 15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유럽은 코로나19가 한창 심했던 지난 3~4월에도 하루 확진자가 5만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상황이 이처럼 다시 심각해지자 각국은 모임 인원을 제한하거나 야간 통행 금지령을 내리는 등 거리 두기를 다시 강화하고 있다.  
 
이런 코로나19의 장기화에 개인들의 일상은 위축·단절되고, 장기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워졌다. 국내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일상적으로 하던 활동의 절반도 하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연구팀(총괄 유명순 교수)은 코로나로 일상이 얼마나 위축됐는지 대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1000~2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7월 2~5일, 8월 6~9일, 8월 25~28일 세 차례에 걸쳐 실시됐다.  
 
설문 대상자들은 자신의 코로나 사태 이전과 비교해 최근 활동 수준을 평가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과 같은 일상' 수준은 100점, '일상의 완전한 위축‧정지' 상태는 0점이다.    
 
그 결과 전국 하루 확진자가 50~60명대이던 7월 2~5일의 평균 점수는 47.9점으로 나타났다. 이어 8월 25~28일 실시된 조사에선 44.1점으로 3.8점이 더 하락했다. 8월 중순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진자 수가 치솟아 하루 전국 확진자가 세 자릿수를 이어가자 수도권은 8월 18일부터, 전국은 같은 달 23일부터 거리 두기 2단계를 시행했다.
 
스페인에서 화상 수업을 듣는 학생들.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에서 화상 수업을 듣는 학생들. [로이터=연합뉴스]

유명순 교수는 “평균적으로 자신의 일상 활동이 코로나19 이전의 절반도 안 된다고 느낀다는 의미”라면서 “확진자가 늘고, 거리 두기가 강화될수록 일상의 위축 정도도 심화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회적 단절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건 한창 활동이 많은 20대 젊은 층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세 차례 조사에서 20대의 평균 점수가 가장 낮았다. 거리 두기 2단계를 시행한 8월 25~28일엔 40.5점까지 떨어졌는데, 60대 이상의 49.4점보다 8.9점이나 낮았다. 목표가 좌절된 젊은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또 여성이 남성보다 일상 위축 정도가 심했다. 세 차례 조사 모두에서 여성의 평균 점수가 남성보다 낮게 나타났다. 
 
유 교수는 “청년들은 인턴, 교환학생, 취업 준비 등 예정했던 목표들을 실현하지 못하고, 중요한 관계를 맺을 기회도 박탈되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겪고 있다"면서 "또 여성 중에서도 특히 주부는 가사‧육아 등 많을 일을 맡고 있다보니 일상 위축도 더 많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르헨티나의 한 노인이 자가 격리 중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한 노인이 자가 격리 중에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눈길을 끄는 점은 소득 수준이 높아도 일상 위축은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위축 정도가 컸으나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소득 간 ‘위축 격차’도 줄어들었다. 거리 두기가 완화된 7월 2~5일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소득자의 위축 점수는 월 소득 600만원 이상 소득자보다 7.4점 낮았다. 하지만 거리 두기가 강화된 8월 25~28일 기간엔 둘 간의 위축 점수는 2.2점 차로 좁혀졌다.  
   
국제 조사에서도 '고립'과 '단절' 은 코로나19 시대의 특징적 현상으로 지목됐다.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지난 4월 20~21일 미국 성인 1249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약 25%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관계 유지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조사 당시인 4월과 비교해 현재 약 10배가 늘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시애틀에서 자가 격리 중인 사람이 창밖을 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시애틀에서 자가 격리 중인 사람이 창밖을 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국제노동기구(ILO)가 지난 8월 전 세계 112개국 18~29세 젊은이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조사 기간 4~5월) 약 92%가 집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고 답했다.    
 
박은철 연세대 의대 교수는 “코로나 사태는 100년 전 전 세계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에 비견되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면서 “현 인류는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고립과 단절을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단절과 고립의 반복은 우울감, 분노 등 또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 1월 29일부터 지난 9월 14일까지 보건복지부 코로나19 통합심리지원단에서 이뤄진 코로나 블루 관련 상담 건수는 44만8867건으로, 이미 지난 한 해 복지부 정신건강 복지센터의 우울증 상담 전체 건수(34만3185건)를 훌쩍 뛰어 넘었다.  
 
미국인 40.9%는 코로나로 인해 적어도 하나의 정신 혹은 행동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지난 6월 24일부터 30일까지 미국 성인 547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다. 더욱이 “지난 30일 동안 진지하게 극단 선택을 고려한 적이 있나”란 질문에는 응답자의 10.7%가 “그렇다” 답했다. 실제로 일본에선 7월 이후 여성을 중심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3개월째 늘고 있다.  
 
행정안전부 감염병 예방 정책자문위원인 이동훈 성균관대 교수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립감이 지속하면 정신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콜롬비아에서 한 여성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콜롬비아에서 한 여성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산드로 갈리아 미국 보스턴대 공중보건학과장은 미 매체 NPR에 “대규모 재난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의 회복력은 연대와 결속을 통해 나오는데, 코로나19 사태는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연결을 빼앗아 갔다”고 진단했다. ‘흩어져야 산다’는 코로나의 역설이 정서적 회복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베티 레이 보스턴대 상담심리학 교수는 뉴욕타임스(NYT)에 “그 전의 어떤 재난보다 길어지는 이 코로나 사태는 정신 건강을 해치는 온상이 됐다”고 말했다.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이웃끼리 창문에서 인사하는 모습. [빈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거리 두기를 지키기 위해 이웃끼리 창문에서 인사하는 모습. [빈 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감염병 방역을 넘어선 '심리적 방역'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이동훈 교수는 “재택근무나 비대면 수업에서도 평소처럼 쉬는 시간, 식사 시간, 기상 시간 등을 정해 생활하고, 일과 이후엔 방역 지침 지키며 운동하라”고 조언했다.
 
유명순 교수는 “특정 대상에 대한 분노, 혐오는 결국 부메랑이 돼 정신건강을 해칠 수 있다"면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이 싸움에서 서로를 믿는 연대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선영‧석경민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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