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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방역 실패하고도 지지율 91% ‘코로나 독재’ 완성한 막말왕

중앙일보 2020.10.20 00:35 종합 20면 지면보기

포퓰리즘을 쏘다 ⑧ 로드리고 두테르테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의 스트롱맨 포퓰리스트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필리핀 드라살레 대학 홀리오 티한키 교수, 필스타 10월 6일자)
 

위기 때 더 끌리는 포퓰리즘 리더십
불안감 더 키우고 가스라이팅까지
국민을 포퓰리즘 선글라스로 길들여

그중 단연 발군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강하게 ‘코로나 독재’를 완성했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나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저리가라였다. 포퓰리스트의 완성형이 ‘전체주의적 독재자’라면 두테르테야말로 그것에 가깝다. 애초 그의 코로나 대응은 실수투성이였다. 올 초 중국발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필리핀은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과학적 근거도 없는 허풍이었다. 아니나다를까. 금세 필리핀 확진자는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늘어났다. 두테르테는 재빨리 방향을 틀었다. 그는 코로나 봉쇄령, 강력한 통제를 선택했다. 어렵고 힘들 때 국민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그는 그런 심리를 최대한 이용했다. 결과는 대만족. 봉쇄조치를 강화할수록 지지율이 올랐다. 두테르테는 정치적 위기를 되레 권력 강화의 기회로 바꿔냈다. 그의 봉쇄조치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가혹했다.”(리차드 헤이달리안 교수, 닛케이 아시안 리뷰 7월 30일자)
 
“코로나 봉쇄령에 저항하면 사살하라”(2020년 4월 1일) (※그의 명령이 떨어진 지 사흘 만에 필리핀 남부의 한 경찰관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낫을 휘두르며 항의한 63세 남성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군·경에 사회적 거리두기와 통행금지 집행을 지시했다. 이것은 계엄령과 같을 것이다. 국민이 선택하라.”(4월 14일) “(초·중고교 휴교령을 내리면서) 졸업을 못 하게 돼도 어쩔 수 없다.”(5월 28일)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체포하라.”(7월 21일) “감염이 걷잡을 수 없어진다면 군사력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8월 10일)
 
두테르테식 코로나 독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지지율이다. 그는 2016년 선거에서 39%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당선 후엔 급등해 지난해 말엔 82%로 정점을 찍었다. (필리핀 민간 여론조사기관 SWS) 필리핀 독립언론 ‘라플러’ 에 따르면 “역대 대통령은 물론 두테르테 지지율 중 가장 높은 수치”다. 포퓰리즘 연구자들에 따르면 반(反)엘리트 종족주의, 마약·범죄와의 전쟁을 통한 필리핀식 적폐 청산, 다수당을 통한 합법 독재, SNS 등 미디어 조작 등 포퓰리스트 리더의 특질을 고루 발휘한 게 두테르테 지지율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살펴볼 것이다) 한 필리핀계 미국인 변호사는 “독재자의 존재보다 그런 독재자를 국민 82%가 지지한다는 사실이 더 절망적”이라고 말했다. 더 황당한 건 코로나 사태 후 그의 지지율이 더 올랐다는 사실이다. 필리핀 공공 여론조사기관인 펄스아시아(Pulse Asia)는 이달 초 두테르테의 지지율이 91%로 치솟았다고 밝혔다.
 
방역에 성공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필리핀의 코로나 방역은 역대급 실패작이다. 지지율 조사가 있었던 이달 초 필리핀 코로나 감염자는 30만명을 넘어섰다. 확진자 순위로 세계 20위요, 동남아시아 국가 중 단연 최대다. 매일 수백~수천 명씩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지난 주말엔 35만명을 넘어섰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강력한 봉쇄조치 탓에 필리핀 경제는 올해 크게 뒷걸음칠 전망이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올해 필리핀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9.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최저다. 봉쇄조치가 강력했던 6월까지는 가족 중 하루에 한 사람만, 그것도 생필품 구매나 병원에 갈 때만 집 밖을 나설 수 있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하루 7000명 넘게 확진자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두테르테의 지지율은 더 올랐다. 정치학자 클레브 아겔레스(호주 코라벨대학)는 “불안·무질서·위기 때일수록 포퓰리즘 리더십이 쉽게 활성화된다”며 “포퓰리즘 리더는 이런 불안감을 잘 이용하는 데 능숙하다”고 했다.
 
국민 불안감만 잘 이용하면 위기 대처에 실패하더라도 지지율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두테르테뿐 아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코로나 사망자가 나왔지만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최근 지지율은 40%로 집권 후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 중이다. 미국 다음으로 740만명의 확진자가 발생한 인도 모디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해 80%에서 올해 90%로 더 치솟았다.
 
역대 필리핀 대통령 순지지율

역대 필리핀 대통령 순지지율

위기 때 스트롱맨 포퓰리스트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사용할 수단은 무궁무진하다. 불필요한 위기를 조장하는 건 기본이다. 두테르테는 코로나 위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7월 ‘테러방지법’을 발효했다. 반정부 시위는 물론 정부에 대한 항의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필리핀판 ‘홍콩보안법’으로 불린다. 아예 시위 자체를 원천 봉쇄해 국민 불안감을 더 키운 것이다.
 
국민을 호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겔레스 교수는 “(여론팀을 활용해) 국민에 대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가스라이팅은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로 ‘상황을 조작해 남을 통제하는 행위’다. 필리핀의 청와대 말라카냥 궁 대변인 해리 로그는 지난 6일 "우땅 나 로웁(utang na loob)과 ‘강력한 리더’를 원하는 국민의 열망”  
 
덕분에 두테르테가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필리핀말 ‘우땅 나 로웁’은 ‘부채에 대한 은혜 갚기’ 정도로 풀이된다. 필리핀 국민은 빚을 지면 꼭 은혜를 갚듯 갚아야 한다고 믿는다고 한다. 해리 로그는 "필리핀 국민이 두테르테 정부에 부채의식이 있고, 그 은혜 갚기가 두테르테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리핀 정부는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올해 약 2000억 페소(약 4조7000억원)를 썼다. 올해 예산(4조1000억 페소)의 4.8%에 달한다. 두테르테의 대선 공약인 무상교육 예산 1000억 페소의 두 배다. 두테르테의 무상교육은 재정 감당이 어렵다는 경제부처의 반대에 밀려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그보다 두 배나 많은 예산을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과 저소득층 현금 지원에 썼으니, 이걸 필리핀 국민이 ‘빚’이요 ‘은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뻔뻔한 아전인수에 자화자찬이요,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더 기막힌 건 포퓰리즘의 선글라스에 길들은 국민 눈에는 그런 사실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막말로 서민 코스프레 … 두테르테에겐 다 계획이 있다
두테르테는 막말왕이다. 막말이라면 누구에 뒤지지 않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그에 비하면 애교 수준일 정도다. 그의 막말은 정치·외교·사회를 가리지 않는다. "오바마가 (자신의 마약 단속 관련 인권 문제를) 거론한다면 개자식이라고 욕할 것”(2016년 9월 아세안 정상회의 출국 기자회견) "폭도들이 여성 인질을 성폭행했다. 시신으로 들려 나온 호주 선교사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고 너무 안타까웠다. 시장인 내가 먼저 했어야 했는데”(2016년 다바오 시장 시절) "히틀러는 유대인 300만명을 학살했는데, 마약사범 300만명을 사살한다면 정말 기쁠 것”(2016년 9월).
 
이런 막말은 개인적인 성향 탓도 있겠지만,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 특히 스트롱맨들은 단순하고 천박하기까지 한 언어, 이른바 ‘단골 식당’ 대화라 불리는 언어를 즐겨 사용한다. 그래야 부자와 편 가르기, ‘서민 코스프레’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카스 무테 교수(미국 조지아대 국제관계학)는 "그들은 상스러운 언어를 구사함으로써 자신을 ‘보통 남자’와 연관 짓는다”며 그럼으로써 "정치와 정책보다 스포츠와 여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를 자처한다”고 했다.(『포퓰리즘』) 이탈리아의 우파 포퓰리스트로 북부연맹의 대표를 지낸 움베르토 보시는 "연맹은 발기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도 막말 포퓰리스트 청정구역이 아니다. 여러모로 두테르테와 많이 닮은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감 1순위로 부각되고 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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