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디지털 세상 읽기] 음모론의 발 들이밀기

중앙일보 2020.10.20 00:09 종합 31면 지면보기
박상현 (사)코드 미디어디렉터

박상현 (사)코드 미디어디렉터

지난주 미국 대선 타운홀 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앵커가 큐어넌(QAnon)이라는 단체에 대한 입장을 묻자 답을 회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큐어넌은 2016년에 자신을 지지한 세력이 변화·결집해서 생겨난 단체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트럼프는 ‘구세주’이고, 민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셀럽들은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들이라고 믿는, 음모론자의 끝판왕에 가깝다.
 
원래 미국 사회는 음모론이 넘쳐나는 사회라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큐어넌에 대해서 만큼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정치적 음모론은 그동안 페이스북과 유튜브를 통해 나이든 남성들에게 많이 퍼졌지만,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타고 퍼지면서 여성과 젊은 층으로 확대되는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서다.
 
“트럼프는 민주당원들의 아동 성폭행을 막으라는 신의 명령을 받은 사람”이라는 식의 비현실적인 주장을 처음부터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단체는 음모론을 대수롭지 않게 접하게 하는 ‘발 들이밀기(foot in the door)’ 전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큐어넌의 주장을 믿는 요가 강사 등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들이 평소 올리는 요가 사진 사이에 살짝살짝 #SaveTheChildren(아이들을 구하자) 같은 큐어넌의 주장을 끼워 넣는 식이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큐어넌 관련 계정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수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들이 퍼뜨리는, 언뜻 보면 무해한 것처럼 보이는 메시지를 단속하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사용자 규정을 어긴 대목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큐어넌은 이런 구멍을 노리고 음모론을 쏟아내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 단체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고 있다.
 
박상현 (사)코드 미디어 디렉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