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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인사이드]북한 열병식 주인공은 김정은, 김여정과 현송월은?

중앙일보 2020.10.19 17:21
지난 10일 새벽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지난 10일 새벽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지난 10일 새벽 0시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행사는 역사상 최초로 심야 시간대 열렀다. 우리는 이 소식을 19시간 만에 접할 수 있었고, 당시 북한 외 어느 국가도 실시간으로 행사 진행 여부를 보도하지 못했다. 베일에 가린 북한, 마치 ‘극장 국가’같은 체제가 지구 상에 또 있을까? 북한체제의 특수성과 이중성 그리고 생존전략을 이해해야만 답이 나온다.
 
인류학자 클리퍼드기어츠(Clifford Geertz)는 ‘극장국가(Theater State)’란 개념을 제시했다. 탈식민지 국가가 권력을 창출하면서 화려한 의식이나 공연 등에 의해 작동하는 '상징과 과시의 힘'은 물리적 강제보다 더 크게 작용한다는 의미로 처음 쓰였다. 극장의 스포트라이트는 지배권력의 힘에 집중되며 이로 인해 그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삶을 초자연적 질서로 받아들이는 국가체제를 말한다.  
 
북한에서 김정일은 ‘극장 국가’의 제작자이자 주연배우였다. 간부들은 조연으로, 주민들은 엑스트라나 관객으로 연출된다. 극장 무대에는 각종 상징적 건축물이 지어진다. 서사, 드라마, 피바다 가극, 대규모 아리랑 축전, 군사 퍼레이드 등의 국가적 의식행사를 반복한다. 그래서 지도자를 국가와 동일시하고 상징화하여 정통성과 권위를 재생산해내며 인민의 ‘동의’와 ‘동원’을 일상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극장 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지난 10일 열병식에서 화성-15형 ICBM이 주석단 앞을 지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지난 10일 열병식에서 화성-15형 ICBM이 주석단 앞을 지나고 있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김정은 정권도 선대처럼 공포정치와 핵 무력 고도화에 전념함에 따라 악화한 민생과 민심을 결속시키고 대내외에 무언(無言)의 힘을 과시해야 할 극장 국가식 예술정치가 급하게 요구된듯하다. 지난 8월 13일 정치국회의에서 김 위원장이 당 창건 기념행사를 “특색있게 준비”하라고 지시한 데서도 이미 암시한 바 있다. 예상치 못한 삼중고로 인민의 ‘동의’와 ‘동원’이 필요했다.
 
이번 심야 열병식(이하 ‘영화’)이라는 극장 국가 무대의 주연배우는 김정은, 조연은 이병철·박정천·현송월, 감독은 김여정, 관객은 평양의 핵심계층 실세들이었다. 의도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유일 영도자 김정은의 극진한 애민 지도자상 연출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우외환을 억제력으로 지키겠다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절제된 힘의 과시’로 자칭 ‘정의의 전쟁’에 대비한 ‘핵 억제력’을 대내외에 은근히 과시했다.  
 

김정은 주연, 현송월 조연, 김여정 감독 

 
영화의 제1부는 30분 동안 감성에 호소한 김 위원장의 긴 연설이 시선을 끌었다. 연설의 핵심은 유일 영도자의 애민 리더십을 부각하는 데 집중됐다. 그러면서 가혹한 장기적 제재와 외부의 전쟁위협을 억제하고 설상가상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오류·무결점의 수령일지라도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항력을 인정하는 대목들도 곳곳에서 보여줬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0일 오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중 울먹이는 모습을 방송하고 있다. [뉴시스]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0일 오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연설중 울먹이는 모습을 방송하고 있다. [뉴시스]

 
심야의 예술적·감성적 감정이입은 북한 주민의 여린 심성을 자극했다. 흘리는 눈물로 일심동체를 만들었다. ‘삼중고를 자력갱생으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은 자연재해와 외부위협에 김 위원장의 책임을 전가하는 효과도 본듯하다. 특히 어둠 속에서 화려한 조명효과로 감동을 주려는 다양한 시도는 마치 김 위원장이 김정일의 예술정치 감각을 태생적으로 이어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의 제2부는 정반대의 시그널을 주는 내용이었다. 제1부가 인민 감성의 심금을 울리는 무형의 상징조작체계였다면 제2부는 힘 있는 유형의 무기체계였다. 금방(今方) 무대의 울먹임은 자신감 있는 웃음으로 전환된다. 압권은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북극성-4형’, ‘북극성-3형’ 등 총 3종이었다. 누가 봐도 새로운 미 행정부를 겨냥하는 협상 카드다. 그동안 주장해 온 충격적인 행동을 감행할 수 있는 전략무기가 3가지나 더 남아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극장국가’ 반복하면 ‘정상국가’ 더 멀어져

 
열병식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이 2018년부터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비핵화 협상 기간에도 신형 ICBM 개발, 신형 전술미사일실전 배치, 신형 수중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3형과 4형 제작, 신형 3000t급 잠수함과 5000t급 잠수함 건조 활동을 중단 없이 진행해 왔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사실이다. 북한 스스로가 비핵화 의지가 없음을 방증하는 물증을 분명하게 공개했다. 그런데도 우리가 애써 외면하거나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이 ‘핵 안보 대(對) 경제안보’의 딜레마와 민생악화를 무마하기 위해 상징조작으로 가려진 극장 국가로 돌아가면 안 된다. 이럴 경우 정상국가 자격을 갖추고 외부에 개방하는 것과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이참에 북한은 ‘80일전투’를 잘 마치고 8차 당 대회에서는 연기와 연출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비핵화의 길만이 소중한 인민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선언해야 한다. 이때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제대로 작동된다는 진실을 북한이 깨닫도록 우리가 모두 협력하길 소망해 본다.
 
김황록 전 국방정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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