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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대학병원 응급실 찾는 경증 환자의 이유 있는 항변

중앙일보 2020.10.19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56)

아버지가 쓰러졌다. 119 대원은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 상태가 위중하다고. 하지만 몇 번인가 전화 시도를 하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 pxhere]

아버지가 쓰러졌다. 119 대원은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 상태가 위중하다고. 하지만 몇 번인가 전화 시도를 하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진 pxhere]

“인근 대학병원 응급실에 빈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일단 작은 응급실로 들어가겠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졌다. 119 대원은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 상태가 위중하다고. 하지만 몇 번인가 전화 시도를 하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작은 병원에서도 치료가 되겠냐고 묻자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환자는 큰 병원으로 이송이 원칙입니다만, 인근 대학병원 모두가 빈자리가 없다 합니다. 지체하고 있을 여유가 없습니다. 가까운 데서 응급처치를 받고 그 후에 큰 병원으로 옮기셔야겠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구급차는 어느 종합병원 응급실로 들어갔다. 걱정과는 달리 꽤 크고 좋은 병원이었다. 지역에선 그래도 환자를 잘 본다고 소문난. 119가 미리 연락해두어서인지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의사가 뛰어나와 아버지 상태를 살폈다. 날카로운 목소리와 바쁜 손놀림이 인상적이었다. 분주히 뛰어다니는 간호사들 뒷모습이 한없이 고마웠다. 순식간에 30분이 흘렀다.
 
“겨우 한숨 돌렸네요. 환자 상태가 조금 안정되었어요. 얼른 큰 병원으로 옮기셔야 합니다.”
 
의사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무언가 많은 처치를 하길래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아버지 상태는 어지간히 큰 병원이 아니면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응급처치가 끝났으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고 빨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송 조율은 쉽지 않았다. 의사가 여러 병원에 전화를 걸었지만 족족 거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게 따지기도 하고 간절하게 애원하기도 하며 환자가 마치 자기 아버지라도 되는 양 의사는 수화기 너머로 사정했지만 그때마다 대답은 똑같았다.
 
“응급실이 가득 차 빈자리가 없습니다. 더는 추가로 환자 수용이 어렵습니다.” 전화통을 붙잡고 한참 동안 싸우던 의사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이송 가능한 응급실을 찾았다고 했다. 하지만 2시간 넘게 걸리는 타지역이란 말을 덧붙였다. 찬밥 더운밥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대답했다.
 
“이것저것 따질 처지겠습니까? 어디든 가야죠.”
 
의사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아버지 상태로는 2시간이나 되는 이동 거리를 견디기 힘들다고, 이송 중간에 돌아가실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위험을 감수하겠으면 이송동의서에 서명하라고 했다. 혹시 중간에 죽더라도 책임을 묻지 말라는 각서였다. 나는 펜을 들고 의사의 복잡한 눈빛을 마주했다. 거기엔 고맙고 미안하고 또 밉고 화남이 존재했다. 어차피 이대로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 나는 체념하고 내 이름 석 자를 또박또박 새겨넣었다.
 
의사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무언가 많은 처치를 하길래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아버지 상태는 어지간히 큰 병원이 아니면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사진 pixabay]

의사 표정이 자못 심각하다. 무언가 많은 처치를 하길래 여기서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아버지 상태는 어지간히 큰 병원이 아니면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사진 pixabay]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 응급실 정원이 40명이나 초과하였습니다. 중환자실은 물론이고 인공호흡기조차 남은 게 없네요.” 수화기를 내려놓는 마음이 불편했다. 여기가 아니면 치료가 어려운 환자다. 이런 환자를 보라고 존재하는 게 대학병원 아닌가? 그런데 수용 불가를 통보하다니.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순전히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
 
“대학병원이 못 받겠다 하면 이 환자는 대체 어떡합니까?” 상대 의사의 절절한 마지막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무언가 수를 낼 수 없을까? 고개를 들어 응급실을 둘러보았다. 문 앞까지 빼곡하게 자리한 침상들, 자리가 없어 간이의자에서 링거를 맞는 환자들, 그리고 문밖에서 울리는 요란한 구급차 소리까지. 의료진들은 반쯤 넋을 놓은 채 관성으로 뛰고 있었다. 나약해지려던 마음을 꾹 눌러 세웠다. 이런 상황에는 환자가 와도 제대로 치료해 줄 여력이 없다. 그래, 어차피 답 없는 상황이다!
 
사실 여기에 위중한 환자는 얼마 없다. 이곳을 가득 채운 환자 중 태반은 굳이 대학병원 진료가 필요치 않았다. 그들을 다른 작은 병원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우리는 오늘 또 한 명의 귀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항상 이상과는 다르다. 자기보다 위급한 누군가를 먼저 살려달라는 사람? 소중한 치료 기회를 순순히 남에게 양보할 사람? 그런 건 영화 속에나 존재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이 중증인지 경증인지 구분할 길이 없으니 자신에게 적합한 병원을 골라 갈 방법이 없다고. 사람들은 또 말한다. 동네병원은 실력을 믿을 수가 없다고. 작은 병원에 갔다가 만에 하나 중증인데 시간이 늦어지면 어떡하냐고. 하나뿐인 소중한 목숨이니 최고로 좋은 데서 진료받고 싶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차피 병원비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니. 더구나 큰 병원 진료를 막아 세우는 어떤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당신은 경증이니 작은 병원으로 가라”고 의사가 아무리 권유해도 따를 턱이 없다. 이 병원에서 꼭 진료받겠다는 고집 덕분에, 어느 급한 환자가 작은 병원에서 넘어오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고 있을 거란 건 꿈에도 모른다. 그게 당장 자기 일이 되지 않는 한은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겪고 있는 현실이건만. 분명 언젠가는 그것이 본인 일이 되지 말란 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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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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