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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지 채우고 점심은 도시락…코로나, 관리자가 제일 힘들다

중앙일보 2020.10.19 05:00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대기업 사무실이 비어 있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 확대로 사무실을 이용하는 임직원이 줄어드는 등 기업 근무형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대기업 사무실이 비어 있다.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 확대로 사무실을 이용하는 임직원이 줄어드는 등 기업 근무형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 첫 두 달은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웠어요.”
 

[기업딥톡 39] '가운데 낀' 기업 관리직의 코로나 블루 호소

10대 기업의 A 임원은 14일 이렇게 말했다. 그는 “불고기 도시락에서 햄버거까지 다양한 배달 음식을 섭렵했다”며 “처음에는 바이러스 걱정에 혼자 도시락을 먹다가 나중에는 직원들이 출근을 안 해 혼밥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 뉴 노멀 시대를 맞은 기업 관리자들은 혼밥 이외에도 다양한 애로를 하소연하고 있다.
 

관리직 코로나 블루 호소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 확대로 팀장급 이상 관리자의 직장 생활은 팍팍해지고 있다. 몰려드는 업무에 코로나 블루를 호소하는 관리직도 많다. 유통 기업에서 일하는 B 팀장이 대표적이다. B 팀장은 “팀장은 기본적으로 재택근무 열외”라며 “사무실에 있으면 회의실 예약이나 신문 정리 등 잡다한 일들이 많은데, 팀원들이 출근을 안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 몫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중소 IT 기업 개발실에서 일하는 C 팀장도 “재택근무가 자리 잡으면서 복사지 채우는 일을 내가 직접 도맡게 됐다”며 “재택근무가 끝난 뒤에도 자연스럽게 내가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10대 기업의 D 팀장은 “오프라인 회의 한 번이면 한 방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을 카톡으로 하나둘 나눠주다 보니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확 늘었다”고 말했다.
 

코로나로 인한 관리직 업무 부담 증가는 설문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잡코리아가 최근 직장인 6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45.1%는 ‘퇴근 후에도 업무를 바로 중단하지 않고, 업무와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고 답했다. 직급별로 살펴보면 퇴근해도 업무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부장 직급이 67.9%로 가장 높았다. 반면 대리 직급은 50.4%에 그쳤다. 사원 직급은 ‘퇴근과 동시에 업무를 중단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62.6%를 차지해 다른 직급과 확연히 구분됐다.
충남 청양 비봉면에 위치한 김치공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 3일 오전 김치공장 정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충남 청양 비봉면에 위치한 김치공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했다. 3일 오전 김치공장 정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폐쇄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스1

'마상' 호소하는 관리직도 

이런 가운데 직장 내 거리두기에 마상(마음의 상처를 뜻하는 직장인 은어)을 호소하는 팀장도 적지 않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진 공유 오피스에 코로나 뉴 노멀이 더해지면서 직장 내 거리두기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지난해부터 공유 오피스를 시행한 5대 기업의 E 팀장은 “공유 오피스 시행으로 가뜩이나 팀원들 얼굴 보기가 힘든데 코로나로 오프라인 회의도 못 열고 있다”며 “온종일 카톡만 확인하다 퇴근한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팀원들이 은근히 나를 피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고 덧붙였다.

코로나 뉴 노멀에도 업무방식 혁신 없어

코로나 뉴 노멀에도 일하는 방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도 직장인 사이에서 나온다. 특히 조직 상부로 올라갈수록 코로나 이전과 업무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최고경영자(CEO) 대면 보고가 대표적이다. 10대 기업의 F 임원은 “잠깐 올라와서 얼굴 보자고 하시는 대표 지시를 무시할 수 없지 않으냐”며 “언제 찾을지 모르니 마냥 자리를 비워두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G 팀장은 “임원의 경우 IT 기술에 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줌을 이용한 화상 온라인 회의장에 들어가는 방법을 하나하나 알려드려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관리직이 호소하는 코로나 블루가 '가운데 낀' 중간 관리자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란 해석도 있다. 상대적으로 적응력이 뛰어난 사원과 대리는 재택근무와 온라인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했지만, 팀·부장급 관리직은 CEO 대면 보고와 직원 재택근무 사이에 끼어 허우적대고 있다는 것이다. 관리직이 코로나 일상화에 따른 업무방식 급변의 희생양이란 해석이다. 
 
실제로 직장인 2명 중 1명은 비대면 업무 확대를 위해 보고와 지시 효율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국내 기업 300곳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 이후 업무방식 변화 실태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업무 확대를 위한 선결과제를 묻는 질문에 ‘보고·지시 효율화’라는 답변이 51.8%(복수응답)로 가장 많았다. 이어 ‘임직원 인식·역량 교육’(28.1%), ‘보안시스템 구축’(23.8%), ‘성과평가·보상제도 재구축’(15.3%), ‘팀워크 제고 방안 마련’(9.5%) 순이었다.
 

비대면 업무 대세에 적응해야 

전문가들은 코로나 뉴 노멀로 자리 잡은 비대면 업무에 관리직도 적응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박준 대한상의 기업문화팀장은 “IT 기술의 발달과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고려할 때 비대면 업무방식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코로나19가 변화를 가속하고 있는 만큼 기업도 사원 뿐 아니라 최고위급까지 업무방식 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태경 차의과대 데이터경영학과 교수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으로 단순 반복 업무는 차츰 사라질 것”이라며 “CEO부터 사원까지 모든 직급이 고루 비대면 업무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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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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