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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낙태 허용기준, 임신 14주 타당한가

중앙일보 2020.10.19 00:37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헌법재판소의 지난해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부의 후속 입법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헌재 결정 이후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4개 단체는 ‘낙태법 특별위원회’를 공동으로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의학적 측면을 고려할 때 비의학적 사유의 낙태 허용 시기는 임신 10주(70일) 미만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
 

10주 넘으면 임신부 생명 위험해져
현장 의료진 의견 입법에 반영하길

이 시기는 태아의 발달이 일정해 초음파 검사로 정확한 임신 주수 측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지난 7일 발표된 정부의 형법 및 모자보건법 입법 예고안에 임신 14주 이내에는 제한 없는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 담겼다. 임신 15주부터 24주 이내에는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기간만 거치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 낙태를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임신 24주까지 모든 사유의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임신 주수의 제한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낙태가 여성 건강에 주는 영향을 고려할 때 산부인과 등 의료계의 우려가 크다. 살 수 있는 아이를 포기하는 법안은 막아야 한다.
 
태아는 임신 10주까지 대부분의 장기와 뼈가 형성되고 이후 성장을 지속한다. 태아가 성장할수록 낙태는 과다출혈과 자궁 손상 등 합병증 위험이 커진다. 임신부 사망의 상대적 위험도가 임신 8주 이후 각각 2주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 불가피한 낙태라도 여성의 건강을 위해 가급적 임신 초기에 시행해야 하는 이유다.
 
따라서 사유 제한 없는 인공 임신중절은 대부분의 낙태가 이뤄지고 비교적 안전한 시술이 가능한 임신 10주 미만에 한정해야 한다. 임신 10주부터는 태아 DNA 선별검사를 포함해 각종 태아 검사가 이뤄지고 있어 의료적 개입에 의한 무분별한 낙태의 위험도 있다.
 
한국 사회의 남아 선호 사상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임신 14주 이내에 사유 제한 없이 낙태를 허용하면 태아의 성별 등 검사 결과에 따라 살 수 있는 아이가 낙태되는 위험을 막을 수 없다. 날로 발전하는 태아 검사가 무분별한 낙태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임신 10주 이후의 낙태는 불가피한 사유에 의한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
 
또한 임신 15주부터 24주 이내에는 상담 및 24시간의 숙려기간만 거치면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낙태를 허용하도록 한 것은 여성의 건강에 대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이다.
 
앞서 헌재가 의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인 임신 22주에 도달하기 전에 ‘결정 가능 기간’을 정하도록 한 판결을 넘어서는 허용 조처다. 인공 임신중절은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 하도록 규정한 모자보건법도 위반이다.
 
1973년 모자보건법 제정 당시의 의학으로는 인공 임신중절 허용 주수가 임신 28주 이내였다. 이후 미숙아 치료 의학의 발달로 임신 24주 이후의 출생아 생존율이 높아지면서 2009년 허용 주수를 24주 이내로 낮췄다.
 
그로부터 10여년간 비약적인 의학 발전으로 국내에서도 임신 22주에 태어난 이른둥이의 생존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오늘도 분만실에서 조산되는 아이들을 살리려고 많은 의사가 밤낮없이 애쓰고 있다. 그 결과 임신 24주 이하 이른둥이들의 생존율이 점점 높아져 과반수의 생존율을 보이고 앞으로 더 많이 살릴 것이다.
 
이러한 의료 현실을 무시하고 낙태 허용 주수를 24주 이내로 하는 것은 지나치다. 설사 사회·경제적인 사유가 있더라도 국가가 태중에서부터 아이의 양육을 책임진다는 자세로 정책을 펴서 출산하도록 돕는 것이 태아와 여성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정부와 국회는 현장 산부인과 의사들 의견을 반드시 입법에 반영하길 바란다.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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