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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모펀드

중앙일보 2020.10.19 00:15 종합 33면 지면보기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15분. 미국 최고의 자선사업가와 최고 재벌이 탄생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1901년 2월 25일,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자신이 일군 철강 회사를 J. P. 모건에게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당시 돈으로 4억8000만 달러에 달했다. 변호사도 배석하지 않았던 이날 계약으로 두 사람의 악수를 끝으로 15분 만에 끝났다. 카네기는 이렇게 번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 두 거인의 악수는 세계 최초 PE 거래로 기록됐다. PE(private equity)는 장외시장에서 비상장 기업이 발행한 증권에 투자하는 자본을 말한다. PE와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사모자본시장의 주축이다.
 
사모펀드는 수입품이다. IMF 구제금융기를 거치면서 국내에 관련 제도가 도입됐다. 글로벌 사모펀드의 한국 기업사냥에 대응하려는 목적이 컸다. 이후 국내 사모펀드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2016년 공모펀드를 추월했다. 국내 사모펀드 순자산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으로 400조원을 넘어섰다. 이는 2017년 정부 예산(400조5000억원)과 맞먹는 규모다.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이 사모펀드 순자산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사모펀드는 투자자에게 고수익을 안겨주고 기업엔 성장 발판이 되는 자본을 제공한다. 두산, 금호, 동부 등이 사모펀드를 통해 구조조정에 성공했다. 사모펀드의 순기능이다.
 
하지만 사모펀드가 정치권력과 만나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수에게만 투자 기회를 열어두는 역기능이 도드라진다. 권력자와 그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는 이번 정부 들어 눈에 띄게 늘었다.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시작이다. 조 교수는 사모펀드 불법 투자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치권 로비 의혹을 받는 옵티머스에 투자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고위공직자의 사모펀드 투자 적절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올해 초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 내역에는 진 장관의 사모펀드 투자가 포함되지 않아 고위공직자 검증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여기에 전·현직 청와대 행정관은 사모펀드 로비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금융기관 관리 감독을 맡은 금융감독원 전직 국장과 수석조사역마저 사모펀드 로비에 연루된 상태다. 권력과 자본이 밀접하게 접촉하면 부패 속도는 빨라진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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