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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산막 스쿨, 사회적 기업 만들련다

중앙일보 2020.10.18 09:00

[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65)

“발견이란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이다.”
 
새벽 산막. [사진 권대욱]

새벽 산막. [사진 권대욱]

 
20년을 보아온 산막에서도 평생을 살아온 부부에게도 그런 순간은 온다. 눈뜨자 보이는 산막의 창밖 풍경에서, 언젠가 본 곡우에서 그 모습을 본다. 부부는 역시 함께여야 하는구나.
 
누굴 위해 사는가 우리는? 그를 위해? 그녀를 위해? 또 다른 그들을 위해 산다 하지 말자.
 
“여보, 이 옷 어때?”
“음 좋네”
“이 모자는?”
“음 잘 어울리네.”
“난 운동모자 같은 거보다 이런 클래식한 모자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당신이 원래 클래식하잖아” 이렇게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돈 보내야겠네.” 지난번 생일 때 약속했던 옷이고 비싸지 않음을 알고 있다.
“아, 당신은 멋쟁이.”
 
오늘 새벽 한 사람은 이른 출근을 준비하며, 그리고 한 사람은 이른 운동을 준비하며 나눈 대화다. 문득 생각해 본다. 누굴 위해 사는가? 우리는 그를 위해, 그녀를 위해, 또 다른 그들을 위해 산다고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해바라기처럼 어떤 사람을 그리며 그들이 웃으면 웃고, 그들이 울면 따라 우는 인생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가 혹은 그녀가, 그들이 당신의 연인일 수도 있고 직장의 상사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 한 그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다. 내가 나일 때, 비로소 나의 자존이 지켜지고 자존이 지켜져야 자유가 살아난다. 과연 당신이 목숨 바쳐 애정하는 그 모든 것이,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모든 것은 나로 시작되고 나로 귀결된다. '남을 기쁘게 하여 내가 행복하고, 남을 이롭게 하여 내가 기쁘기'. 이 말을 터득하는데 칠십 평생이 걸렸다. 사랑하고 충성하지 말란 이야기가 아니다. 그 모든 곳에 내가 주인이며, 그 모든 것에 내가 있음을, 그 모든 것이 궁극으로는 나를 위함임을 잊지 말라는 이야기다.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발견(을 하는 능력), 의도하지 않은 발견, 운 좋게 발견한 것’을 뜻한다.
 
날은 신선하고 바람은 서늘하다. 일하기 좋은 때다. 제멋대로 자란 수목 줄기와 나뭇가지들을 예초기와 트리머로 예쁘게 정리해 준다. 하루에 다 못한다. 긴 호흡으로, 큰 그림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며 쉬엄쉬엄 해 나간다. 인생사 다 그렇듯 급히 서둘러 좋을 일 없고 급한 성미를 다스리는데 이만한 수양이 없다.
 
그림을 그린다. 흙 100차쯤 받아 낮은 곳 돋우고 높은 곳 내리고 평평히 골라 멋진 평원을 만들고, 잣나무 숲엔 트리하우스를 만들고 싶다. 차박이든 글램핑이든 오고 싶은 사람 오게 하고, 산막 스쿨은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해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거다. 계곡 옆 하천부지에는 캠핑장을 만들고, 물은 여기서 화장실은 저기에 구름이 그림 그리듯 마구마구 상상의 나래를 편다. 오랜 장마에 많이 우울했었다. 활짝 갠 가을 하늘만큼 큰 나래를 편다. 그래, 내가 할 일이 참 많구나. 할 일이 많아 참 행복하구나.
 
오늘은 단지 내 수목을 정리했다. 독서당 옆이며 뒷산의 칡넝쿨이며 잡목을 간벌해주고, 큰 나무 외 잔가지는 모두 긁어모아 지풍화수 자연으로 돌려보낸다. 낫과 정글도를 기본으로 하고, 예초기와 트리머, 톱과 장대, 나무 커터 갈퀴와 사다리를 이용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서 6시간의 중노동을 겪었지만, 정신은 명징하다. 보이는 흰색 작업복은 일회용이지만 세 번은 입을 수 있고 상당히 견고해 나뭇가지나 웬만한 풀에도 안전하다. 저녁은 재열이 가져온 갈비탕으로 잘 먹었다. 늘 얘기하지만, 노동은 정말 많은 걸 준다. 밥 먹을 자격도 그중 하나다.
 
풀베기가 수양도 되고 소일도 되어 산막 주변까지 확장하고 있는 와중에 지나다니던 아랫마을 분들이 “수고하시네요” 하기도 하고 그냥 말없이 보기도 한다. 어제 제부도 돌아오는 길에 살펴보니 내가 다하지 못한 마을 어귀 진입도로 입구까지 깨끗이 정리되어 있더라고 했다. 그렇구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도움을 받으려면 스스로 먼저 움직이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구나. 맨날 쿵작거리고 노는 줄만 알았더니 이런 기특한 일도 하는구나. 그런 마음이 그들의 마음도 움직였구나 싶다. 지역 공동체에 조금은 덜 미안해진 곡우가 참 잘했다고 칭찬도 하니, 떳떳해진 내 마음도 참 좋다. 이제 진입로는 되었으니 계곡 건너 풀밭이나 정리해야겠다.
 
 
날마다 SNS로 여는 나에게 페북과 유튜브는 이제 일상이자 직업이 되었다. 구독자 2495명, 콘텐트 823개. 그 내용은 촌철활인, 행복한 경영 이야기, 유비 서당, 유비 시당, 산막일기, 산막 투데이, 아르스 비테(삶의 기술), 페러데이 영어, 팝송영어, 노래 등 다양하고 빈번하지만 아직은 미미하고 불비하다. 그러나 꾸준하고자 하며 그 꾸준함을 사랑하려 한다.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 세상을 떠난 마음(出世之心)으로 세상의 일을 할 수밖에 없는 한계. 삶과 일을 구분치 않는 무경계적 삶. 공헌과 기여라는 여생의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꿈이 이 행위에 존재한다. 보잘것없다 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 행위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세월을 낚아 자유의 길로 향하는 출구인 셈이다. 그러니 꽤 절실하다. 심심파적이거나 일시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여 이리저리 홍보도 하고 톡도 보내고 한다.
 
이러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나의 절실함을 몰라주는 섭섭함과 다른 사람들의 절실함을 몰라주던 나의 미안함이다. 그래서 내게 보내오는 지인이나 페친들의 구독 좋아요 요청에는 특별한 경우 아니면 모두 응하고 있다. 아마도 그분들에겐 어떤 만남이나 선물보다 귀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취향과 개성이 달라 무시당하거나 경원시 되거나 배척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민폐일 수도 있다. 이해한다. 뭐라 하지 않는다. 나를 모르거나 각별하지도 않은 일반인의 경우라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적어도 ‘On’이든 ‘Off’이든 이미 친구이거나 친구 되길 원하거나 나를 팔로우 하는 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는 안 된다 믿는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나와 마음을 나누는 귀중한 인생의 도반이요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의 학반이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몰라라 한다면 당연히 도반이나 학반이 아니니 섭섭한 것이고 그 섭섭함이 이해 안 된다면 그이가 나의 친구 될 자격이 없거나 내가 그분의 친구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니 또한 미안한 것이다.
 
나 역시 많은 반성을 한다. 나는 절실하다며 부탁 아닌 부탁을 하고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부탁은 얼마나 잘 들어줬으며 그 부탁의 저변에 있는 절실함을 알아보긴 했는가? 어떤 사람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무언가를 부탁했을 때 그냥 건성으로 듣거나 말로만 알았다 하고 잊지는 않았었나? 그래서 그 사람 마음 아프게 하고 절실함이 배신당했다 여겨 평생 경원당하지는 않았는가? 그래서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많이 감사하다. 보잘것없는 내용을 구독해 주고 좋아해 주고 댓글로 소통해주시는 분들, 어찌 고맙고 귀하지 않겠는가. 진심으로 잘 되시고 복 받으시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 적어도 안면이 있거나 알거나 알만한 사람이 요청해오면 죽기 살기의 문제만 아니라면 응해주도록 하자. 그러면 당신 또한 응함을 받으실 것이다.
 
걸림 없는 자유(무애)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무애지지라 이름한 산막 . [사진 권대욱]

걸림 없는 자유(무애)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땅이라는 의미로 무애지지라 이름한 산막 . [사진 권대욱]

 
산막서 내 힘쓸 일 무엇인가? 몸 건강, 마음 건강, 기여와 공헌, 그 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수련, 명상, 울력, 공부와 나눔. 이 모든 것이 하나요, 어느 것 하나 따로인 것은 없다. 미움도 사랑도 이기도 이타도 결국은 나에게로 귀결된다. 그러니 왜 미워하겠으며 애써 구별하겠는가? 이기와 이타, 몸과 마음, 일과 삶! 이 모두가 일체요, 하나이다.
 
(주)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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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욱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필진

[권대욱의 산막일기] 45년 차 직장인이자 32년 차 사장이니 직업이 사장인 셈이다. 일밖에 모르던 치열한 워커홀릭의 시간을 보내다 '이건 아니지' 싶어 일과 삶의 조화도 추구해 봤지만 결국 일과 삶은 그렇게 확실히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애써 구분할 필요도 없음을 깨달았다. 삶 속에 일이 있고 일속에 삶이 있는 무경계의 삶을 지향하며 쓰고 말하고 노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강원도 문막 산골에 산막을 지어 전원생활의 꿈을 이뤄가고 있다. 60이 넘어서야 깨닫게 된 귀중한 삶과 행복의 교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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