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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장식에 부적을? 위트로 런던 사로잡은 한국 공예

중앙일보 2020.10.17 11:00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가 발행하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하우 투 스펜드 잇’ 9일자에 소개된 'K-craft(K공예)' 기사.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가 발행하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하우 투 스펜드 잇’ 9일자에 소개된 'K-craft(K공예)' 기사.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즈가 발행하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하우 투 스펜드 잇’ 9일자에 “K-craft(K공예)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글로벌 팬클럽을 확보한 장인들을 만나보세요”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K팝, K뷰티, K드라마 등의 엔터테인먼트 사업 수출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공예가들의 국제 행진이 기술 혁신으로 가장 잘 알려진 나라의 풍부한 전통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지난 5월 발표한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LOEWE Craft Prize)’의 최종 후보자 30명에 선정된 한국 공예작가들을 면밀히 소개했다.  
2016년 로에베 재단에 의해 시작된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행사로 ‘공예’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현대 장인 정신의 독창성과 예술적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 올해는 총 107개국에서 2920여 명의 작가가 응모했고 30인의 최종 후보 리스트에 강석근(옻칠), 김계옥(섬유), 김혜정(도예), 박성열(옻칠), 이지용(유리), 조성호(금속) 등 한국 작가가 6명이나 포함됐다. 코로나19로 최종 우승자는 내년 5월 발표된다.  
지난 9월 30일부터 10일 10일까지 런던에서는 ‘런던크래프트위크’가 진행됐다. 런던 시내 전역에 퍼져 있는 갤러리·박물관 등에서 세계의 유명 공예 작가와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전통 기술뿐 아니라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기법들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아트페어다. 올해는 새롭게 ‘크리에이트 데이(Create day)’라는 섹션이 마련됐다. 코로나19 상황을 새로운 전환의 계기로 이용해 홈페이지에서 세계 각국 공예작가들의 작업과정과 작품을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만든 섹션이다. ‘동아시아 지역’ 작가 부분에선 일본 공예작가들과 함께 6명의 한국 작가들이 소개됐다. 조완희(한지), 백한승(섬유), 김정석(유리), 주세균(도자), 정용진(금속), 김민희(섬유)가 주인공이다.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조완희 작가의 한지 공예 작품.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조완희 작가의 한지 공예 작품.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조완희 작가의 한지 공예 작품.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조완희 작가의 한지 공예 작품.

조완희 작가는 한지를 색색으로 곱게 염색해 다양한 장신구를 만든다. 조 작가는 “얇은 한지를 물을 발라가며 여러 겹 겹쳐 견고하게 만드는 과정을 ‘줌치를 친다’고 하는데 이렇게 섬유소의 물성이 바뀌면서 견고해진 한지는 예부터 귀하게 쓰였다”고 했다. 가죽이 귀하던 시절에는 줌치 친 한지에 콩기름을 발라 전쟁터에 나서는 병사들의 갑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한지는 방수기능도 뛰어나다. 한 장, 한 장 섬세하게 포개진 한지가 단단한 힘을 갖고 색색의 꽃잎처럼 화려하게 살아난 장신구들은 소유 욕구를 부르기에 충분해 보인다.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김정석 작가의 유리 공예 작품.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김정석 작가의 유리 공예 작품.

김정석 작가의 유리 작품은 위트가 넘친다. 투명한 몸통에 다양한 색감을 품은 가로 220cm, 폭 20cm 긴 유리 조각 안에 길흉화복을 비는 부적을 심어 넣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아는 스님에게 도움을 받아 만든 부적을 이용하고 있다”며 “오래 전부터 부적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을 주는 역할을 했고 유리 작품이 설치되는 공간에서도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또 “유리 공예가 주로 장신구 등의 작은 크기로만 제작되던 것을 공간 장식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획일화된 공간을 투명한 색감으로 풍성하게 장식하고 싶다”고 했다.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백한승 작가의 장신구 작품.

런던크래프트위크 기간 동안 '크리에이티브 데이'에 소개된 백한승 작가의 장신구 작품.

원래 금속공예 작가인 백한승 단국대 교수는 이번에 뜨개질을 이용한 흥미로운 영상을 선보였다. 목이 길게 올라온 니트 상의의 끝 올을 풀어 서서히 목걸이로 변신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다. 백 교수는 “섬유와 금속이라는 물성의 장르에서 탈피해 장신구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모델을 앉혀 놓고 실의 올이 다 풀려서 목걸이 형태가 드러날 때까지의 과정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이 영상은 6분이나 진행되지만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롭고 놀랍다.    
런던크래프트위크 사무국과 협의하며 한국 공예 작가 리스트를 선정하고 동영상 제작을 지휘한 조혜영 예술감독은 “영상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작가의 작업과정을 밀도 깊고 생생하게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성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했다. 모든 소리를 제거하고 배경음악을 깐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감상하는 영상이기 때문에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가 삽입되면 오히려 놀라운 공예 기술을 집중적으로 감상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게 런던크래프트위크 총책임자 가이 설터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조씨는 “외국에서 먼저 K크래프트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한국 공예작가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건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했다.      
2016년 밀라노 디자인위크 기간 동안 한국관 기획을 맡았던 홍보라(팩토리 갤러리 디렉터)씨 역시 “유럽에서 한국 공예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다”며 “런던 공예 예술의 핵심인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이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영구소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예술분야에서 꽤 상징적인 일”이라고 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동아시아 파트에 소개된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인데 상대적으로 일본 작가들의 숫자가 서너 배 많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정부와 여러 기업이 나서 런던크래프트위크에 꽤 많은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또 행사가 열리는 기간 동안 일본 옻칠 도시락에 음식을 담아 즐기는 피크닉 이벤트를 여는 등 자국의 의식주 문화를 함께 알리는 데도 적극적이다. 이제 막 글로벌 물결을 타기 시작한 K크래프트에 정부와 국민이 응원과 힘을 모아줄 때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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