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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사건’때 극단적 생각…껍데기 박정태는 죽었다

중앙선데이 2020.10.17 00:20 707호 25면 지면보기

[스포츠 오디세이] 31경기 연속 안타 ‘롯데 악바리’

박정태 이사장이 밀양 동강중 선수들에게 타격 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라고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박정태 이사장이 밀양 동강중 선수들에게 타격 자세를 지도하고 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라고 강조했다. 송봉근 기자

박정태(51)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혼(魂)이자 부산 야구의 상징이다.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롯데에서만 뛴 그는 역대 2루수 최다 골든글러브(5회)를 받았고, 1167경기에서 1141안타, 85홈런, 638타점을 기록했다. 1999년 31경기 연속 안타를 쳐 단일 시즌 연속안타 기록을 갖고 있다.
 

롯데 마지막 KS 우승·진출 주역
독특한 흔들 타법 3년 연구 결과

어머니 위해 매일 절박하게 야구
나보다 연습 많이 한 선수 없어
밀양서 클럽 야구단 만들어 새 삶

‘악바리’ ‘탱크’로 불린 박정태는 92년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 99년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의 주역이었다. 메이저리거 추신수(38·텍사스 레인저스)의 외삼촌이기도 하다. 롯데 2군 감독, 1군 타격코치를 역임했고,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으로서 봉사활동도 꾸준히 했다.
 
그가 지난해 1월 ‘버스기사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음주운전을 하고, 버스기사와 시비 끝에 운전석 핸들을 이리저리 흔든 게 CCTV에 찍혔다. 그는 잘못을 순순히 인정했고, 불구속 수사와 재판 끝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그 충격으로 한때 죽음을 생각했던 박정태는 경남 밀양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국내 최초로 야구 회사를 만들어 클럽 시스템 안에서 초-중-고-대로 이어지는 야구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클럽야구연맹 이사장도 맡고 있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흔들 타법’ 말려
 
싸움 잘해서 야구선수 됐다면서요?
“동네야구 팀에서 뛰던 초등학교 4학년 초, 대연초등학교 야구부와 시합 중에 6학년 선도부들과 패싸움이 붙었어요. 대연초 최병주 감독님이 싸움하던 나를 번쩍 들면서 ‘너 뭐야’ 하시기에 ‘왜요?’ 하고 반항하다가 잽싸게 도망을 쳤는데 다음날 집에 찾아오신 겁니다. 어머니가 ‘애를 먹일 형편도 안 되고 회비도 못 냅니다’ 하니까 감독님이 ‘걱정하지 말고 정태는 저한테 맡기십시오.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로 키우겠습니다’ 하셨어요.”
 
오늘의 박정태를 만든 원동력은?
“어머니 호강시켜 드려야겠다는 마음, 그 하나만으로 오늘의 박정태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야구에서 저보다 연습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일매일 해가 지면 연습 시작해 해가 뜰 때쯤 끝냈어요. 야구를 못할 수가 없죠.”
 
독특한 ‘흔들 타법’이 화제였죠.
“프로 와서 3년 동안 연구한 타법입니다. 장기 레이스에서 체력을 세이브 하기 위해 고안한 거죠. 다음날 선발투수 비디오를 보면서 타이밍 맞추는 연습을 합니다. 당시 부산의 초등학교 선수 3분의1이 제 폼을 따라했어요. 급기야 부산시야구협회에서 ‘좀 말려달라’고 요청을 해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왜 이렇게 치게 됐는지 설명하고 기본기를 먼저 닦으라고 설득했죠.”
 
프로 4년차에 큰 부상을 당했죠.
“야구인생이 거기서 끝나는 줄 알았어요. 왼 발목이 으스러졌으니까요. 그런데 부산 팬들이 롯데 시합만 마치면 사직야구장에서 동래역 대동병원까지 개미군단처럼 줄지어 오는 겁니다. 제 병실이 팬들이 보낸 과일과 음료수, 선물로 꽉 찼어요. 팬들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었으면 못 일어났을 겁니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3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박정태 특유의 흔들 타법. [중앙포토]

체력을 아끼기 위해 3년에 걸쳐 완성했다는 박정태 특유의 흔들 타법. [중앙포토]

박정태 이사장은 국제신문에서 롯데 편파 중계인 ‘아, 넘어가나요’를 진행하는 화요일에만 부산을 다녀온다. 그는 “밀양 사시는 분 아이의 상담을 맡다가 이쪽과 연결됐어요. 중학(동강중) 팀을 만들었고, 초등학교에 이어 고교(밀성고) 팀까지 만들게 됐어요. 내년에 2년제 대학 팀이 생기면 박정태 라인이 완성됩니다. 학부모는 프런트가 상대하고 감독은 부모들과 말도 섞지 않고 아이들 가르치는 데 집중합니다”고 소개했다.
 
한국 야구에 획기적인 시스템인데요.
“회사에서 파견한 지도자가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처음에 3명으로 시작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올해만 초등학교에 15명이 들어왔고, 내년에 19명이 들어옵니다. 운영비가 부족해 수익모델을 찾고 있는데 올 겨울 열 팀 정도 전지훈련을 유치하고 각종 대회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버스기사 폭행 사건이 작년 1월이죠.
“CCTV에 찍힌 장면 앞뒤로 여러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저로선 억울한 점도 있지만 내가 잘못했으니 진술서 다 쓰고, 잘못한 만큼 벌을 받겠다고 했어요. 변호사도 국선(國選)을 썼죠. 버스기사도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써 줬습니다. 지금은 형-동생으로 잘 지내고 있죠. 하하.”
 
92년 한국시리즈 우승할 때 분위기는 어땠나요.
“1∼5번(전준호-이종운-박정태-김민호-김응국)이 3할 타자였잖아요. 간절함이 있었고, 선배가 무서워서도 이기려고 했어요(웃음). 요즘 아쉬운 건 아이들이 주입식 교육을 받다 보니 스스로 풀어내는 게 좀 부족한 겁니다. 야구는 수많은 상황 속에서 그날 경기를 이길 수 있는 룰이랄까 방식이 있어요. 그게 근성이 될 수도 있고 지혜로움이 될 수도 있지요. 매번 이길 수는 없지만 ‘승리의 방식’을 찾아내는 야구관이 있어야겠죠.”
  
언젠가는 롯데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
 
롯데에서 주목하는 선수는?
“기본기가 탄탄한 오윤석(28·내야수) 정도가 괜찮지 않겠나 싶어요. 이정후(키움)나 강백호(kt)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어요? 고등학교 막 졸업한 걔들 타석에서 태도와 스윙하는 모습 보세요. 당차죠. 아주 못됐어요(웃음). 그걸 보면서 팬들이 즐거워하는 거죠. 팬들이 박정태를 왜 좋아하겠어요. 막가니까 좋아하는 거죠. 2루에서 박종호하고 격투기 하고, 찬스에서 못 치면 쇠기둥에 머리 처박고….”
 
언젠간 롯데로 돌아와야죠.
“그래야죠. 저도 준비를 합니다. 구단도 팬들도 박정태도 한번은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습니다.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우승해야지’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기(氣)라는 게 있습니다. ‘그래 너거들 다 모여 봐. 기 갖고 와 봐. 내가 중간에서 모아볼게’ 그렇게 갈 수 있지 않을까요.”
 
레전드가 되려면 뭐가 필요하냐는 질문에 박 이사장은 “계기”라고 답했다. 그게 명확해야 어려움을 헤쳐나갈 수 있다고 했다. “저의 절박한 계기는 어머니였지만 이 계기는 살면서 바뀝니다. 가족·직원, 나중에는 팬. 그렇게 확장되는 거죠. 껍데기 박정태는 죽었어요. 그 어떤 분, 나를 위한 분들을 위해 사는 거죠.”
 
99년 호세 방망이 투척 때 “여기서 지면 들어갈 구멍 없다” 독려
롯데 ‘검은 갈매기’ 호세. [중앙포토]

롯데 ‘검은 갈매기’ 호세. [중앙포토]

1999년 삼성과 롯데의 플레이오프. 3승3패로 맞선 마지막 7차전(대구)에서 홈런을 친 ‘검은 갈매기’ 호세가 베이스를 돌고 있을 때 삼성 팬들이 맥주 캔, 물병 등을 집어던졌다. 급소에 이물질을 맞아 흥분한 호세가 관중석을 향해 배트를 던졌다. 호세가 퇴장을 당하자 주장 박정태는 선수들을 이끌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20분 이상 중단됐던 경기가 속개되자 롯데 마해영이 2-2를 만드는 홈런을 터뜨린다. 3-5로 패색이 짙었던 9회 초에 임수혁이 동점 투런 홈런을 날렸다. 11회 연장 끝에 롯데가 6-5로 이기고 한국시리즈에 오른다.
 
박정태 이사장이 당시를 회상했다. “삼성 팬이 던진 음료수 병에 매니저 선배님이 이마를 맞아 피가 철철 났어요.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노. 우리 플레이 보려고 온 사람들이 우리 죽으라고 병 던지는 상황에서 경기를 할 수는 없다’ 생각했어요. 경기장 빠져나가기 직전에 코치들한테 질질 끌려 들어왔죠.”
 
코칭스태프의 간곡한 부탁에 박정태는 뜻을 꺾었다. 그리고 선수들을 모아서 ‘오늘 꼭 이기자. 여기서 우리가 지면 어디 들어갈 구멍이 없다’고 다그쳤다.  
 
그때 그는 선수들 눈빛을 봤다고 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눈빛이었죠. 이기겠구나 싶었어요. 롯데도 그 눈빛이 살아나면 우승 할 겁니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인터뷰 전문은 월간중앙 11월호 〈정영재 전문기자의 레전드를 찾아서〉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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