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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찍고 떠난 임일진 감독…영화 롱런해야 덜 미안할 텐데"

중앙선데이 2020.10.17 00:02 707호 24면 지면보기
“나는 다시 고용됐다.”

다큐 ‘알피니스트’ 공동 연출한 김민철 감독

1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이하 알피니스트)’ 속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이다. 이 다큐의 화자는 지금  세상에 없다. 그는 고(故) 임일진 감독이다. 8000m 고산처럼 척박한 한국 산악영화계에서 촬영 감독으로 활동했다. 2015년 관객 775만명을 모은 영화 ‘히말라야’의 특수 촬영 감독이기도 했다. 그는 김창호 대장 등과 함께 2018년 10월 히말라야 구르자히말(7193m) 원정 중 사망했다.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을 공동연출한 김민철(오른쪽) 감독과 고 임일진 감독. 임 감독은 이 모습으로 김 감독과 인터뷰한 이틀 뒤 구르지히말로 출국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진 배경이 된 촐라체 북서벽의 불빛은 2011년 김형일 대장과 장지명 대원이 추락사하기 전에 켜놓은 랜턴이다. 박종근 기자

다큐멘터리 '알피니스트-어느 카메라맨의 고백'을 공동연출한 김민철(오른쪽) 감독과 고 임일진 감독. 임 감독은 이 모습으로 김 감독과 인터뷰한 이틀 뒤 구르지히말로 출국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진 배경이 된 촐라체 북서벽의 불빛은 2011년 김형일 대장과 장지명 대원이 추락사하기 전에 켜놓은 랜턴이다. 박종근 기자

 
# 가장 오래된 트렌토산악영화제서 심사위원상 
’알피니스트‘는 임 감독의 말대로 ‘고용된’ 채 참여한 2009~2013년 네 차례 원정에 대한 시선이다. 이 영화는 지난달 2일 가장 오래된 산악영화제인 트렌토 필름페스티벌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알피니스트’에 대해 ‘날것처럼 생생하고 때로는 처연하기도 한, 가장 불편한 몇 가지 사실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등반의 이면을 묘사했다‘고 평했다. 다큐 연출은 두 명. 죽은 임 감독이 먼저 판을 깔았고 김민철(43) 감독이 마무리했다. 김 감독은 2011년 암스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달팽이의 별’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김 감독은 “임 감독의 ‘고용됐다’라는 수동형 내레이션은 해석의 여지가 많다. 산악인에 대한 냉소와 산악인이 되지 못한 콤플렉스, 또는 한발 떨어진 관찰자인 카메라맨의 입장 등이 뒤섞여있다”고 말했다. 다큐 들머리부터 임 감독은 “히말라야만 가면 왜 수염을 길러?”라며 마뜩잖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 감독을 지난 6일 서울 서대문에서 만났다. 

 
임 감독을 냉소적이라고 표현했는데.
그는 산악계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려고 했다. 임 감독은 '산에서는 희망과 영광만 있는 게 아니라 절망과 그늘도 있다. 산악인들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전에 극한의 도전을 하게 되는데, 산 귀신이 씌운 듯하다'고 내게 말했다. 아이러니지만, 임 감독은 자신도 2011년의 ‘촐라체 36시간 내 등정·하산’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2011년 촐라체 원정에서 고 임일진 감독은 추락사한 김형일 대장의 유품을 정리하는 장면을 헤드캠으로 촬영하면서 오열한다. 사진은 당시 시신을 수습하는 다큐 장면이다. [사진 민치앤필름]

2011년 촐라체 원정에서 고 임일진 감독은 추락사한 김형일 대장의 유품을 정리하는 장면을 헤드캠으로 촬영하면서 오열한다. 사진은 당시 시신을 수습하는 다큐 장면이다. [사진 민치앤필름]

2009년 스팬틱 등반을 앞두고 상의를 벗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형일 대장. [사진 민치앤필름]

2009년 스팬틱 등반을 앞두고 상의를 벗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는 김형일 대장. [사진 민치앤필름]

‘촐라체 36시간’의 결말은 혹독했다. 2011년 11월, 새하얀 랜턴 빛으로 존재를 알렸던 김형일(당시 43세) 대장과 장지명(당시 32세) 대원은 주검으로 등반 개시 36시간 만에 발견됐다. 이 다큐에서는 세상을 뜨는 사람들이 임 감독 본인을 포함해 9명이 나온다. 관객을 가시방석에 앉히려는 듯, 카메라는 줄곧 떠나간 이들을 응시한다.

  
유족이나 관련자들이 불편할 텐데.
이번 다큐는 2016년에 개봉한 ‘알피니스트’의 확장판이다. 그때 죽은 사람들을 팔았다는 항의도 있었다. 임 감독은 ‘그들을 위해 고용됐으니 나 또한 이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유족들 동의도 받았고. 하지만 구조적 결함이 있었다. 그런데도 2016년판은  울주세계산악영화제의 지원작이었으니, 그때 서둘러 개봉을 했다.
구조적 결함이라니.
임 감독이 관찰자적 입장에서, 어쩌면 숨어서 자신은 한발 빠지는 듯한 모양새였다. 이 때문에 산악인들이 거북스러워 한 것 같다. 김창호 대장도 한동안 임 감독과 만나지 않을 정도였다. 임 감독을 다큐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6년간 임 감독을 만나면서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날카로움이 무뎌지기 전에 말이다. 그를 설득했고 그는 받아들였다.
김 감독에 따르면, 임 감독은 2014년 자신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 김 감독은 “처음 만나는데, 박카스가 든 까만 비닐봉지를 무심하게 건네줬다”고 했다. 첫인상은 이렇게 촌스러웠으나, 김 감독은 그가 찍은 히말라야 영상을 보고 영화로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201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나선 원정대원들. 서성호 대원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지만, 하산 중 사망했다. [사진 민치앤필름]

2013년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에 나선 원정대원들. 서성호 대원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지만, 하산 중 사망했다. [사진 민치앤필름]

# 임 감독, 산악인이 되지 못했다고 여겨

하지만 김 감독은 이른바 ‘산동네’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야구·축구는 직접 하지 않아도 좀 알겠는데, 바깥사람이 보는 산동네는 장벽이 엄청 높은 세계”라고 말했다. 게다가 김 감독은 임 감독이 종종 “산악인은 다 가짜”라고 말하기도 했단다. 산악인들이 산을 신성시하면 자신도 신성시된다는 건 거짓이라는 얘기다(다큐는 이 내용을 아주 완곡하게 표현하며 시작한다). 김 감독이 산동네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 지난 6년이었다.
 
임일진 감독의 ‘알피니스트’

임일진 감독의 ‘알피니스트’

공동 연출이다.
임 감독이 이미 80%를 해놨고 나머지 20%는 내가 한 인터뷰와 편집이다. 예상치 못한 임 감독의 죽음으로 영화가 끝맺게 됐다. 얼마 안 되지만, 트렌토영화제 상금 2000유로(약 270만원)를 한국산악회에 ‘임일진 펀드’로 기부했다. ‘알피니스트’는 애초에 내 머리에서 나온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임 감독 같은 산악영화인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게 종잣돈이 되면서 2000만원 넘게 모였다.
김 감독은 임 감독이 2018년 8월 구르자히말로 떠나기 이틀 전, 그의 자택 옥상에서 북한산과 도봉산을을 배경으로 인터뷰했다. 임 감독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였고, 마지막 북한산·도봉산이었다.

고 임일진 감독이 구르자히말라로 출국하기 이틀 전 김민철 감독과 인터뷰를 하며 북한산과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민치앤필름]

고 임일진 감독이 구르자히말라로 출국하기 이틀 전 김민철 감독과 인터뷰를 하며 북한산과 도봉산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 민치앤필름]

그 인터뷰에서 임 감독이 눈물을 보인다.
그는 산악인이 되고 싶어 했다. 히말라야 정상에 서길 원했다. 그래야만 산악인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카메라맨은 기록대원인데, 기록대원을 정상에 올리지는 않는다. '김창호, 걔가 예전에 내 줄 잡아줬어’라고 큰소리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스스로 능력 부족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산동네 바깥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열망, 콤플렉스, 회한의 뒤섞임 그런 것. 다큐 날머리의 눈물은 그런 것이다.
15일 현재 개봉관은 23곳. 김 감독은 인류 최초로 8000m급 14개 봉우리에 오른 라인홀트 메스너에게도 이 영화를 보냈단다. 그는 “메스너 형님 반응도 그렇고, 개봉 첫 주 성적이 어떨지, 임 감독에게 미안하지 말아야 할 텐데"라며 멀리 산을 바라봤다. 임 감독의 마지막 인터뷰 배경인 그 산, 북한산이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히말라야 트레킹 중인 김민철 감독(왼쪽)과 고 임일진 감독. [사진 민치앤필름]

히말라야 트레킹 중인 김민철 감독(왼쪽)과 고 임일진 감독. [사진 민치앤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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