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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카메라 필름통에 '친구' 담아 데리고온 호주 여자

중앙일보 2020.10.16 12:00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53)

산티아고 가는 길 순례의 종착지는 이름이 말하는 대로 당연히 산티아고이다. 그런데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무리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중세시대에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던 피스테라(Fisterra)로 가거나 또 다른 땅끝, 성모마리아가 발현했다고 알려진 무시아(Muxia)로 향한다.
 
내가 무시아에 도착한 날은 비바람에 진눈깨비가 섞여 날이 험했다. 궂은 날씨 덕분에 마을을 돌아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숙소에 남아있던 줄리를 만났다. 이른 오후부터 뜨거운 수프에 순례자의 피, 와인을 함께했다. 줄리는 석 달 전에 세상을 떠난 친구 리타때문에 순례에 올랐다고 했다.
 
무시아에 도착한 날은 비바람에 진눈깨비가 섞여 날이 험했다. 궂은 날씨 덕분에 마을을 돌아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숙소에 남아있던 줄리를 만났다. [사진 박재희]

무시아에 도착한 날은 비바람에 진눈깨비가 섞여 날이 험했다. 궂은 날씨 덕분에 마을을 돌아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숙소에 남아있던 줄리를 만났다. [사진 박재희]

 
와인 잔을 거푸 비우는 동안 창문을 할퀴던 바람이 줄었다. 줄리가 조심스레 레이스 손수건을 풀더니 지금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는 카메라 필름 통을 보여준다. 세상을 떠난 친구 리타를 호주의 퍼스에서 리스본으로, 포르투를 거쳐 산티아고로 그리고 이곳 무시아(Muxia)까지 그렇게 데려왔다는 것이다. 영화 같은 이야기다.
 
한국에서 정식으로 개봉된 적은 없지만, 산티아고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영화 ‘더 웨이(The Way)’는 세속적 표현 그대로 성공을 이룬 아버지와 다른 길을 가는 아들의 이야기다. 아들은 산티아고 순례 첫날 피레네에서 사고로 죽는다. 미국에서 생장(St.Jean Piet de Port)으로 날아온 아버지는 아들을 화장하고, 아들의 유골을 지닌 채 아들 대신 까미노를 걷는 영화이다. 주인공은 산티아고에서 순례를 마친 후 다시 땅이 끝나는 곳까지 걷는다. 하늘이 무너져 내린 바다에서 아들을 파도에 실려 보내는데 영화 속 그곳이 바로 여기 무시아다.
 
“리타는 내게 친자매나 마찬가지야. 리타의 엄마, 그레이스는 내게도 엄마 같은 분이고.” 줄리는 호주의 여자농구단 소속 훈련 코치이다. 선수별로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재활훈련을 코치한다. 시즌 중간은 아니라도 갑작스러운 장기 휴가는 소속팀에 적잖은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다. 아무리 친자매 같은 친구라고 해도 타자를 위해 뻔히 예상되는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솔직히 나라면 결정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누구나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제로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다. 하물며 자신을 위한 결정도 미루거나 유보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상황이 좀 나아지면 언젠가’, ‘이번 문제만 정리하고 나중에’, ‘이렇게 저렇게 나중에, 언젠가’….‘언젠가’는 결코 저절로 찾아오는 미래가 아니다. ‘나중에’는 또 다른 나중으로 밀리고 만다. 우리 모두 그걸 뻔히 알면서 ‘지금 하지 않을 수 있는 핑계’를 잘도 찾아낸다. 하지만 줄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미루면 영영 오지 못하게 될 것 같더라. 그렇잖아? 지금이 아니면 나중은 없지(Now or Never).” 내 앞에 꼬질꼬질한 노숙자의 모습을 한 줄리가 아름답고 위대해 보인다.
 
밤을 보낸 후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맑다. 작은 바닷가 마을 무시아는 2002년 11월 유조선 기름유출 사고를 겪었다. 무시아 근해에서 좌초한 유조선은 8시간 만에 침몰해, 7만 갤런, 212톤의 기름이 해안과 마을을 뒤덮었다. 무시아의 상징이 된 ‘상처(A Ferida)’ 조형물은 그때의 비극을 기억하고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무시아의 상처는 죽음의 바다라고 불리는 거친 파도와 바람, 해안 바위에 지은 성당 노사 다 바르카(Nosa da Barca)와 나란히 서 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작은 마을이 켈트와 야고보, 성모 마리아 발현과 유조선의 침몰까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모두 품고 있다.
 
우리는 어른 키보다 큰 파도가 밀려오는 해안가를 걸었다. 줄리가 바닷가 성모 바위 쪽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나는 마을을 걷기로 했다. 그 자리에서 줄리를 기다려줄까 했지만 혼자 온전히 리타와 작별하는 시간을 갖게 하려면 멀리서라도 지켜보는 이조차 없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무시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데 처음 보는 물고기가 걸려있었다. 길이가 족히 2m 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신기하게 생긴 모양이다.

무시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데 처음 보는 물고기가 걸려있었다. 길이가 족히 2m 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신기하게 생긴 모양이다.

덕장을 살피는 할아버지에게 휴대폰 번역기를 켜고 온갖 손짓 발짓을 동원해 알아낸 물고기의 이름은 붕장어(Congrio)이다.

덕장을 살피는 할아버지에게 휴대폰 번역기를 켜고 온갖 손짓 발짓을 동원해 알아낸 물고기의 이름은 붕장어(Congrio)이다.

 
바람은 서리처럼 찬데 가을 햇살은 뜨거웠다. 무시아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데 처음 보는 물고기가 걸려있었다. 길이가 족히 2m 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신기하게 생긴 모양이다. 덕장을 살피는 할아버지에게 그 물고기의 이름을 알아내기까지 100년쯤 걸린 듯하다. 휴대폰 번역기를 켜고 온갖 손짓 발짓을 동원해 알아낸 물고기의 이름은 붕장어(Congrio)이다. 알고 보니 무시아는 유럽 붕장어잡이로 유명한 마을이기도 하다. 손바닥만 한 마을이라 순례자들은 반나절쯤 머물고 떠난다는데 난 무시아에서 이틀을 묵었다. 고요 속 햇살 샤워를 하며 혼자 바닷가 피크닉을 즐겼고 말린 붕장어찜 요리를 먹었다. 붕장어는 달았다. 무거웠던 무릎이 가벼워졌고 명치에 걸려있던 불안이 사라졌다.
 
무시아 코르피뇨. 코르피뇨는 어마어마한 바람의 언덕이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밀치고 뒤집는 바람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무시아 코르피뇨. 코르피뇨는 어마어마한 바람의 언덕이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밀치고 뒤집는 바람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마을을 걷다 보니 몬테코르피뇨(Monte Corpino) 산으로 오르는 길로 이어졌다. 코르피뇨는 어마어마한 바람의 언덕이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만큼 밀치고 뒤집는 바람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한다. ‘용서의 언덕’에서 불던 바람을 떠올리며 몬테코르피뇨의 정상에 올랐다. 마을 전체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펼쳐져 있다. 언덕 꼭대기에 세워진 십자가 근처 바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어느새 언덕을 올라온 줄리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내가 리타를 데려온 건 줄만 알았어. 그런데 리타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거였어.”
 
내가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길이 나를 불렀다는 말. 많은 순례자가 하는 이야기이다. 길을 걷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걷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나를 부른 존재, 나를 부른 길, 나를 부른 시간, 나를 부른 내 안의 나’. 그 만남에 이끌려, 먼저 걸은 이들의 얘기에 이끌려 사람들은 오늘도 까미노를 향하는지 모른다. 줄리는 바람 때문에 자꾸 눈물이 나는 거라면서 코를 풀고 충혈된 눈으로 깔깔 웃었다. 무시아에서 그녀는 순례를 완성했다.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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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박재희 기업인·여행 작가 필진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 한량으로 태어나 28년을 기업인으로 지냈다. 여행가,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살고 있다.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여행하는 인간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길을 떠나는 여행자다. 길에서 직접 건져올린 이야기, 색다른 시각으로 비틀어 본 여행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여정을 따라 함께 걸으며 때로는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이야기, 생생한 도보 여행의 경험을 나누며 세상을 깊이 여행하는 길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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