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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빛 가을’ 번지는 핑크뮬리···"생태계 위협 아직 없어”

중앙일보 2020.10.16 05:00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논 옆으로 대형 핑크뮬리 군락이 조성돼있다. 뉴스1

경기도 김포시 장기동의 논 옆으로 대형 핑크뮬리 군락이 조성돼있다. 뉴스1

 
몇 년 전부터 가을철 명소 곳곳에 관상용으로 분홍색 갈대같은 식물이 대량 심어졌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핑크뮬리다.
 
해외에서 들어온 신종 생물인 탓에 지난해 '생태계 유해성' 논란이 한동안 일었지만 올 가을도 어김없이 전국 곳곳에 핑크뮬리가 나타났다.

 
 

'개복치' 핑크뮬리, 낯설지만 위협적이진 않아

핑크뮬리(Muhlenbergia capillaris)는 '머리카락 잔디', '걸프뮬리' '보라색 뮬리 잔디'로도 불리는 벼과 식물이다. 여름까지는 녹색을 띠다가, 씨앗이 맺히는 10월쯤 전체가 분홍색으로 변하면서 분홍색 갈대같은 모양을 띤다.
 
예쁘자고 심은 핑크뮬리는 정말 생태계를 해치는 식물일까?

 
답은 '일단은 유해성이 거의 없다'다. 국립생태원이 발간한 '2019 외래생물 정밀조사' 보고서는 핑크뮬리를 '생태계위해성평가 2급', 그 중에서도 '위해 우려 없음'으로 분류했다. 해외에서 들어온 낯선 종인데다 이렇게나 많이 심는데도 위해우려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건, 핑크뮬리 씨앗이 워낙에 약한 '개복치'같은 특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①기온 : 추우면 못 자라

국립생태원 2019 외래생물 정밀조사 보고서. 핑크뮬리는 평균기온 약 20도에서 잘 자란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의 평균기온도 올라가고는 있지만, 겨울철 영하의 기온을 이길 수 없어 핑크뮬리의 자연 생태계 침투는 현재로서는 어려워보인다. 자료 국립생태원

국립생태원 2019 외래생물 정밀조사 보고서. 핑크뮬리는 평균기온 약 20도에서 잘 자란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의 평균기온도 올라가고는 있지만, 겨울철 영하의 기온을 이길 수 없어 핑크뮬리의 자연 생태계 침투는 현재로서는 어려워보인다. 자료 국립생태원

 
핑크뮬리는 추위에 약하다. 핑크뮬리가 주로 서식하는 미국 남동부는 우리나라보다 평균기온이 1년 내내 높고, 특히 겨울철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국립생태원은 “우리나라의 7~9월 평균기온은 핑크뮬리 자생지와 비슷하게 20도 언저리까지 높아지지만, 겨울의 영하권 기온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습도 : 건조해도 못 자라

보고서는 “여름철 집중강수, 건조한 봄~겨울에서 생존이 어려울 것”으로 분석했다. 핑크뮬리는 벼과 식물이긴 하지만 벼처럼 물 속에서 자라진 못하고, 땅 위에서 자라면서도 건조함에 취약한 식물이다. 국립생태원 박정수 박사는 "우리나라 관광지에 심는 핑크뮬리는 대부분 농장에서 길러 10월 초 옮겨심는데, 농장에서도 물을 충분히 주면서 기른다“며 ”제주와 일부 남부지방은 핑크뮬리가 살 만한 겨울 기온조건이 되지만, 겨울철 습도가 낮기 때문에 결국 핑크뮬리가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③싹 틔울 힘이 부족해..

경북 칠곡군 가산 수피아에 조성된 핑크뮬리 군락. 연합뉴스

경북 칠곡군 가산 수피아에 조성된 핑크뮬리 군락. 연합뉴스

 
만에 하나 씨앗이 자연으로 흘러나간다해도, 싹을 틔우는 능력이 시원찮다. 국립생태원이 핑크뮬리 씨앗에서 싹을 틔우는 능력을 측정하는 ‘발아실험’을 한 결과, 2년생 핑크뮬리 다발에는 평균 80개의 꽃이 피고 7만개 이상의 씨앗이 달리지만 이 중 싹을 틔우는 건 많으면 8.25%에 불과했다. 2018년 기준 핑크뮬리가 대량으로 심어진 전국 37개 지점 인근 10m 안에서도 핑크뮬리가 자연 발아한 개체는 없었다. 보고서는 "앞선 해외 연구에서도 핑크뮬리의 발아율은 0~20%로 비교적 낮은 것으로 알려져있고, 자연 생태계에서는 더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④싹 터도, 잡초에 눌려

충남 공주 유구읍에 조성된 핑크뮬리 단지. 뉴스1

충남 공주 유구읍에 조성된 핑크뮬리 단지. 뉴스1

 
만에 하나 싹을 틔우더라도, 사람이 정성스럽게 잡초를 제거해주지 않으면 주변 잡초들과 경쟁해서 살아남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 보고서는 “핑크뮬리 다발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초작업이 필요하고, 주변부는 관광객의 방문에 의해 서식이 제한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밝혔다.

제초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공주 핑크뮬리 식재지에서는 주변에 자라난 애기메꽃에 핑크뮬리가 눌려 자라지 못하는 현상도 관찰됐다.

국립생태원 박정수 박사는 "핑크뮬리가 혹 야생으로 나간다해도 도로변 잡초군들과 경쟁할텐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극히 드문 확률로 산에 유입된다고 해도 다른 식물들에 눌려 자라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⑤그래도 불안하면, '회색뮬리' 되면 소각

보고서는 "가을철 여행 테마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적으로 분포 면적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며 “종자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핑크뮬리의 색이 핑크색에서 회색으로 변하는 11월 쯤 지상에 노출된 줄기를 모두 제거해 소각하고, 식재지 내 관람객의 출입을 통제해 옷이나 신발에 붙어 종자가 이동하는 것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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