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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훈 방미, 청와대는 극비 부쳤는데 미국이 일방적 공개 왜

중앙일보 2020.10.16 00:02 종합 1면 지면보기
미국을 비공개로 방문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했다. [연합뉴스]

미국을 비공개로 방문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했다. [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미국을 방문했다. 종전선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양국 간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고위급 협의를 하기 위해서다.
 

종전선언·전작권 놓고 한·미 이견
서, 오브라이언 이어 폼페이오 면담
트럼프 임기 내 돌파구 마련 나선 듯
북한의 메시지 전달 여부도 관심

청와대, 서훈 방미 극비 부쳤는데
미, 폼페이오 일정에 슬쩍 끼워 공개
청와대 부랴부랴 “미 정부서 초청”

청와대 강민석 대변인은 15일 “서 실장이 미국 정부 초청으로 13~16일 일정으로 워싱턴을 방문했다”고 밝혔다. 서 실장은 14일(현지시간)에는 카운터파트인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면담했고, 15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났다.
 
강 대변인은 “서 실장 취임 뒤 처음 이뤄진 이번 방미는 비핵화를 비롯한 북한 관련 문제 협의 및 동맹 주요 현안 조율 등 양국 국가안보회의 간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굳건한 한·미 동맹에 대한 미국 조야의 지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북한 관련 문제 협의’라고 한 것을 두고 도널드 트럼프 정부 임기 내에 북·미 간 빅 이벤트 성사를 위한 모종의 메시지 전달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기대 섞인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서 실장의 방미가 공개된 형식을 보면 ‘굳건한 한·미 동맹’이란 표현이 무색한 측면이 있다. 청와대는 서 실장의 방미를 비공개로 했는데, 미국이 일방적으로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백악관이 아닌 국무부가, 공식 보도자료도 아닌 매일 업데이트해 공개하는 폼페이오 장관의 일일 스케줄 중 하나의 일정으로 올려놓는 형식이었다. 청와대는 그 이후에야 부랴부랴 서면 보도자료를 내고 서 실장의 방미 소식을 확인했다. 고위급 회담이나 면담 소식은 양국이 합의해 동시에 공개하는 게 관례라는 점을 고려하면 여러 측면에서 비정상적이었다.
 
외교가에선 이 자체가 매끄럽지만은 않은 한·미 관계의 일단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만 해도 그렇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지난 11일 국정감사에서 “미국은 북한만 동의한다면 (종전선언에) 아무런 이견이 없다”고 했지만, 최근 미 행정부 고위 인사와 접촉한 외교 소식통은 “실제 미국의 기류는 이와 결이 다르다”고 말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해당 미 인사는 “비핵화의 최종 목표를 합의하고 그에 따른 전체적 로드맵을 먼저 정해야지, 종전선언만 따로 떼어 먼저 하는 것(isolation)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한·미 국방 성명서 12년 만에 빠졌다
 
이날 서욱 국방부 장관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배했다. [연합뉴스]

이날 서욱 국방부 장관은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 워싱턴DC에 있는 6·25전쟁 참전 기념공원을 찾아 참배했다. [연합뉴스]

‘하노이 노 딜’로 이어진 기존의 미국 입장에서 사실상 달라진 게 없는 셈이다. 이는 우선 종전선언부터 해서 협상을 재개하고, 이후에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자는 정부 입장과는 차이가 있다.
 
“법률적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 아닌 정치적 선언”(이수혁 대사)이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미 행정부 고위 인사는 “종전선언에 법적인 함의가 있을지 없을지, 상응조치는 무엇일지, 어떤 국가들이 참여 주체가 될지 등도 큰 비핵화 로드맵을 먼저 정한 뒤에야 그 안에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서 실장의 이번 방미 주요 의제 중 종전선언과 관련한 한·미 간 공감대 확대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큰데, 실제 얼마나 의견 접근을 이뤘을지에 대해서는 낙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종전선언에 대해 한·미 간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고,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7일 국회 발언)면서도 ‘합의’나 ‘동의’라는 표현은 쓰지 않았다. 종전선언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원론적으론 한·미가 공감하지만, 세부사항을 논의하며 이견을 좁히는 단계는 아니란 뜻으로 읽힌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서는 한·미가 아예 공개석상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드러냈다. 14일(현지시간) 미국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2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다. 회의 모두발언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하겠다”며 ‘조기 전환’에 방점을 찍었지만,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모든 조건에 맞춰 전작권 전환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조건 충족’을 더 중시했다.
 
한·미는 2015년 전작권 전환의 조건에는 합의했다. ▶연합방위 주도를 위해 필요한 한국군의 핵심 군사능력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 능력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한반도·역내 안보 환경 등을 갖추는 게 조건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2022년 5월 임기 종료 전 전작권 전환’이라는 문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집중하는 반면, 미국은 시기와 상관없이 조건을 통과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라 엇박자가 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미 국방부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특정한 시한을 정해 전작권을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우리 군대와 국민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SCM 공동성명에서 전작권 전환 검증 평가에 대한 일정을 분명히 적어놓은 데 비해 올해는 “전작권 전환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평가·점검해 나가기로 했다”는 문구를 넣는 데 그쳤다.
 
이번 SCM 공동성명에는 ‘주한미군 현 수준을 유지한다’는 문구가 빠졌다. 이는 한·미 정상이 2008년 주한미군을 2만8500명 수준으로 유지하기로 합의하면서 SCM 성명에 포함됐다. 이후 매년 유지되다 12년 만에 사라진 것이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감축과 무관하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그러기엔 파장이 만만치 않다. 한·미 군사동맹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나 다름없다.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계속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 감축에 나설 수 있음을 알리는 사전 포석이라는 관측이다.
 
일각에선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넘어서 한국 정부가 대중국 안보 포위망 구축에 비협조적으로 움직이며 한·미 동맹의 미래에 대해서까지 의문을 제기한다면 미국 역시 앞으로 주한미군 주둔이라는 한국 방어 공약을 달리 생각할 수 있다는 신호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강태화·김상진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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