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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홍남기가 홍남기를 쫓아냈다, 전세난민 만든 오만한 정책

중앙일보 2020.10.16 00:02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 13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서울 강서구 한 아파트 문 앞에 전셋집을 보려는 사람 10여 명이 길게 줄을 선 장면이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전세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 집의 전세 계약자는 제비뽑기로 정해졌다. 현 세입자 이사 날짜에 무조건 맞추는 조건도 붙었다.
 

전셋집 못구한 홍남기 조롱 대상 돼
주먹구구 23번 대책의 상징적 사례
정책의 역설 체감하는 계기 되길

사진이 화제가 된 후 누군가가 사진 속 줄을 선 사람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얼굴을 합성해 올렸다. 홍 부총리가 서울 마포 전셋집에서 최근 퇴거 요청을 받았고, 아직 새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사실을 비꼰 것이다. 또다시 ‘웃픈’ 일이 발생했다. 세입자이면서 집주인인 홍 부총리 소유의 경기도 의왕시 집 매매가 불발될 위기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당초 그는 세종시의 분양권을 팔면 ‘2주택자’ 꼬리표를 뗄 수 있었지만 전매 제한에 걸려 팔 수가 없었다.
 
부동산 정책 발목잡힌 홍남기 부총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부동산 정책 발목잡힌 홍남기 부총리.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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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선한 의도를 강조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진 정책이라도 그 결과가 반대로 삶의 장애가 된다면 누구도 손뼉 쳐 줄 수 없다. 정책의 역설이다. 부동산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홍 부총리의 이런 ‘사지도, 팔지도, 보유하지도, 전세를 살지도 못한다’는 해프닝은 현 정부의 23차례 부동산 정책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추진한 것인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다.
 
정책을 낼 때마다 늘 부작용이 있었지만 정부는 정책을 수정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며 국민의 주거와 희망을 옭아맸다. 홍 부총리는 12일에도 기재부 간부회의에서 “필요하면 전·월세 시장에 대한 추가 대응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멍 메우기식 정책은 또 다른 구멍을 만들 뿐이다. 특정 사안을 해결하기 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편적 규제를 하는 나라도 없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전체 주택담보대출을 옭아맨 건 30대의 ‘패닉 바잉’으로 이어졌다. 세입자를 보호한다는 임대차보호법은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전세 절벽을 만들었다. ‘착한’ 목표를 위해선 현실의 고통쯤은 무시돼도 된다는 게 정부의 논리는 아닐 것이다.
 
안타깝지만 홍 부총리가 전세 난민이 된 현실이 오히려 다행스럽다. 내 신념만 맞다는 오만함에 대한 자문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책의 역설이 빚은 부작용을 ‘내 문제’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가져 본다. 14일 열린 8차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 장관회의에서 홍 부총리는 “신규로 전셋집을 구하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진심이길 바란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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