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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승강식피난기의 화재안전기준 이대로 좋은가?

중앙일보 2020.10.15 09:00

지난 10월 8일 밤 울산의 주상복합 아파트 화재 뉴스를 보면서 사상자가 많을 수밖에 없을 거라는 불길함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도 소방관들의 헌신적 노력과 적절한 대응 그리고 매뉴얼에 따른 대처로 인명피해가 미미한 점에 안도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3층 테라스에서 시작된 불이지만 간접적인 원인은 건물 외장재로 불연재도 준불연재도 아닌 알루미늄 복합패널을 2015년 건축법 시행령 이전에 적용한 것이다.  
 
이번 화재를 보면서 두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70m 고가사다리차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화재대피시설이다. 특히 화재대피 시설의 승강식 피난기에 대해 고민했다. 알루미늄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2년 주택법 관련 규정 개정으로 3층 이상의 아파트 발코니에 경량칸막이 설치가 의무화되었으며, 2005년 이후에 지어진 아파트는 세대마다 대피공간을 두도록 하고  2010년에는 하향식 피난구가 추가됐다. 2014년에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더 쉽게 사용가능한 피난기구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건축법령 46조 5항 4호에 국토부 장관이 인정하는 시설 또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수많은 화재대피 피난기구가 만들어졌지만 노약자, 임산부, 장애인, 어린이, 반려동물 등을 위한 피난기구는 부재했다.  
 
무동력승강기식피난기가 그 대안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2011년 11월24일에 이제까지 대한민국에 없던 화재피난기구가 법적 지위를 얻은 역사적인 날,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준에 승강식피난기란 새로운 피난기구가 승인되었다. “승강식피난기”란 사용자의 몸무게에 의하여 자동으로 하강하고 사용자가 내려서면 스스로 상승하여 연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동력 승강식피난기를 말한다. 〈신설 2011. 11. 24.〉 아마도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화재피난용 기구를 만들어낸 창의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 후 2012년 11월1일 승강식피난기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이 소방청(전 소방방재청) 고시로 발표되었다. 소방청(전 소방방재청) 고시 제2012-148호(2012.11. 1.) 2011년 법적지위를 얻은 승강식피난기가 1년 만에 kfi 인증(소방산업기술원)에 필요한 기술기준이 고시되었다.
 
빌딩이나 아파트 등 화재가 발생했을 때를 한번 시뮬레이션 해 보자. 승강식피난기의 승강판이 불에 녹는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면 어떻게 될까? 불꽃에 견디면서 사람을 탈출시켜야 할 비상 탈출장치가 불에 녹아내린다? 상식적으로 용납이 되지 않는다.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준(nfsc 301)에 정의된 피난기구 중 불에 타는 재질로 된 피난기구는 없다. 그런데 유독 승강식피난기만 예외다. 피난기구가 불에 타는 합성수지 재질과 600도에 녹아내리는 알루미늄 재질로 만들어졌다. 이런 성능의 승강식 피난기를 빌딩과 아파트에 설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승강식피난기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 제4조 (재료)에 알루미늄이 명시되어 있다. 알루미늄 녹는점은 660.3도다. 제8조 (내열시험) 에 합성수지 기준이 있다. 합성수지(플라스틱) 녹는점은 350도다. 국토부는 2020년 5월 27일 아파트 대피공간 대체시설로 승강식피난기에 인정서를 발급했다. 다행히 국토부에선 강화된 기준을 적용했다. 아파트엔 층간내화보호덮개가 1000도의 내화시험을 거친 승강식피난기를 장착하도록 했다. 또한 승강식피난기를 설치하려면 방화문을 의무화 했다. 층간내화보호 덮개와 방화문으로 화염과 유독가스 확산을 방어하도록 했다.  
 
하지만 소방청 기준을 적용한 승강식피난기는 층간내화보호덮개가 없다. 층간내화보호덮개도 없는데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있다. 어떻게 될까? 아래층 화재가 심각하게 번져 알루미늄 승강판을 녹이고 위층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유독가스가 승강식피난기를 타고 전층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알루미늄과 합성수지로 만든 소방청이 인증한 승강식피난기 제품이 버젓이 화재비상탈출장치로 수많은 빌딩에 설치되고 있는 현실이다.  
 
세계 최초로 승강식피난기란 제품을 만든 대한민국의 우수한 기술은 칭송할 일이다. 하지만 새롭다고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만큼 더 안전하고 더 믿을 수 있는 성능을 갖추도록 기술기준을 정립해야 했을 일이다. 2011년 한 개의 업체만이 만든 제품을 법적명칭부여하고 기술기준을 정립해 kfi 인증으로 상품화의 길을 열어 주었다. 그럴수록 더 명확하게 관련 규정과 지침 등을 정립해야 할 일이다. 이미 화재로부터 취약한 성능의 승강식피난기가 많은  빌딩과 요양원 및 유치원에 설치되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소방청(전 소방방재청)은 승강식피난기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을 재정립해야 한다. 합성수지 재질 사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낮은 온도에서 녹아내리는 알루미늄 재질도 제한해야 한다. 그리하여 1000도에 견딜 수 있는 재질로 만들어진 승강식피난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k–pop 과 k-방역에 이은 새로운 브랜드 k-방재로 우뚝 서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문재인정부와 21대 국회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 김태환 재난정보학회 수석부회장(용인대 교수)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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