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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흉을 보니 독을 품다 기진해 죽은 개 이야기

중앙일보 2020.10.15 09: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85)

도산우리예절원 이동후 설립자가 읽고 웃어 보자며 들려 준 이야기다.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한다.
 
옛날 한 나그네가 깊은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었다. 마침 어수룩한 집이 보여 하루 묵을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주인 할머니는 투숙을 허락하면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마침 이웃마을에 푸닥거리가 있어 이 늙은이에게 꼭 와서 봐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집안에 남정네가 없어 가고 싶은 생각은 있어도 마음을 먹지 못했습니다. 마침 길손이 오셨으니 저의 집을 잠깐 지켜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옛날 한 나그네가 깊은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었다. 마침 어수룩한 집이 보여 하루 묵을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주인 할머니는 투숙을 허락하면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사진 pixabay]

옛날 한 나그네가 깊은 산골짜기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었다. 마침 어수룩한 집이 보여 하루 묵을 수 있는지를 타진한다. 주인 할머니는 투숙을 허락하면서 조건을 하나 내걸었다. [사진 pixabay]

 
나그네는 별일이 아닌 것 같아 바로 그러겠다고 했다, 주인 할머니가 집을 나섰다. 나그네가 혼자 지키는데 할머니가 집을 비우자마자 늙수그레한 개 한 마리가 곧 윗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무슨 작업인가를 하는 눈치다. 개는 빈 그릇을 물어다가 겹쳐 놓아 디디기 좋게 만들었다, 이어 개는 그릇 위로 뛰어올라 시렁에 얹어놓은 떡을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나그네는 어쩔 수가 없어 그저 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밤이 깊어 할머니가 돌아왔다. 할머니가 손으로 시렁 위를 만져 보고 괴상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나그네가 까닭을 묻자 할머니가 말한다.
 
‘어제 내가 시루떡을 쪄서 이 시렁 위에 얹어 두었소. 결단코 손님이 잡수었을 리는 만무하고 찾아봐도 없으니 어찌 괴이치 않으리오.’
 
나그네는 그 일을 밝히기가 거북스러웠다, 개가 그랬다고 하면 자칫 없는 일을 꾸미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으니. 그래도 내가 훔쳐 먹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벗으려면 자초지종을 말해야 할 듯했다. 나그네가 마침내 목격한 바를 그대로 말했다. 할머니가 이어 탄식한다.
 
‘물건이 오래되면 신이 붙는다더니, 그 말이 참으로 진실하네요. 이 개가 이미 수십 년을 지낸 까닭에 이런 흉측한 일을 하니 내일 마땅히 개백정을 불러다가 처치해야겠소.’
 
개가 이 말을 듣고 나그네를 흘겨본다. 눈길에는 독기가 서려 있다. 나그네는 몹시 두려워 다른 곳에 숨어 옷과 이불을 깔아놓고 개의 움직임을 살폈다, 얼마 후 개가 나그네 방으로 들어왔다. 개는 옷을 사납게 물어뜯으며 몸을 흔들고 독기를 내뿜으며 한참을 있다가 밖으로 나갔다. 나그네는 모골이 송연해 주인 할머니를 깨웠다. 할머니가 집안을 둘러보니 개는 이미 기진하여 죽어 넘어져 있었다.
 
나그네는 이후 사람을 만나면 이따금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짐승도 허물을 듣기 싫어하거늘 하물며 인간이 자기 잘못을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걸 받아들이기 쉽겠는가?’
 
예천군 대죽리 한대마을 입구에 조성된 말 무덤과 말 관련 격언비. 말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사진 예천군]

예천군 대죽리 한대마을 입구에 조성된 말 무덤과 말 관련 격언비. 말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사진 예천군]

 
허물은 짐승조차도 이렇게 듣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허물이라도 누구나 듣기 싫은 것이 세상 이치일까.
 
요즈음 온 나라가 시끄럽다. 국정을 맡은 사람들까지 갑론을박을 한다. 모두 자기는 잘했고 이웃은 잘못했다고 떠들어 대는 세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른바 ‘내로남불’ 세상이다. 상식과 정의는 필요에 따라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는다. 이 가을 자신의 언행을 스스로 돌아보는 성찰이 필요한 때다.
 
대구한의대 교수‧중앙일보 객원기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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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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