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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구린 돈 뒤에 숨은 너, 누구냐

중앙일보 2020.10.15 00:3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상한 일 투성이다. 30여 년 경제 기자를 했지만 처음 본다. 라임·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 말이다. 각각 1조6000억·5000억원의 초대형 사고다. 피해자도 수천 명이다. 구린 돈은 냄새가 독하다. 덮을 수도, 감출 수도 없다. 그런데도 검찰은 ‘봐주기’ ‘덮기’로 가닥을 잡은 듯하다. 금융 쪽 눈으로 보면 더하다.
 

금감원, 전례 없는 전액 배상 권고
라임·옵티머스가 특별해서인가
그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건가

첫째, 왜 꼭 청와대 행정관이 등장할까. 옵티머스 사태의 핵심 고리 중 하나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모 전 행정관이다. 옵티머스 주식 10만 주를 차명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전 행정관은 옵티머스 이사인 남편과 함께 구린 돈의 흐름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 라임 사태엔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김모씨가 등장한다. 그는 브로커 김봉현(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사건 무마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됐다. 김봉현은 최근 법정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의 돈이 전달됐다”는 취지의 증언을 한 인물이다. 결이 좀 다르지만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동생이 연루된 디스커버리 펀드도 1876억원의 환매가 중단됐다.
 
둘째, 왜 핵심 인물이 도주·잠적하나. 라임의 김봉현과 이종필 부사장은 각각 지난해 구속영장 청구 직후 도주한 뒤 5개월 만에 검거됐다. 옵티머스의 설립자 이혁진은 미국 도주 중이고, 펀드를 설계·판매한 핵심 정영제(옵티머스 대체투자 대표)와 정치권의 연결고리인 신모씨는 잠적했다.
 
셋째, 왜 금융당국이 그리 친절했을까. 옵티머스가 민원을 내자 금융위원회 직원이 직접 1층에 내려가 서류를 받아 왔다고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친절히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 위원장의 말은 비단결 같지만 실상과는 딴판이다. 대부분 금융인에게 금융위는 인허가 권력의 끝판왕이요 갑질의 대명사다. 상징적인 일화가 있다. 21년 전인 1999년 6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대한생명 입찰 서류를 들고 직접 금융위를 방문했다. 하지만 담당 국장은 그를 30분 넘게 기다리게 하며 문전박대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시간이 흘렀지만 금융당국의 갑질 DNA는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이상한 일의 끝판왕은 따로 있다. 금감원이다. 금감원은 라임펀드를 판 신한금융투자·우리은행 등에 “투자 원금의 100%를 돌려주라”고 했다. 스스로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성웅 금감원 부원장보는 “투자 원금 전액 반환 결정이라는 가보지 않은 길이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망설이는 금융사엔 “경영 평가 실태에 반영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업계에선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이 실종되면 자본시장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외환위기 때도 50%를 물어준 게 최대였다.
 
금감원의 압박은 옵티머스 펀드를 판 한국투자증권과 NH증권에도 이어졌다. “배임죄에 걸린다”며 버티던 NH증권은 임시이사회를 6차례나 여는 진통 끝에 원금의 최대 70%(개인·3억원 이하)까지 유동성을 지원하기로 했다. NH로선 유례없는 일이다. NH증권 사외이사 두 사람은 안건 의결 직전 사퇴했다. 한투증권은 90%를 물어줬다. 역시 유례없는 일이다. 한투는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자에겐 아직 한 푼도 물어주지 않고 있다.
 
피해자가 없으면 고소·고발도 없다. 원금을 돌려받았는데 고발할 투자자는 없다. 해당 금융회사 이사들은 배임죄와 패가망신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검찰은 아예 수사 의지가 없다. 아무도 고발하지 않고 수사하지 않으면 사건 자체가 묻힐 수 있다. 설마 금감원이 그런 걸 노려 “100% 배상”을 밀어붙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소비자 보호를 가장 중시하는 인물이다.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그래도 이상하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갑자기, 동시에,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나. 금융계 인사는 “거대한 힘이 움직이고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안 된다”고 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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