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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대한민국, 어디로 가고 있는가

중앙일보 2020.10.15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퀴즈 하나. 핀란드·이스라엘·폴란드·대만, 그리고 대한민국의 공통점은?
 

공무원 피살과 BTS 발언 파문
국가 존립, 지속가능성과 관련
쓰나미 오는데 경보 울리지 않아

정답은 ①한때 지도상에서 국가명이 사라졌었고 ②강대국의 패권 다툼으로 전쟁·혁명·학살의 비극을 겪었으나 ③희생과 좌절을 딛고 성장과 번영을 이룬 국가다.
 
1795년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의 협정에 의해 나라가 없어졌던 폴란드는 1918년까지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독립 이후에도 러시아와 독일의 틈바구니에서 국민이 희생되고 영토가 분할되는 아픔을 겪었다. 핀란드는 1808년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점령당한 이래 1917년까지 100년 넘게 러시아의 땅이었다. 공산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내전에 휩싸였고, 이후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 끝에 영토를 회복했다.
 
‘전쟁으로 건설된 국가’인 이스라엘의 건국 스토리는 대하 드라마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반작용이 부른 시오니즘의 열풍이 이스라엘 건국(1948년)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적대적인 이웃의 아랍국들과 4차례나 큰 전쟁을 치러 모두 승리했다.
 
대만과 우리는 유사한 수난의 역사가 있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식민지가 됐다가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나란히 독립국이 됐다. 지도상에서 영영 사라질 뻔했던 나라들이 위기를 딛고 번영을 일굴 수 있었던 비결은 하나다. 시대의 조류를 읽을 줄 알았던 지도자들의 통찰력과 강인한 국민이 뭉쳐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영토를 보존하는 것, 제 나라 운명을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는 주권을 지켜내는 것을 그 어떤 것과 맞바꿀 수도, 양보할 수도 없는 신성한 사명으로 여겼다.  
 
대한민국의 탄생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지금 국가가 제 기능을 하고 있는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가 과연 담보될 수 있는가 하는 깊은 우려와 회의를 갖게 한다.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무참히 살해되고 시신이 불태워진 사건에서 정부는 부재 혹은 실종 상태였다. 우리 국민이 서해에서 30시간 넘게 표류하는 동안 정부는 사실상 구조를 위한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북을 향했어야 할 책임자 처벌과 규탄, 재발 방지 요구는 북측이 보냈다는 사과 통지문 하나에 흐지부지돼버렸다.
 
집권세력은 가해자 격인 김정은을 “계몽군주”로 둔갑시켰다. 신형 무기를 과시하며 미국과 우리 국민을 공개 압박한 날도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두손 마주 잡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는 메시지에 반색하며 김정은 칭송 모드로 돌변했다. 제 국민의 죽음은 잊어버린 듯 적장을 찬양하는 해괴한 일이 하루가 멀다고 반복되고 있다. 국민의 목숨을 중요시하지 않는 국가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는가. 국민의 죽음에 대해선 입도 벙긋 못하면서 대화 카드를 흔들며 ‘종전선언’ 운운하는 건 국가가 어떻게 존립하는가를 망각한 위험한 사고이며 시대착오다.
 
BTS(방탄소년단)의 6·25전쟁 발언 파문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의 미래’의 문제와 닿아있다. 이번 사건이 일부 중국 네티즌들의 강성 발언에서 촉발됐고, 곧바로 중국 정부가 진화에 나서 더 큰불로 옮겨붙지 않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애플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도 네티즌들의 과잉 반응으로 곤욕을 치른 걸 보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갈수록 격렬해지는 미·중 패권 다툼이 우리의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시진핑 주석의 과거 ‘속국’ 발언과 사드 보복으로 우리 기업이 입은 치명상은 신(新) 중화질서로의 편입을 요구하는 중국의 공세가 더 거칠어질 것을 예고한다.
 
문제는 눈앞에 쓰나미가 몰려오는데 누구도 경보를 울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치권은 정권 잡기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행정부와 사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장악한 집권 민주당은 해수욕 즐기러 나온 사람들마냥 태평하다.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부패·비리 사건을 틀어막느라 에너지를 소진한 탓인가. 국회의석 3분의 2에 육박하는 176석을 갖고도 무엇 하나 성과를 내는 게 없다. 약자를 위한다는 구호는 요란한데 이 정부 들어 부(富)의 양극화, 부동산 양극화, 교육 양극화는 되레 심해졌다. 제1야당 국민의힘은 정치권 변방으로 밀려난 곁방살이 신세다. 실정을 따끔하게 혼내지도,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OECD 자살률 1위, 출산율 꼴찌.’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이 처참한 성적표는 목표를 잃고 표류하는 대한민국호(號)의 자화상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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