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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스가 시대’ 한·일 갈등 국제법과 상식으로 풀어야

중앙일보 2020.10.15 00:19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취임한 지 15일이면 꼭 한 달이다. 그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외교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해 한·일 관계가 당장은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다. 다만 한국이 강제징용 배상 판결의 집행을 강행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일본 언론은 한국 정부가 압류 자산 현금화를 실행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해야 스가 총리가 연말 한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 참석할 거라고 보도했다.
 

징용·위안부, 한·일 관계 핵심 쟁점
죽창가 선동 말고 국민 설득해야

일본은 한국의 정치인에게 무엇인가. 이 문제를 모르고 한·일 외교의 맥락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김영삼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가 제기되자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호언장담하다가 IMF 사태를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대중·오부치 선언’으로 한·일 협력을 위한 새 지평을 열었다. 노무현·이명박 두 대통령은 임기 말에 독도 문제를 이용해 지지율을 만회했으나, 한·일 관계는 나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과 위안부 문제에 합의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번복해 결국 무산됐다. 김대중·박근혜 대통령을 제외하면 대부분 역대 대통령들은 한·일 관계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또다시 반일 프레임으로 외교의 근간을 흔들고 있어서 우려스럽다. 최악인 한·일관계를 계속 방치한다면 결국 우리의 외교적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
 
외교는 상대가 있기에 완전한 승리가 불가능한 영역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 아니다. 국가 간 분쟁은 국제법에 의해 실현 가능한 합의를 끌어내면 된다. 독도와 징용, 위안부 문제는 죽창가로 국민을 선동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인은 미흡한 합의라도 국민을 설득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일본의 통상 보복으로 번진 징용 문제는 결국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해석이 관건이다. 이런 분쟁은 국제사법재판소(ICJ)나 국제중재에 회부하면 깨끗이 해결된다. 개인의 청구권은 청구권협정과 별개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국제적인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위안부 합의도 마찬가지다. 2015년 12월 한·일 합의를 파기한 결과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자. 당시 아베 총리의 사과문은 적어도 국제법적으로 국가 책임을 인정했고,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배상도 포함했다.
 
그런 합의를 뒤집은 것은 자신의 선행(先行) 행위와 모순되는 후행(後行)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금반언(禁反言)의 원칙’에 위배되고 법적 정당성도 없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얻은 게 무엇인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이용했다는 윤미향 민주당 의원에 대한 국민적 공분과 외교적 파탄 외에 없다.
 
삼권분립 때문에 정부가 사법부의 결정에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도 국제적으로 통하지 않는다. 국내법을 이유로 국제법상 의무 위반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은 현대 국제법의 확고한 원칙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사법 자제의 원칙을 존중한다. 일본은 그런 맥락에서 한국의 국제법 위반을 비난한다. 그런 지적을 받으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언급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 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한·일 관계의 이면에는 복잡한 역사와 민족 감정이 뒤섞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북아의 외교·안보 지형은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북핵 위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인도·태평양 안보협의체 쿼드(Quad)는 한국을 제외한 안보동맹으로 발전하고 있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국익이 있을 뿐이다.
 
이제는 국익을 위해 시대착오적 반일 프레임은 버리자. 우리 외교의 정당성은 국제사회의 법과 상식을 무시하고 확보되지 않는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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