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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특유의 위기 돌파력으로 세계 5위 완성차 일궜다

중앙일보 2020.10.15 00:04 경제 2면 지면보기
‘경영자 정몽구’는 품질 개선을 위해 생산·판매 현장을 직접 누볐다. 2016년 정몽구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슬로바키아 질리나시에 있는 기아차 공장에서 신형 스포티지 조립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그는 그 해 석 달 간 지구 한 바퀴에 해당하는 장거리 해외 출장을 소화했다. [중앙포토]

‘경영자 정몽구’는 품질 개선을 위해 생산·판매 현장을 직접 누볐다. 2016년 정몽구 당시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슬로바키아 질리나시에 있는 기아차 공장에서 신형 스포티지 조립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그는 그 해 석 달 간 지구 한 바퀴에 해당하는 장거리 해외 출장을 소화했다. [중앙포토]

정몽구(82)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하 MK)은 계열 분리 20년 만에 그룹을 아들 정의선(50) 회장에게 넘겼다. 바통을 아들에게 넘기겠다는 MK의 의지는 이미 2년 전부터 강했다는 게 재계의 전언이다. 노년에 승계 문제를 말끔하게 처리하지 못했던 아버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을 주변에 여러 차례 밝혔다고 한다. 장자(長子)이자 외아들인 정 회장이 경영 능력을 발휘한 점도 선택을 편하게 한 배경이다.
 

현대차그룹 바통 넘긴 MK
2년 전부터 경영권 이양 강한 의지
1974년 부품·자재 업무 맡으며
도요타와 격차 절감 ‘품질경영’ 시동
자산 20년 만에 34조서 234조로 키워

MK는 아버지(정주영 회장)와 작은 아버지(정세영 회장)가 일군 한국 자동차 산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재계에서 MK에 대해 “재벌 2세였지만 창업 경영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고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1938년 지금은 북한 땅인 강원 통천에서 태어난 MK는 서울 경복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거쳐 70년 현대차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맏형 고(故) 정몽필(1934~82) 전 인천제철 사장이 일찍부터 아버지를 도운 반면, MK는 입사 초기만 해도 경영에 큰 뜻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차 서울사무소에서 부품·자재 관련 업무를 맡고, 4년 뒤 현대자동차써비스㈜ 대표에 오르면서 평생 강조한 ‘품질 경영’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75년 서울 현대자동차써비스 원효로 공장. 정몽구 당시 사장은 직원들에게 “도요다(일본 도요타)는 보수 부품도 잘 맞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 거냐”고 질책했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직원 가운데 한 명이 겨우 “우리는 아직 보수 부품과 원 부품의 품질 편차가 있다”고 털어놓자, MK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차를 이렇게 만들면 안 되겠구나.”
 
96년 그룹 회장에 오른 데 이어 99년 ‘포니 정’ 정세영 회장에게서 현대차 경영권을 넘겨받은 그는 2000년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동생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과 갈등을 빚는다. 결국 현대차 계열 회사를 분리해 독립했고, 불과 20년 만에 재계 2위의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일궈냈다.
 
정몽구 명예회장이 걸어온 길

정몽구 명예회장이 걸어온 길

분리 당시 계열사 10개, 자산 34조원에 불과했던 현대차그룹은 2019년 현재 계열사 54개, 234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10년엔 미국 포드를 제치고 세계 완성차 판매 5위에 처음 올라 지난해에도 글로벌 톱5의 지위를 지켰다.
 
‘품질 경영’과 함께 특유의 ‘위기 돌파력’, 그리고 ‘장자(長子) 의식’은 정몽구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1980년대 ‘액셀 신화’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지만 싸고 품질이 형편없는 차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품질 경영에 박차를 가하면서 2004년 미국 J.D파워 신차 품질조사에선 일본 도요타를 앞섰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엔 파격적인 ‘10년, 10만 마일 보증’으로 미국 시장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외환위기 당시 무너진 기아차와 한보철강의 인수도 MK의 결정이었다. 현대건설을 인수하고 선대의 꿈이었던 일관제철소를 건설한 것은 MK 특유의 ‘장자 의식’ 때문이란 게 재계의 평가다.
 
글로벌 10개국에 생산 기지를 건설했지만, 중국 공장에의 과잉투자나 글로벌 합종연횡의 흐름에서 뒤처졌던 점은 결과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 삼성동에 사옥인 ‘글로벌 비즈니스센터(GBC)’ 부지를 매입한 결정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상명하달식 수직적 기업문화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미 2년 전 아들에게 그룹 회장직을 물려주려 했던 MK는 지난 7월 대장게실염 등으로 입원한 뒤 3개월째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고령인 데다 코로나19로 병원에 계시는 게 좋다는 판단을 내렸고 현재 건강 상태는 좋은 편”이라고 전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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