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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로마 유학생 기도문 100년 만에 찾았다

중앙일보 2020.10.15 00:03 종합 16면 지면보기
최초의 로마 신학교 유학생인 전아오의 기도문. 우르바노대에 제출한 서약서 한 켠에 적었다. ’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무사히 공부를 마치게 해달라“는 취지의 소망이 담겼다. [연합뉴스]

최초의 로마 신학교 유학생인 전아오의 기도문. 우르바노대에 제출한 서약서 한 켠에 적었다. ’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무사히 공부를 마치게 해달라“는 취지의 소망이 담겼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로마로 유학한 조선 신학생의 자필 기도문이 10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한국 최초 로마 유학생 전아오의 기도문이다.
 

전아오 “무사히 공부 마치게…”
협심증 사망, 사제 꿈 못 이뤄

일제의 탄압이 극심하던 1919년 말 대구대목구의 성유스티노 신학교 학생인 전아오(아우구스티노·18·제주)와 송경정(안토니오·19·대구 달성군)은 교황청 뜻에 따라 유학길에 올랐다. 이듬해 1월 로마에 도착해 교황 베네딕토 15세를 알현했다. 교황은 “한국의 훌륭한 사제가 되길 기도한다”고 덕담했다고 한다.
 
최초의 로마 신학교 유학생인 전아오의 기도문. 우르바노대에 제출한 서약서 한 켠에 적었다. ’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무사히 공부를 마치게 해달라“는 취지의 소망이 담겼다. [연합뉴스]

최초의 로마 신학교 유학생인 전아오의 기도문. 우르바노대에 제출한 서약서 한 켠에 적었다. ’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무사히 공부를 마치게 해달라“는 취지의 소망이 담겼다. [연합뉴스]

로마의 우르바노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두 사람은 끝내 사제의 길을 가지 못했다. 송경정이 결핵에 걸려 1922년 4월 귀국했고, 5월 전아오는 협심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송경정도 1923년 5월 숨을 거뒀다.
 
전아오가 우르바노대 입학 직후 쓴 자필 한글 기도문을 최근 이백만 주교황청 대사가 대학 자료실에서 찾았다. 기도문에는 “전능하시고 인자하신 천주께서 조선에서 공부하러 온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무사히 공부를 마치게 해달라”는 취지의 소망이 담겼다. 기도문 끝엔 “차후 이 글을 보는 자는 이 죄인을 생각해 성모경(성모송) 한번 암송해달라”는 부탁도 있다. 이 대사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듯한 글귀인 것 같아 마음을 울린다”고 말했다.
 
전아오의 기도문을 접한 비첸초 비바 우르바노대 신학원장(몬시뇰)은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쓰는 통상적인 자필 서약서 외에 본인의 모국어로 별도 기도문을 쓴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놀라워했다고 이 대사는 전했다.
 
이 대사는 베라노 공동묘지 전아오의 묘소를 찾아 성모송과 함께 묵주 기도로 넋을 기렸다고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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