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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돈, 제비뽑기, 세입자 위로금까지…임대차 시장 진풍경

중앙일보 2020.10.14 18:16
주택 임대차 시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pikist

주택 임대차 시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pikist

주택 임대차 시장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2년+2년)과 전‧월세 상한제(5%) 시행 두 달여 만이다. 
 
임차인이자 임대인인 홍남기 경제 부총리의 처지가 상징적이다. 서울 마포구의 전셋집은 집주인이 들어오겠다고 해서 비워야 하고, 경기 의왕시 집은 세입자가 갱신청구권을 쓰면서 매매 계약이 깨질 위기다. 
 
이 뿐 아니다. 귀해진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공인중개사에 웃돈을 주고, 전셋집을 보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집을 비우는 대가로 ‘위로금’을 요구하는 세입자도 있다. 자연히 주택임대차 분쟁은 급증했다.  
 

#1. 귀한 전셋집 구하려 중개수수료 ‘웃돈’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김모(44)씨는 요즘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해서 현재 사는 전셋집을 12월 말까지 비워야 하는데 아직 새 전셋집을 구하지 못해서다. 초조해진 김 씨는 부동산 중개업소에 전셋집이 나오면 먼저 연락을 주는 조건으로 ‘웃돈’을 제안했다. 전세보증금이 8억원 이하여서 640만원(0.8%)을 중개수수료로 주면 되지만 1000만원을 주기로 했다. 김씨는 “사춘기인 중학생 딸이 전학은 싫다고 해서 다른 동네로는 못 가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전셋집 구경도 못했다”고 말했다.  
 

#2. 전셋집 보기 위해 휴가 내고 제비뽑기

경기도 판교신도시에 사는 임모(34)씨는 최근 전셋집을 보기 위해 휴가를 냈다. 기존 세입자가 수요일 오전 10시에만 집을 볼 수 있다고 해서다. 약속한 시각보다 5분 늦게 도착한 임씨는 1층에서 20분을 기다려야 했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5분 단위로 대기자 5팀과 약속을 해서다. 임씨는 “딱 5분 늦었는데 1번이었던 순서가 5번으로 밀렸다”며 “전세보증금을 더 내겠다는 사람에게 밀려서 계약은 결국 못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는 한 아파트 전셋집을 보기 위해 10여 명이 현관 앞에 줄을 서고, 계약을 희망한 5명이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정하는 일도 벌어졌다.  
 

#3. 퇴거 조건으로 이사비 수천만 원 요구

서울 동대문구 아파트를 전세 놓은 전모(52)씨는 11월 전세계약 만료를 앞두고 8월 실거주를 원하는 매수인과 매매계약을 맺었다. 세입자에게도 미리 설명을 했고 ‘알았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세입자가 태도를 바꿨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써서 2년 더 살겠다는 것이다. 매수인은 전씨에게 계약파기 책임을 물어 계약금만큼 위약금(8000만원)을 요구했다. 다급해진 전씨는 세입자에게 새 전셋집을 구할 중개수수료와 이사비를 대신 내줄 테니 퇴거해달라고 제안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전씨는 500만원을 제안했지만, 세입자는 4000만원을 요구했다. 전씨는 “세입자가 위약금 8000만원 무는 것보다는 절반인 4000만원을 쓰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하는데 강도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 오르고 거래 줄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서울 아파트 전셋값 오르고 거래 줄고.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상황이 생긴 데는 국회 상정 3일 만에 시행된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 영향이 크다.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재계약이 늘면서 새 전셋집이 시장에 나오지 않으면서 전세물건이 확 줄었다. 전셋값을 5% 이상으로 올리지 못하게 된 데다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이 당장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월세(반전세)를 선호하는 것도 전세 품귀의 이유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9월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는 5262건으로, 임대차법 시행 직전인 7월(1만2092건)보다 57% 감소했다. 지난해 9월 대비 44% 줄었다.  
 
거래는 물론이고, 전세로 시장에 나오는 아파트 자체도 확 줄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인 아실에 따르면 지난 두 달간 서울 아파트 전세물건(5일 기준)은 77% 감소했다. 두 달 전 전세 물건이 3만6008가구였지만, 현재는 8313건에 불과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서울 전세수급지수(10월 첫 주)는 192로, 2013년 9월 이후 가장 높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숫자가 커질수록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전세물건이 귀해지자 전셋값은 뛰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은 5월 0.06%, 6월 0.24%, 7월 0.45%에서 임대차법 시행 후 8월 0.65%, 9월 0.60%로 뛰었다. 임대차 관련 분쟁은 늘고 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8~9월 임대차 분쟁 상담 건수는 1만783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 증가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이번에 계약갱신청구권을 첫 적용한 전세물건이 한꺼번에 나올 2년 후에는 전셋값이 더 오르고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져 전세물건이 더 귀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9억원 미만에 대한 대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실수요자가 집을 살 수 있게 해줘야 궁극적으로 전세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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