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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진욱-장병철-최태웅, 35년지기 세 친구의 시즌2

중앙일보 2020.10.14 15:19
초등학교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석진욱-최태웅-장병철 감독. 천안=정시종 기자

초등학교 때부터 우정을 쌓아온 석진욱-최태웅-장병철 감독. 천안=정시종 기자

"셋이 같이 인터뷰하는 게 얼마 만이지?"
 
프로배구 현대캐피탈 최태웅, OK금융그룹 석진욱, 한국전력 장병철 감독, 1976년생 단짝 친구가 함께하는 두 번째 시즌의 막이 오른다. 17일 개막하는 프로배구 V리그에서 세 감독은 양보 없는 승부를 예고했다.
 
세 사람은 배구계에서도 소문난 단짝 친구다. 1984년 인천 주안초 3학년 때 같은 반에서 처음 만났다. 함께 배구를 시작했다. 석진욱 감독은 "1학년 때는 키가 크고 남학생이 많아 병철이와 짝이었다. 3학년 때 선생님이 키 큰 아이를 따로 모았는데, 태웅이까지 같은 반이었다"고 소개했다. 최 감독은 "진욱이가 며칠 먼저 (배구를) 시작했지만, 선수 등록은 같은 날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석진욱이 리시브한 공을 최태웅이 토스하고, 장병철이 스파이크로 끝냈다. 똘똘 뭉친 세 사람을 당해낼 상대가 없었다. 인하부중-인하부고를 거치며 우승 트로피를 쓸었다. 석진욱·최태웅이 한양대로, 장병철이 성균관대로 진학하면서 셋은 처음 헤어졌다. 장 감독은 "대학에 가서야 태웅이가 토스를 정말 잘하는 걸 알았다"며 웃었다.
 
세 사람은 1998년 삼성화재에서 다시 뭉쳤다. 그 후로 함께한 시간이 10년이다. 2009년 장 감독이 은퇴했고, 최 감독이 2010년 자유계약선수(FA)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현대캐피탈에 이적했다. 석 감독은 "(장병철) 은퇴 막으려고 술도 많이 먹였다. (최태웅) 현대캐피탈 갈 때는 충격이 커서 눈물이 났다. 하지만 부럽기도 했다. 신치용 감독에 이어 김호철 감독이란 좋은 지도자 밑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최 감독도 "맞다. 팀이 어떤 과정을 통해 바뀌는지 직접 봤다. 최고의 지도자들을 보며 배운게 많다"고 했다.
 
2004년 삼성화재 선수 시절 함께 인터뷰에 나섰던 세 사람. [중앙포토]

2004년 삼성화재 선수 시절 함께 인터뷰에 나섰던 세 사람. [중앙포토]

삼성화재는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유명했다. 장병철 감독은 "훈련보다 차라리 경기를 하는 게 좋았다. 지금 훈련량은 당시 절반도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석진욱 감독은 "우리 선수들에게 삼성 훈련을 얘기했더니 '라떼는 말이야(나 때는 말이야)'라며 하지말라고 하더라"고 웃었다. 최태웅 감독은 "김세진, 신진식 형이 은퇴한 뒤 우리가 남았다. 형들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전성기를 이어갔다"고 했다. 
 
최 감독이 현대캐피탈로 이적한 2010년, 앞서 림프암 판정까지 받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석 감독은 "독한 놈이다. 우리한테도 말을 안 했다. 중병이란 걸 기사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장 감독은 "독한 병이지만 태웅이가 더 독해 이겨냈다. 정말 다행이다. 우리가 술이랑 담배 끊으라고 많이 얘기했다"고 귀띔했다.
 
선수로는 가장 오랜 뛴 최 감독은 2015년 은퇴 직후 현대캐피탈 감독이 됐다. 2013년 은퇴한 석 감독은 김세진 감독을 따라 OK금융그룹 코치를 하다가 지난 시즌 사령탑에 올랐다. 장 감독은 실업팀 선수로도 뛰었다. 그러다가 가족을 따라 뉴질랜드에 건너갔다. 한국전력 코치가 되면서 귀국했고, 지난 시즌 감독을 맡았다.
 
지난 시즌 세 사람의 지략 대결은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최 감독은 석 감독의 개막 5연승을 저지했다. 장 감독은 개막 후 이어졌던 연패를 최 감독을 상대로 끊었다. 세 친구는 경기가 끝난 뒤 늘 웃으며 악수한다. 장 감독은 "누구를 만나든 똑같지만, (우리끼리는) 격려나 위로가 조금 다르긴 하다"고 전했다. 최 감독은 "한국전력 경기를 보는데 장 감독 얼굴이 너무 안 좋더라.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아 따로 연락해 위로했다"고 전했다.
 
세 사람은 오프시즌에 의기투합해 이벤트도 마련했다. 지난해에는 삼성화재까지 네 팀이 부산에 모여서 '서머 매치'란 이름의 연습대회를 열었다. 부산은 연고 팀이 없는 프로배구 불모지다. 정식 대회는 아니었지만, 관중도 입장해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열지 못하고 대신 현대캐피탈 천안훈련장에서 모여 연습경기를 하고 이를 유튜브로 중계했다. 팬들은 '랜선'을 통해 배구 갈증을 해소했다.
 
공교롭게도 세 감독 계약 기간이 올 시즌까지다. 석 감독은 "우리끼리 만나면 늘 '배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자'고 얘기한다. 그러려면 다 같이 살아남아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친구들이 사령탑 생존에 관한 조언을 구하자 6년 차인 최 감독은 "지난해(감독 첫 시즌)에는 시야가 좁아졌을 거고, 올해는 캄캄할 거다. 6년째가 되면 어떻냐면, 그건 그때 가서 알려줄게"라고 장난쳤다.
 
강한 감독이 살아남은 걸까. 살아남는 감독이 강한 걸까. 이들의 우정보다 오래 살아남고 강한 게 과연 뭘까.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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