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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추석 마지막 날 "난 피곤했다" 아버지, 진심일까

중앙일보 2020.10.14 15:00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31)

나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진심’이고, 나쁘게 보면 매우 ‘직설적’이다. 연애할 때 상대에게 명확히 했던 것 역시 그 점이다. 여자가 “아니요”라 하는 건 실은 “네”일 확률이 높다는데, 나는 ‘말하는 것이 100% 진심이니 있는 그대로 이해해 달라’는 것이다. 남들 보기에 성공적인 연애를 (굳이 연애의 종착역을 ‘결혼’이라 한정 짓는다면 ) 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이러한 선언이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자부해 왔다.
 
문제는 지금 함께 사는 분이 나와 차원이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다. 분명 같은 언어인데, 그와 내가 사용하는 단어는 그 정의와 쓰임은 전혀 다르다.
 
사례1
“먹고 싶다”
- 사전적 의미: 먹고자 하는 마음이나 욕구를 나타내는 말.  
 
딸 : 아버지, 커피 드시겠어요?
아버지 : 나는 괜찮다. 혹시 너 먹고 싶으면 타서 나 한모금만 주라.
 
질문 : 과연 딸은 커피를 탔을까요?
아버지는 커피를 좋아하신다. 그것도 진한 커피믹스를. 예전엔 하루 2~3잔씩 드셨는데, 당뇨약을 드시면서 한 잔으로 줄였고, 뇌졸중 발생 후 디카페인으로 바꿨다. 나는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커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진한 커피믹스를 하루 2~3잔씩 드셨는데, 당뇨약을 드시면서 한 잔으로 줄였고, 뇌졸중 발생 후 디카페인으로 바꿨다. [사진 libreshot]

커피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진한 커피믹스를 하루 2~3잔씩 드셨는데, 당뇨약을 드시면서 한 잔으로 줄였고, 뇌졸중 발생 후 디카페인으로 바꿨다. [사진 libreshot]

 
아버지 말씀을 분석하면, “괜찮다”는 말에는 ‘건강을 생각하는 절제’가, “혹시”에는 ‘그런데도 마시고 싶은 욕구’가, “너 먹고 싶으면”에는 ‘본인 아닌 딸의 의지로 미룸으로써 불편한 마음을 걸고자 하는 의도’가, 마지막으로 “한 모금만”에는 ‘끝까지 자제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딸의 행동은? 건강을 우선하지만 단 한 모금이라도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반영하면, 커피믹스를 타서 드린 뒤 한 모금 드시고 남은 것을 알뜰하게 마시면 된다. 문제는 막상 커피믹스를 타서 드리면 “이거 몸에 안 좋다면서?”라는 괜한 타박은 물론 몸매를 희생하며 칼로리 높은 커피믹스도 직접 소화해야 한다. 그렇다고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드리면, 정말 한 모금만 드시고 바로 주시며 속으로 한 말씀 하실 것이다. ‘독한 것, 한 모금이라 했건만’.
 
궁극적으로 커피를 드시지 않도록 하는 게 옳다면 후자를 택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여기에 ‘정’이라는 난해한 감정이 개입된다. ‘좋아하는 커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관리하는 게 진정 건강에 도움이 될까?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데, 한 모금 정도야 괜찮겠지’하는 약한 마음. 그 결과 설탕과 크림이 들어간 커피믹스가 제조되고, 딸마저 새삼 뒤늦게 건강에 좋지 않은 커피믹스에 조금씩 맛을 들여가고 있다는 비극적 결말이다.
 
사례2
“전화하지 마라”
- 사전적 의미 : 전화 거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함을 표현하는 말.  
 
딸 : 이번 명절에 언니네 오는지 전화해 볼까요?
아버지 : 괜히 부담 주는 것 같으니 전화는 절대 하지 말고, 언제 오는지만 알아봐라.
 
질문 : 과연 언니에게 전화하지 않고도 명절에 오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다들 오냐?”
명절이 다가오면 늘 물으신다. 언니들과 통화할 때 미리 알아뒀다 바로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솔직히 나는 시부모님 모시고 있고 지방에 사는 언니들 형편 알면서 오느냐 안 오느냐 묻기 미안하다. 온다 했다가 못 오면 더 실망하시기에 미리 말씀드리기도 조심스럽다. 더구나 올해는 코로나19로 부모님 뵈러 오는 자식을 오히려 불효자 취급하는 분위기 아닌가. 그러니 아버지 물음에 “전화해 볼게요”라고 답할 뿐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다들 오냐고 늘 물으신다. 언니들과 통화할 때 미리 알아뒀다 바로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시부모님 모시고 있고 지방에 사는 언니들 형편 알면서 오느냐 안 오느냐 묻기 미안하다. [사진 pxhere]

명절이 다가오면 아버지는 다들 오냐고 늘 물으신다. 언니들과 통화할 때 미리 알아뒀다 바로 말씀드리면 좋겠지만, 시부모님 모시고 있고 지방에 사는 언니들 형편 알면서 오느냐 안 오느냐 묻기 미안하다. [사진 pxhere]

 
아버지는 어김없이 “절대 하지 마라”하신다. 내가 관심법에 능한 궁예도 아닌데 전화하지 않고 명절에 오는지 안 오는지, 오면 언제 오는지 어찌 알아낸단 말인가?
 
‘절대’라는 부사에는 ‘명절에 가족이 모이는 게 당연한데 묻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강한 자존심이 담겨 있다. “언제 오는지만 알아봐라”는 말에 이미 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절대 하지 마라”는 명령문임에도 ‘물었다가 못 오는 사정 얘기하면 서글퍼서 어쩌나’하는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나는 안다. 명절에 오느냐 묻는 행위 자체가 ‘꼭 오라’는 압력이며, ‘전화하지 마라’에는 ‘언니들이 부담 갖지 않고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도록 네가 잘 조정해봐라’하는 강한 바람이 담겨 있음을.
 
안타깝게도 현실을 좌우하는 것은 딸을 그리워하는 아버지의 마음도 아버지를 향한 딸들의 효심도 아니다. 그 아름답고 애틋한 감정은 그저 가슴 속 깊이 담겨 있을 뿐 ‘각자 상황’에 따를 뿐이다. 들어보면 나름대로 일리가 있고 다 이해되는 상황이기에 섭섭한 마음 다독이는 건 각자의 몫이다. 허물없는 가족이지만 그래도 온다 하면 냉장고도 신경 써야 하고 청소도 해 놓아야 하는 내 입장이 그러한데, 오매불망 기다리는 마음 애써 감춘 아버지는 오죽하랴.
 
“너는 모처럼 푹 쉬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 피곤했다.”
긴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저녁, 식사를 마친 아버지가 남긴 말씀이다.
 
(댓글로 아버지 말씀을 해독해 주시는 독자 3분에게 소정의 선물을 보내드립니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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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 푸르미 공무원 필진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 아버지와 10년째 동거 중인 20년 차 공무원. 26년간 암 투병 끝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아버지와 동거를 시작했다. 팔순을 넘어서며 체력과 인지능력이 급격히 저하되는 아버지를 보며 ‘이 평화로운 동거가 언젠가 깨지겠지’ 하는 불안을 느낀다. 그 마음은 감춘 채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다”고 주변에 이야기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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