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中서 VPN 없이 유튜브 본다? ‘하루 500만 설치’ 튜버의 배신

중앙일보 2020.10.14 05:00
[SCMP 캡처]

[SCMP 캡처]

VPN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가상사설망(Virtual Private Network)의 줄임말이다. 중국인, 아니 중국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에겐 필수품이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트위터, 구글에 접속하려면 말이다. 중국은 이들 서방 사이트와 애플리케이션을 2003년부터 하나둘 차단했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에 불리한 정보의 국내 유통을 막기 위해서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이런 중국의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해외에선 만리 방화벽(Great Firewall)이라고 부른다. 만리장성(Great Wall)과 컴퓨터 방화벽(fire wall)을 합친 말이다.
 
중국에서 VPN은 ‘판창(翻墻)’이라 불린다. ‘담장을 넘다’는 뜻이다. 만리 방화벽을 넘어 접속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려고 매번 VPN을 켜야 하는 건 매우 번거로운 일이다.

최근 중국인들 귀가 번쩍 뜨일 소식이 들렸다.

튜버. [둬웨이 캡처]

튜버. [둬웨이 캡처]

VPN 없이 유튜브와 구글을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했단 거다. 중화권 매체 둬웨이와 미국 IT 매체 테크크런치 등이 잇따라 보도했다.
튜버 브라우저 모습. [테크크런치 캡처]

튜버 브라우저 모습. [테크크런치 캡처]

지난 17년간 중국에서 불가능했던 걸 가능하게 한 주인공은 ‘튜버(Tuber)’라는 모바일 인터넷 브라우저다. 지난 9일 화웨이 스토어 등 중국 내 안드로이드 기반 앱 마켓에 등장했다.
 
이름과 아이콘 모양에서 알 수 있듯 ‘유튜브’를 벤치마킹했다. 브라우저를 시작하면 바로 유튜브가 뜬다. 물론 별도 탭을 열어 구글이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다른 사이트로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다.

[아이용닷컴 캡처]

[아이용닷컴 캡처]

튜버 브라우저를 쓰려면 일단 실명으로 가입된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일부 민감한 개인 정보 사용을 허용하는 약관에도 동의해야 한다.
[아이용닷컴 캡처]

[아이용닷컴 캡처]

여기서 끝이 아니다. 테크크런치와 둬웨이에 따르면 튜버는 사용자들에게 약관을 통해 사회주의 제도, 국가이익, 사회공공질서 등 7개 준수할 규칙과 국가정권 전복, 국가통일 파괴 등 9가지의 불허 수칙을 제시했다.
 
이외에도 법률을 위반하는 콘텐트를 적극적으로 시청하거나 공유하고,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는 것도 금지했다. 이를 어길 경우 계정을 무조건 폐쇄하고 위법 행위와 인터넷 접속 기록을 관련 기관에 제출해 수사하도록 하겠다는 엄포를 놨다.
 
테크크런치는 또 튜버로 유튜브에 접속하면 '천안문', '시진핑'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구에 대해선 검색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둬웨이 캡처]

[둬웨이 캡처]

그럼에도 중국에선 난리가 났다. 테크크런치는 “하루 만에 브라우저 누적 다운로드 건수는 500만 건을 넘겼다”며 “사용자는 수천만 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검열이 돼도 좋다. VPN 없이 자유롭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접속해보고 싶다. 이런 중국인의 마음이 담긴 결과다.
 
중국 당국도 놀랐나 보다. 앱이 등록된 지 하루가 갓 지난 10일 오후부터 튜버 브라우저는 화웨이 스토어에서 삭제됐다. 기존에 다운로드했더라도 브라우저가 작동되지 않는다.

튜버가 이대로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SCMP 캡처]

[SCMP 캡처]

테크크런치는 "기존에 다운로드한 튜버 브라우저를 켜면 ‘시스템 업그레이드 중’이란 메시지가 뜬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에선 이번 튜버 브라우저가 베타버전이라고 보도했다. 향후 정식 버전 출시 가능성을 남겨둔 거다.
 
애초에 서방 사이트를 VPN 없이 접속하는 도발적(?) 기능의 브라우저가 중국 앱 마켓에 쉽게 등록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중국 당국의 승인을 받았다고 보는 게 맞다.
[상하이일보 캡처]

[상하이일보 캡처]

튜버를 만든 업체를 보면 더 수긍이 간다. 중국 IT 기업 ‘상하이 펑쉬안(丰炫)’이다. 이곳은 중국의 유명 사이버 보안 기업 치후 360(Qihoo 360)의 자회사가 지분 70%를 갖고 있다.
 
테크크런치는 “치후 360의 임원 2명은 검열을 포함한 중국 정부의 사이버 정책과 관련해 산업계, 학계와 이견을 조율하는 중국 사이버보안협회 회원”이라며 “중국 정부가 치후 360의 브라우저를 승인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도했다.

튜버의 등장은 중국 정부의 새로운 검열 방식일 수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기존처럼 접속을 아예 차단하기보다 사이트는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대신 사이트 내 콘텐트를 철저히 검열하고, 이용자 개인 정보를 확보해 행동을 감시하는 거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라면 가능하지 않을 과도한 내용의 약관, 이를 튜버가 이용자에게 요구했던 것도 이해가 간다.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중국에서 VPN 사용은 불법이다. 2017년 제정된 ‘중국 인터넷 안전법’은 당국 허가 없이 VPN을 사용하는 걸 금지한다. 하지만 단속이 엄격하진 않다. VPN을 워낙 많이 쓰고 있어서다. 2018년 말 기준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 8억 2900만 명 중 VPN 사용자는 약 1억 4000만 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면 중국 내 인터넷 사용자 6명 중 한 명은 중국 당국이 처벌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려운 일이다.
 
둬웨이는 “몇 년 전부터 중국 정부도 VPN 사용의 필요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 며 “유튜브 등 서방 SNS 검열 방식을 중국 현실에 맞게 고치는 걸 연구해 왔다”고 전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튜버의 등장. 아직까진 중국 인터넷 검열의 ‘완화’가 아닌 ‘고도화’에 가깝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