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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테기가 직접 움직였다고?”···‘독일 소녀상’ 한·일 신경전

중앙일보 2020.10.14 05:00
지난 달 25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있다. [연합뉴스]

지난 달 25일(현지시간)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있다. [연합뉴스]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을 놓고 한·일 정부가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강제징용 문제로 깊어진 양국 감정의 골이 이번 일로 해묵은 위안부 피해자 문제로까지 확대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당국자 "한·일 정부 관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소식통 "소녀상은 정치적 상징물로 보기엔 무리"
독일측에 한국 입장 전달했을 것으로 관측

 
앞서 미테구는 이달 7일(현지시간) 한국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가 설치한 소녀상에 대해 오는 14일까지 철거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달 28일 설치를 승인했던 지방정부가 돌연 입장을 바꾼 배경에 일본의 물밑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 산케이신문과 NHK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이 지난 2일(현지시간)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과의 영상 통화에서 소녀상 문제를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소녀상이 정치적 중립을 어겼고, 외교 마찰이 우려된다”는 취지로 소녀상 철거 협조를 요청했다고 한다.   
 
코리아협의회는 일단 베를린 행정법원에 미테구의 통보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신청을 12일(현지시간) 제기했다. 미테구가 당초 소녀상 설치를 승인했다가 갑작스럽게 입장을 바꾼 것이 부당하다는 취지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 [AP=연합뉴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 [AP=연합뉴스]

외교부는 13일 공식적으로는 독일 연방정부나 미테구에 한국 측 우려와 항의성 입장을 전달했는지,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 고위급에서 대응에 나설지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 이재웅 부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기본적으로 민간 차원의 자발적 움직임에 대해 한국과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 부대변인은 “일본 정부의 최근 언행은 스스로 표명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책임 통감과 사죄, 반성의 정신에 역행하는 행보”라며 “상황을 예의주시면서 적절한 대응을 검토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공개 대응은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정부가 일본과 독일을 상대로 물밑 대응을 하려는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한 정부 소식통은 “정부의 입장엔 일본 정부의 철거 요청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소녀상은 전시 여성 폭력이라는 보편적 인권과 관련 있는 것으로 정치적 상징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현지 공관 등을 통해 독일 측에 이 같은 정부 입장을 전달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정부가 2015년 한ㆍ일 위안부 합의에서 소녀상 문제의 “적절한 해결에 대한 노력”을 언급해 불씨를 남겼다는 지적에 대해선 “국내 소녀상에 한정된 것”이라는 내부 입장도 정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의 질의에 “위안부 합의는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과 관련된 내용”이라며 “이번 베를린 소녀상 문제는 이와 별개이며 과거사 문제에 대해 일본이 그간 표명해 왔던 입장에도 반하는 조치라는 게 정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현지 주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9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을 현지 주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 해외 소녀상(제3국 기림비) 문제는 2015년 위안부 합의에 직접 담기진 않았다. 하지만 2017년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는 “합의 과정에서 이와 관련한 내용이 다뤄져 일본 정부가 관여할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TF에 따르면 2015년 위안부 합의에서 해외 소녀상 설치와 관련한 일본의 입장 요구에 정부는 “이러한 (설치) 움직임을 지원함이 없이 한·일 관계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함”이라고 답변했다. 정부가 소녀상을 이전시키거나 해외 소녀상 설치를 막겠다고 약속하진 않았지만, 일본 측의 관여를 반대한다는 의지도 표명하지 않아 불씨를 남긴 셈이다.
 
한편 독일 유학생과 교민들도 소녀상 철거 반대 청원을 벌이는 등 여론전에 가세하고 있다. 한 독일어 청원사이트에 올라온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반대 청원’에는 13일 오후 4시 현재까지 4883명이 서명했다.
 
청원자는 “소녀상은 성폭력과 전쟁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라며 “반일 운동이 아니라 평화 공존을 위한 것임에도, 일본은 (독일) 외무부와 베를린 상원, 미테구청에 동상을 제거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독일 측은 실망스럽게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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