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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휴가·결재 마음대로" 직원들도 놀란 넷플릭스 자유

중앙일보 2020.10.14 05:00 경제 5면 지면보기
'어이가 없었다.' '귀를 의심했다.' '큰 충격을 받았다.'
 

리드 헤이스팅스 인터뷰
편히 피드백 주고받는 게 조직 문화
‘유아독존형 능력자’는 팀워크 해쳐
자기관리, 원만한 대인관계도 능력
훌륭한 이야기 어디서나 사랑받아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OTT) 기업 넷플릭스의 직원들은 입사 직후 경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지난달 출간된 리드 헤이스팅스(60)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의 첫 책 『규칙 없음(No Rules Rules)』에 소개된 내용이다. 공동저자인 에린 마이어 인시아드(INSEAD) 경영대 교수가 전 세계 넷플릭스 직원 200여 명을 인터뷰했다.
『규칙 없음』의 저자인 에린 마이어 교수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사진 넷플릭스]

『규칙 없음』의 저자인 에린 마이어 교수와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혁신의 역사가 촘촘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별난 기업으로 꼽힌다. 휴가·출장·경비 규정이 없고, 수백만 달러짜리 계약도 상사의 결재가 필요 없다. '규칙이 없다'는 게 이 회사의 규칙이다. 민감한 재무 정보도 매주 전 직원에게 공개한다. 말단 직원도 창업자인 CEO에게 솔직한 피드백을 던진다. 467쪽짜리 책에서 '자유'라는 단어는 90여 차례나 등장한다. 직원을 얼마나 믿기에 이렇게 할까.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책임을 따지려고…. 
 

이런 의문에 리드 헤이스팅스 CEO는 최근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직원을 관리감독하는 대신, 직원 스스로가 회사에 가장 이로운 선택을 할 수 있게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환경을 만드는 게 재창조의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에도 넷플릭스가 성장을 거듭한 것은 기업문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가 채용한 직원은 '업계 최고의 인재'라는 확신,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 그리고 규칙없음의 자유가 핵심이다. 그러나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 최고가 아닌, 적당한 수준의 인재였다면 '두둑한 퇴직금'을 줘서라도 내보낸다. 많은 기업들이 분석하고 연구하는 넷플릭스의 기업문화 '자유와 책임(Freedom & Responsibility)'이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로이터=연합뉴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로이터=연합뉴스

 
'자유와 책임'은 최고 수준의 인재가 밀려드는 넷플릭스에서나 가능한 얘기 아닌가. 
세상엔 절차는 강조하면서 직원의 재량권은 인정하지 않는 조직이 많다. 조직이 커지면서 규정을 추가하고 절차에 얽매인 결과다. '누구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시스템'은 당장의 생존에는 맞을 수 있겠지만, 10년 또는 100년이 지나면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실패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사람들이 신뢰받으며 스스로 행동하는 주체가 될 때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고 믿는다. 우리가 직원에게 최대한의 자율과 권한을 부여하는 이유다.
 
한국처럼 조직 내 위계나 연공서열이 중요한 문화권에선 적용하기 어렵다. 
기업문화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혁신(innovation), 민첩성(speed), 명민함(agility)이다. 특히, 혁신의 본질은 시행착오다. 가장 큰 위험 요소는 '실수'가 아니라 최고의 인재를 모으지 못하고 환경이 변하는데도 기업이 방향을 바꾸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한국에선 세대 갈등이 직장내에서도 큰 이슈다. 넷플릭스엔 세대·인종·젠더 갈등이 없나.
나이·학연·인종이나 성장환경에 관계 없이 회사가 직원을 어른(grown-up)으로 대할 때, 직원들 역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다. 넷플릭스엔 '당사자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라'는 황금률이 있다. 타인에 대한 지나치게 솔직한 얘기가 사회생활에 독이 될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 전달 과정을 프로페셔널한 업무의 일환으로 만들었다. 동료, 상사, 부하직원 누구에게나 "제가 뭘 개선해야 할까요?" 거침없이 묻고 "내가 어떤 피드백을 아직 안 줬을까?" 고민하게 하는 문화를 만들면 직원 간 신뢰도 쌓이고 성과도 빠르게 오른다.
 
넷플릭스가 말하는 '록스타(최고의 인재)'는 어떤 사람인가.
'유아독존형 능력자'는 원치 않는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고 넷플릭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팀워크를 망치기 때문이다. 또 컨디션을 늘 최상으로 유지하는 자기관리와 원만한 대인관계도 능력이다. 우린 각 분야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드림팀'을 추구한다. 뛰어난 직원들이 협업까지 잘 한다면 창의성과 생산성은 절로 오른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AP=연합뉴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 AP=연합뉴스

 
OTT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소비자들의 '구독 피로'가 커질 거란 전망이 나온다.
구독 경제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다양한 관점을 논의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중시한다. 구독 모델을 계속 유지할지, 다른 접근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도 단골 토론 주제다. (논의 결과) 광고 없이 콘텐트를 볼 수 있는 사업모델은 지금까지 넷플릭스의 큰 성장동력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등 여러 동영상 플랫폼이 있다. 위협을 느낄 법도 한데.
젊은 시청자들의 유튜브 소비 시간은 넷플릭스 시청 시간의 7배다. 그렇다고 넷플릭스가 유튜브처럼 사용자들이 만든 콘텐트를 선보일 필요는 없다. 넷플릭스가 12년이나 걸려 모은 사용자 6000만명을 디즈니플러스는 1년 만에 해냈다. 혹자는 이걸 '위협'이라 볼 수 있겠지만, 우린 아니다. 넷플릭스의 '킹덤'과 디즈니플러스의 '더 만달로리안(스타워즈 배경의 오페라 드라마)'은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 소비자는 앞으로도 계속 여러 동영상 서비스를 이용할 것이다. 가격 경쟁력과 매력적인 콘텐트가 있는 기업엔 성장 기회가 여전히 열려 있다. 사용자에게 어떤 특별한 가치를 제공할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
 
넷플릭스의 성장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넷플릭스의 성장세.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DVD 대여업체에서 변화를 거듭해온 넷플릭스의 '넥스트'는 뭔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미래를 예측한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장기적인 계획'보단 '유연성'을 더 중시하게 됐다. 그럼에도 넷플릭스의 변함없는 궁극적인 목표는 '훌륭한 이야기는 문화와 국경을 넘어 어디서나 사랑받을 수 있다'는 믿음 아래 전 세계 사용자에게 최상의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선사하겠다는 것이다.
 
『규칙 없음』 속 리드 헤이스팅스의 경영 철학
“넷플릭스의 출장 및 경비 규정은 다음 다섯 마디가 전부다. 넷플릭스에 가장 이득이 되게 행동하라.” (p.121)
 
“베스트 플레이어는 보통 수준의 직원보다 10배에서 100배 이상의 가치가 있다.” (p.154~155)
 
“회사들이 직원의 연봉을 정할 때 사용하는 인상 풀(raise pools)과 급여 밴드(salary bands)는 사람들이 평생 직장에서 일하고, 개인의 시장가치가 몇 달 새 크게 치솟을 일이 없던 시절에나 통하는 방식이다. (직원들에게 줄) 업계 최고의 액수를 계산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최고의 인재가 떠난 빈자리를 메울 사람을 찾아 데려오고 훈련시키는 것만큼 오랜 시간이 소요되진 않는다.” (p.175~179)
 
“나는 직원들이 넷플릭스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기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 넷플릭스의 ‘일부’라고 생각하길 바란다. 누군가 넷플릭스에서 일하게 된다면, 절대 머리 위에 우산을 씌우지 않을 것이다. 그가 비를 맞게 되더라도.” (p.205)
 
“고위 중역들만 접할 수 있던 정보를 말단 직원에게도 알려주면 일을 더 능률적으로 하게 된다. 모든 직급에서 전략을 이해하고 있는 직원이 많을수록, 회사의 재정 상황과 그날의 맥락을 아는 사람이 많을수록, 상부의 별다른 지시가 없어도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p.206~207)
 
“넷플릭스는 이의 제기를 장려한다. 어떤 아이디어에 찬성하지 않을 때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것은 넷플릭스에 대한 불충이다.” (p.257)
 
“실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이런 분위기가 아니고는 혁신적인 문화를 기대할 수 없다.” (p.282)
 
“가족은 ‘성과’와 관계없이 함께하는 집단이다. 인재 밀도가 높은 직장의 직원들은 가족이 아니다. 최고의 선수들로 이뤄진 프로 스포츠팀에 가깝다.” (p.297~303)
 
“넷플릭스 문화를 생텍쥐페리처럼 표현한다면, 만약 배를 만들고 싶다면 일꾼들에게 나무를 구해오라고 지시하지 마라. 업무와 일을 할당하지도 마라. 그보다는 갈망하고 동경하게 하라. 끝없이 망망한 바다를” (p.372)
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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