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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퍼스펙티브] 與인사 뻔뻔함, 그뒤엔 '프레임' 있다

중앙일보 2020.10.14 00:40 종합 28면 지면보기

프레임 전쟁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미국의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유명한 실험. 수업시간에 그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결과는 어땠을까? 코끼리를 떠올리지 않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모든 낱말에는 ‘프레임’이 따라오기 마련. 일단 ‘코끼리’라는 말을 들은 이상 코끼리와 그에 결부된 연상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프레임을 부정해 봐야 외려 그것을 환기시킬 뿐이다.”
  

‘예언’과 ‘조작’ 동원하는 프레이밍의 선무당들
프레임 없이는 터져나오는 비리 감당할 수 없어
잘못 사과하는 대신 밑밥 깔아놓거나 공격하는 것
자유주의에서 벗어난 해괴한 전체주의 프레이밍

상대의 언어를 피하라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해명하며 국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국민들은 외려 그를 ‘사기꾼’의 프레임 안에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예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는 문재인 후보에게 따져 물었다.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하지만 상대의 언어를 차용함으로써 그는 상대가 뒤집어씌우려는 그 이미지에 갇혀버렸다.
 
올바르게 설정된 프레임으로 위기를 모면한 경우도 있다. 장인의 좌익경력을 문제 삼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럼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이 말로써 그는 부당한 연좌제 프레임을 깨버렸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남편의 해외여행이 질타를 받자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로 국면을 전환시켰다. 아내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사건을 원래 그것이 있었어야 할 맥락 속에 다시 옮겨놓은 것이다.
 
그릇된 프레이밍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도 있다. 이 분야의 귀재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러시아 유착 의혹이 제기되자 그는 이를 재빨리 ‘스파이 게이트’로 명명했다. 자신을 낙선시키려고 법무부나 FBI에서 공화당 선거캠프에 스파이를 심어두었다는 것이다. 한국에도 트럼프 못지않은 프레이밍의 귀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이다. 이 당 사람들의 프레임 전략은 여러 면에서 트럼프를 뺨친다.
  
김어준의 예언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레이코프는 미국의 리버럴과 좌파들에게 보수의 프레이밍에 맞서 진보의 가치를 담은 ‘올바른 프레임’을 설정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민주당 사람들은 이 전략을 주로 자기들의 비리를 은폐하는 데 악용한다. 그 방식도 몇 가지 점에서 트럼프의 것보다 악질적이다. 당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건을 프레이밍 하는 데에 ‘네이밍’이라는 언어학적 기법을 넘어 ‘예언’이라는 주술적 형식까지 동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18년 2월 말 김어준이 느닷없이 곧 미투 사건이 터질 것이라고 ‘예언’을 한다. “첫째 섹스, 좋은 소재고 주목도가 높다. 둘째 진보적 가치가 있다. ‘피해자들을 준비시켜 진보 매체를 통해 등장시켜야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예언(?)은 적중했다. 3월 5일 JTBC가 안희정 충북도지사의 성추행 사실을, 이틀 후 프레시안에서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다.
 
물론 이는 사건이 곧 터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깔아둔 밑밥에 불과하다. 대중은 예언을 적중시킨 점쟁이의 말을 더 신뢰하기 마련. 이 주술에 머리가 포맷 당한 이들은 민주당 사람들의 비리 의혹을 지지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적의 공작으로 계열화하고, 그 음모(?)에 맞서 비리 인사를 적극 엄호하게 된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 왔다. 예언의 은사를 입은 것은 김어준만이 아니다.
  
이해찬의 예감
 
지난 5월 이해찬 당시 대표가 노무현 전대통령 추도식에서 이상한 말을 했다. “노무현 재단과 민주당을 향한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모함을 받고 공작의 대상이 됐다. 지금도 그 검은 그림자는 여전히 어른거린다. 끝이 없고 참말로 징하다.” 곧 재단과 관련해 뭔가 사건이 터질텐데, 그게 다 적의 모함이고 공작이니 믿지 말라고 지지자들에게 미리 자락을 깔아둔 것이다.
 
그의 예감은 적중했다. 얼마 후 노무현 재단에서 일했던 직원의 폭로가 있었다. 윤건영 의원이 과거에 ‘미래연’의 기획실장으로 일하며 본인 명의의 차명계좌로 지자체로부터 수천만 원의 용역대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예고된 폭로의 김을 미리 빼고 사건의 해석을 적의 ‘모함’과 ‘공작’으로 계열화하려고 애먼 공익 제보자를 ‘검은 그림자’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런 일을 공당의 대표가 한다.
 
언젠가 유시민 이사장이 검찰에서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호들갑을 떨던 게 기억날 게다. 이 역시 지지자로 하여금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자신과 재단에 대한 검찰 수사를 특정 방향으로 해석하도록 미리 프레임을 깔아둔 것이다. 예고를 해두었기에 남세스러운 일이 터져도 지지자들은 혼란 없이 사건을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계열화하게 된다. ‘유 이사장은 검찰의 모함으로 공작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사실의 해석에서 제작으로
 
트럼프는 그래도 프레이밍을 ‘사후에’ 한다. 여성혐오 발언을 지적받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 말을 딱 한 여자에게만 했다.” 젠더의 의제를 ‘그 여자’의 문제로 바꿔 놓은 것이다. 민주당은 한술 더 뜬다. 그들은 아예 예언의 형식으로 프레임을 ‘사전에’ 깔아버린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프레이밍 작업을 위해 그들이 사실의 ‘해석’을 유도하는 차원을 넘어 아예 사실을 ‘제작’하려 든다는 데 있다.
 
‘검찰총장의 측근 한동훈 검사장이 종편 기자와 짜고 수감중인 이철씨를 압박해 유시민 이사장의 비리를 캐려 했다.’ 이 프레임을 그들은 머릿속의 해석이 아니라 아예 머리 밖의 사실로 만든다. 이를 위해 사기꾼 지모씨는 정치인 리스트가 있다고 기자를 속였고, MBC는 함정 취재로 이 공작을 거들었다. 최강욱 의원은 녹취록에 없는 한 검사장의 말을 지어냈고, KBS는 이 허구를 뉴스라고 내보냈다.
 
이른바 ‘검찰개혁’은 정책이 아니라 프레임의 이름이다. 그것도 한 사건이 아니라 모든 사건을 처리하는 ‘메타 프레임’. 그것으로 그들은 조국 사태를 덮었고, 선거 개입 수사에 제동을 걸었고, 라임·옵티머스 수사를 맡았을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을 해체했다. 그 프레임이 없이는 터져나오는 비리를 감당할 수 없으니, 머릿속에 주관적 해석으로 존재하던 그것을 밖으로 꺼내 사실로 굳혀두려 한 것이리라.
  
프레임의 폭력
 
법정의 이철씨는 검찰 조사에서 유 이사장에 관한 질문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그가 한 검사장의 이름을 듣고 위협을 느꼈다는 3월 25일은 기자가 취재를 중단한 지 사흘 뒤였다. 애초에 실체가 없는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검언유착’이라는 허구의 프레임 때문에 장관의 수사 지휘권이 발동되고, 부장검사가 상관인 검사장을 폭행하고, 취재 윤리 위반으로 기자가 구속되는 참사가 벌어졌다.
 
동양대 총장은 정경심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고, 나경원 전 의원은 검찰의 편파성을 증명하기 위해 13번이나 고발당해야 했고, 당직 사병은 추미애의 무결을 증명하기 위해 범죄자(‘단독범’)가 되어야 했다. 이 모두가 그 메타 프레임의 신성함 때문에 자행된 폭력이다. 그 매트릭스 안에서 가해자인 그들은 외려 모함을 받고 공작의 대상이 된 피해자로 행세한다.
 
그들의 뻔뻔함은 이와 관련이 있다. 그들의 사전에 사과는 없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이 메타 프레임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 대신에 공격을 하는 것이다. 조국은 언론사와 소송전을 벌이고, 윤미향의 남편은 네티즌을 무더기로 고소하고, 추미애는 “언론에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해 갈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 허구의 프레임을 현실에 사실로 등록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리라.
 
어느 정당이나 프레이밍을 하기 마련이다. 여당이 ‘검언유착’의 프레임을 깔면, 야당은 거기에 ‘권언유착’의 프레임으로 맞선다. 그렇다고 모든 프레임이 다 정당한 것은 아니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은 공화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스파이 게이트의 “증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자기 당 대통령의 프레임이 올바르지 못함을 인정한 것이다. 이것이 프레임을 대하는 자유주의자의 태도다.
 
민주당은 어떤가? 당·정·청이 그릇된 프레임을 제작·유지·사수하는 데에 목숨을 건다. 이를 말려야 할 언론과 지식인, 시민단체들마저 이 사기극의 주연급 조연으로 활약한다.
 
민주당의 프레임은 관념론이 아니라 유물론이다. 그저 해석이 아니라 조작과 공작으로 제작되는 사실, 즉 대안 현실이다. 이 ‘작풍’은 자유주의적이지 않다. 리버럴 정당의 프레이밍 전략이 전체주의의 특성을 보인다. 해괴한 일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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