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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비밀 없는 비밀정보기관 ‘식물 국정원’은 국익에 어긋나

중앙일보 2020.10.14 00:34 종합 33면 지면보기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사랑과 전쟁, 그리고 경제에 관한 한 모든 것이 정당하다.” 프랑스 정보기관의 모토에는 정보기관의 임무와 활동 방식이 한마디로 함축돼 있다.
 

간첩 수사 경찰 이관이 개혁인가
원장 임명동의제로 정치개입 차단

어느 나라든 안보가 위태로워지면 무슨 수단이든 총동원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때론 비윤리적이고 불법적 일까지 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 정보기관이다. 정보기관이 추구하는 가치와 일하는 방식은 행정부처와는 다르다. ‘더러운 일’을 ‘맵시 있게’ 하는 것이 최고 가치다. 은밀성과 기밀유지가 업무 특성이다.
 
그런데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발의로 국회에 계류 중인 국정원법 개정안은 정보기관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 우려스럽다. 대표적인 것이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이다. 간첩 색출을 위해서는 은밀한 활동이 필수적이고 국내정보와 해외정보, 인간정보(HUMINT)와 기술정보(TECHINT), 첩보망과 정보 협력 등 다양한 출처를 두루 활용해야 한다. 경찰은 공개된 조직인 데다 해외 정보망도 없다. 무엇보다 타국에서 하는 정보·수사 활동은 불법이어서 경찰이 외국에서 수집한 증거는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나라 가운데 안보수사를 경찰에만 맡기는 나라는 없다. 특히 우리는 북한이 보내는 간첩의 90%가 외국을 경유하고 있어 경찰만으로는 간첩 색출이 거의 불가능하다.
 
여당 안대로라면 국정원의 대공 정보 수집 기능도 대폭 축소된다. 간첩 수사의 중요한 단서가 되는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 관련 정보 수집이 금지된다.
 
간첩수사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북한과의 연계 입증인데, 북한과의 연계가 밝혀지지 않은 안보 침해 행위에 대한 정보 수집은 착수조차 금지된다. 아예 대공 정보 수집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은 손발이 잘리는 셈이 된다. 간첩이 서울 도심을 활보해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될 수 있다.
 
국정원에 대한 외부 통제도 대폭 강화된다. 정보 활동 기본지침과 정보수집 범위도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정원 근무 경력이 없는 사람을 국회 정보위원회가 추천해 임명하는 정보감찰관이 비밀공작 등 모든 업무를 감사하게 된다.
 
감사원의 자료 요구를 거부할 수 없게 돼 감사원이 대북정보 수집과 비밀공작 업무도 감사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 이런 식의 감사원 감사를 받는 정보기관은 어디에도 없다. 이렇게 되면 국정원은 적극적·창의적 업무가 어려운 ‘식물 정보원’이 될 것이다.
 
기밀 공개 범위의 확대도 문제다. 국회 정보위원 3분의 2가 요구하면 조직·정원 및  비밀공작 등 거의 모든 자료를 정보위에 넘겨야 한다. 감사원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국정원의 메인 서버까지 열어볼 수 있는 외부 출신 정보감찰관이 2~3년 근무한 뒤 교체되면 국정원은 ‘비밀 없는 비밀 정보기관’이 돼 공작원과 협조자 모집은 물론 외국과의 정보 협력이 어려워진다.
 
국정원 개혁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권력 분산으로 견제·균형을 이룬다는 데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몰아주는 것이 권력 분산이고 견제·균형인가. 흑역사 청산을 위한 개혁이라는 데 지난 30년간 국정원 대공수사는 인권 문제를 야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솔직히 더 아픈 과거를 지닌 경찰에 대공수사권을 넘기는 것이 무슨 흑역사 청산인지 이해할 수 없다.
 
이번 개혁안의 역점 분야인 국정원의 정치 개입 문제를 해결하려면 간단하다. 국정원장 임명 시 국회 동의를 의무화하고, 정치 개입 지시를 받은 직원이 국회 정보위에 직접 제소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이런 쉽고 간단한 방법을 놔두고 국정원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명칭도 ‘대외안보정보원’이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바꾸려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국회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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