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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2030의 ‘빚 내서 투자’

중앙일보 2020.10.14 00:33 종합 29면 지면보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경제학자는 노벨상을 탔다. 그러나 전 부인이 진정한 승자다.”
 

끝없이 오르는 부동산에 좌절
무조건 투자하는 ‘패닉 바잉’
양질 일자리 나와야 잠잠해져

1995년 10월 한 경제학자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자 미국의 주요 신문은 이런 내용의 기사를 앞다퉈 게재했다. 사정은 이랬다. 이 경제학자는 노벨상을 받기 6년여 년 전에 이혼했다. 그런데 그의 전 부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면서 다소 의외의 아이디어를 냈다. 재산 분할 서류에 한 문장을 끼워 넣었다. “아내는 노벨상금의 50%를 받는다….” 그것도 남편이 세금을 다 낸 다음에 아내가 상금액의 절반(50만 달러)을 가져간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상금이 100만 달러였다.
 
그런데 연방정부의 최고 소득세율은 39.6%였다. 여기에 주정부에서 3%의 소득세를 추가로 거둬간다. 이렇게 되면 이 경제학자는 세금을 내고 나면 상금의 대부분을 전 부인에게 고스란히 ‘바쳐야’ 했다. 경제학자는 명예만 얻고 실리는 전 부인이 챙긴 셈이다. 언론이 전 부인을 ‘진정한 승자’라고 부른 이유다.
 
이 경제학자가 바로 최고의 거시경제학자로 불리는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다. 루카스 교수는 합리적 기대가설을 거시경제학에 적용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경제주체는 가능한 모든 정보를 이용해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정책을 펴더라도 예상하고 행동한다는 게 합리적 기대가설이다. 쉽게 말해 정부가 많은 돈을 풀려고 하면 경제주체는 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임금 등도 그만큼 올리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 효과가 없게 된다는 이론이다.
 
서소문 포럼 10/14

서소문 포럼 10/14

이 가설은 주식에도 적용할 수 있다. 주가에는 시장의 모든 정보가 이미 반영돼 있다. 따라서 이때 초과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새로운 정보를 가진 사람뿐이다. 합리적 기대가설의 주식시장 적용에 크게 기여한 사람이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폴 밀그럼 스탠포드대 교수와 루카스 교수의 (이혼 후 결혼한) 부인인 낸시 스토키 시카고대 교수다. 이들은 시장에서 거래가 이뤄졌다면 이때 형성된 가격이 개별 거래자의 정보를 충분히 반영한다는 걸 증명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기대와 정보를 갖고 있다면 거래가 이뤄지지 않지만 이게 다르면 거래는 활발하게 이뤄진다.
 
이 논리에 비추어보면 비슷한 정보력을 가진 사람끼리 거래하다 보면 크게 손해를 보거나 이익을 내는 사람이 많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거래당사자의 정보력이 큰 차이가 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보가 많은 사람은 큰돈을 벌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요즘 2030세대의 투자가 이런 모습이다.
 
빚을 내서 주식투자를 하거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부동산 사재기에 나서는 젊은이가 확 늘었다. 열풍 수준이다. 20대가 증권사에서 빌린 돈(신용공여잔액)은 지난해 말 3062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4196억원으로 37% 급증했다. 서울은 18% 늘었지만 충남 92%, 인천 80% 증가하는 등 전국의 젊은이가 ‘빚내서 투자’ 대열에 뛰어들었다. 또 전체 은행권 대출에서 3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27.3%에서 올해 2분기 30.6%로 3.3%포인트 늘었다. 서울 아파트 구입자 세 명 중 한 명은 30대(8월 기준)로 매달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젊은 세대의 투자는 노후 대비를 위해서도,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도 긍정적이다. 문제는 ‘패닉 바잉’이라는 표현처럼 쫓기듯 투자하는 데 있다. 투자 심리의 바닥에는 좌절과 불안감이 있다. 웹툰 작가 ‘기안84’는 웹툰 ‘복학왕’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가끔은 기가 막힌다…이렇게 열심히 일해도…집 살길은 보이지 않는다….”
 
정부의 각종 억제책에도 불구하고 중저가 아파트에서도 신고가가 속출하고 전·월세는 껑충 뛰고 있다. 월세·전세·내집으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는 무너져 간다. 당황한 젊은이는 빚을 내서 큰돈을 벌려 한다. 조급하고 불안한 마음에서 나온 투자는 무리가 따른다. 또 사회 경력이 짧은 2030세대는 상대적으로 기업정보나 시장 흐름에 약하다. 정보 네트워크가 탄탄한 기관투자가나 작전세력과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국내외 금융·부동산 시장은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때엔 실패 위험도 크다. 미래의 한국을 이끌 2030세대가 투자에서 좌초하면 한국의 미래도 흔들린다. 이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수 있는 건 안정적인 일자리다. 기업하기 편해야 양질의 일자리가 쏟아진다. 그런데도 국회에선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마구 쏟아진다. 거꾸로 가고 있다.
 
김창규 경제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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