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수대] 부실수사

중앙일보 2020.10.14 00:25 종합 33면 지면보기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부실수사 때문에 검사들이 가장 많이 ‘다친’ 사건은 아마도 ‘이용호 게이트’일 것이다. 이용호씨의 이름은 2001년 여름 내내 서초동 법조타운의 몇몇 기자실 칠판에 ‘엠바고’(보도유예)라는 설명과 함께 나붙어있었다.
 
엠바고 설정 주체는 대검 중수부였다. 금융 사기꾼 한 명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중수부는 소 잡는 칼을 넘어 코끼리 잡는 칼 수준이었다. 하지만 업무에 치여 살던 법조기자들에게 엠바고 사건의 뒷배까지 캘 여력은 없었다.
 
기자들이 바빠지기 시작한 건 그해 가을, 시원치 않은 보도자료 한 장만 남긴 채 수사가 마무리된 이후였다. 이씨 뒤에 뭔가 있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퍼져나가더니 그해 5월 이미 이씨가 한 차례 긴급체포됐다가 석연치 않게 석방됐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이렇게 촉발된 이용호 게이트는 그 뒤 특별검사팀 수사와 중수부 재수사 등을 거치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급기야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홍업씨까지 휩쓸어버렸다. 검찰이 감추려고 했던 진실 중 하나는 검찰총장 동생이 이씨 회사에 채용돼 고액 급여를 받았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정권 및 검찰 실세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었던 이씨가 동향 브로커를 통해 정관계 로비를 시도했던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정권과 총장을 보호하기 위해 민망한 엠바고까지 걸고 사건을 ‘마사지’했던 검찰은 역효과를 제대로 봤다. 급조된 특별감찰본부는 이씨 긴급체포 건을 처리했던 서울지검장과 3차장의 옷을 벗기고, 특수2부장을 기소했다. 이후 문제의 검찰총장도 직을 내놓았고, 중수부장은 정권 실세에게 수사 기밀을 유출한 정황이 발각돼 기소됐다. 정권이 바뀐 이후 당시 요직에 있었던 간부들도 줄줄이 좌천되면서 검찰을 떠나야 했다.
 
한동안 ‘과잉수사’가 화두였던 서초동에 실로 오랜만에 ‘부실수사’라는 단어가 재등장했다. 검찰이 라임·옵티머스 사건 수사 과정에서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금품 공여 진술과 정·관계 로비 정황을 담은 문건을 확보했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검찰총장조차 해당 정보에서 소외돼 있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왠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듯하다. 이용호 게이트가 터진 건 정권이 끝나기 1년 반 전쯤이었다. 문재인 정부에 남아있는 시간도 그쯤 된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