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정배의 시사음식] 간장, 문화와 과학 사이

중앙일보 2020.10.14 00:23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정배 음식평론가

박정배 음식평론가

우리 음식의 기본은 간이다. 재료가 아무리 훌륭해도 간이 잘 맞아야 한다. 사람도 그렇다. 싱거운 사람, 짠 사람은 환영받지 못한다. 한식의 기본 베이스는 간장이다.
 
요즘 간장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식약처가 최근 혼합간장에 산분해간장 등의 함량을 잘 보이게 표시하도록 하는 ‘식품 등의 표시기준’ 일부 개정 고시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를 두고 찬반이 분분하다. 간장은 제조 방식에 따라 한식간장과 양조간장, 산분해간장, 양조간장과 산분해간장을 섞은 혼합간장, 효소분해간장으로 나뉜다. 산분해간장은 산을 이용해 간장의 주성분인 콩의 단백질을 단기간에 분해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자료에 따르면 국내 간장 시장은 혼합간장의 판매액이 1785억원으로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양조간장 32.9%, 산분해간장 11.1%, 한식간장 6.5% 순이었다. 그런데 혼합간장 성분의 대부분은 산분해간장이다. 왜 산분해간장이 나타났을까. 간장의 주원료인 콩의 단백질은 분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메주를 이용한 전통 방식으로는 1년이 걸리고 분해율이 30~50%에 그친다. 양조간장은 6개월에 60%, 산분해간장은 일주일에 90% 이상의 단백질을 분해한다. 산분해간장이 다른 간장보다 경제성이 뛰어난 것이다.
 
[사진 박정배]

[사진 박정배]

단백질은 분해돼야 감칠맛을 낼 수 있다. 간장은 한국의 고유어 ‘간’에 한자 장(醬)이 결합한 말이다. 간장은 오랫동안 어느 집에서나 담가 먹는 한국인의 주된 소스였다. 간은 ‘간간하다’는 말의 어근으로 짠맛을 뜻한다. ‘지렁’이라고도 하는데 어근은 ‘질’로서 역시 짜다는 말로 소금의 뜻도 지녔다. 조선시대에 간장은 간장(艮醬)·청장(淸醬)·수장(水醬) 등으로 불렀다. 『산가요록』(山家要錄, 1450)이나 『쇄미록』(瑣尾錄, 1591~ 1601)에서 보듯 한국 음식의 핵심 요소였다. 한국인은 짠맛을 소금으로 직접 내는 것보다 간장·된장·젓갈·장아찌·김치 등을 통해서 간접 섭취하는 걸 즐겼다.
 
전통 간장은 콩과 소금과 물로만 만드는 탓에 감칠맛과 짠맛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곡물 위주의 음식과 국물의 민족이었던 한국인에게 간장은 맛의 바탕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식 양조간장인 장유(醬油) 문화가 스며들었다. 콩과 소금에 밀이 들어간 장유는 감칠맛과 단맛을 두 축으로 한다. 해방 이후 일본인이 운영하던 간장공장은 북에서 온 실향민과 전쟁통에 장을 담가 먹을 수 없는 사람이 급증한 까닭에 살아남았다. 양조간장보다 감칠맛이 강하고 가격도 저렴한 산분해간장과 혼합간장은 아파트 때문에 사라진 장독대를 대신해 간장을 사 먹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우리 맛의 대세가 됐다. 간장은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영혼의 액체이자 맛의 중심이다. 간장은 과학이자 식문화다. 둘 사이의 대화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배 음식평론가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