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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옛날 냉장고는 나무로 만들었다고?

중앙일보 2020.10.13 10:00

[더,오래]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13)

‘얼음장수가 자전거 타고 얼음을 배달하던 시절’.

 
요즘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동빙고와 서빙고에 얼음을 보관하려고 겨우내 채빙 부역에 동원되던 시절, 우물 안에 플라스틱 통을 넣고 김치를 보관하던 시절, 동네마다 얼음장수가 자전거에 얼음을 잔뜩 싣고 배달하던 때, 얼음 50~100원이면 하루를 버티던 시절, 삼성전자에서 아이스박스를 판매하던 시절(하이콜드 피크닉 아이스박스), 여름이면 얼음을 사려고 얼음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시절을….
 
1957년 한강 채빙작업 모습. [사진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1957년 한강 채빙작업 모습. [사진 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냉장고가 없던 1800년대 중반 미국 가정에서는 유제품과 식품을 보관하기 위해 아이스박스를 사용했다. 당시에는 아이스박스를 ‘refrigerator(냉장고)’라고 불렀다. 영국에서는 냉장고를 ‘fridge’ 또는 ‘freezer’로 부르기도 했다.  
 
아이스박스 원리는 냉기의 특징을 이용한 것이다. 위쪽 칸에 얼음덩이를 두면 냉기가 하강하는 효과로 아래쪽 저장 공간이 차가워진다. 아이스박스 외형은 목재로 만들고, 내부는 단열재로 철제나 금속을 이용해 만든 금고 형태의 모습이었다. 아이스박스는 뭔가를 얼리지는 못했다. 오늘날 냉장고와 비교하면 수줍은 수준이었다.
 
초기 아이스 박스. [사진 Wikimedia Commons]

초기 아이스 박스. [사진 Wikimedia Commons]

 
한·중·일 삼국 중에서 서양의 근대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일본은 냉장고 역시 재빠르게 들여왔다. 일본에서는 아이스박스를 냉장상자(레이조바코, 冷藏箱), 리프리지레이터는 냉장고(레이조코, 冷藏庫)로 불렀다. 우리가 ‘냉장고’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도 아마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일본산 최초의 냉장고는 1930년에 토시바의 전신인 시바우라 제작소(芝浦製作所)에서 만든 냉장고가 제1호 가정용 냉장고이며, 중국에서는 1956년 베이징설화냉장고공장(北京雪花冰箱厂)에서 생산한 설화(雪花)라는 냉장고가 최초였다.
 
국내 시장에 처음 등장한 냉장고는 금성(현 LG전자)사의 GR-120 ‘눈표 냉장고’이다. 1965년에 일본 히타치사와 기술을 제휴해서 출시한 제품으로, G(Gold Star), R(Refrigerator), 120L의 줄임말이다. 이 제품은 지금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냉장과 냉동실이 일체형인 1도어로 구성되었고, 저장용량은 120L에 불과한 소형 냉장고였다. 국산 냉장고 1호가 생산된 곳은 부산 동래구 온천동의 종합전기기기 공장이었다.  
 
국내 최초의 냉장고인 ‘눈표 냉장고’는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국가등록문화재 제560호). 우리나라 최초로 상용화된 가정용 식품 보관 냉장고로, 냉장 산업의 기술발전과 산업디자인의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인정받았다는 이야기다.
 
1965년 동아일보에 실린 금성사의 국내 최초 전기냉장고 광고. [사진 LG전자]

1965년 동아일보에 실린 금성사의 국내 최초 전기냉장고 광고. [사진 LG전자]

국가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된 금성社의 냉장고 GR-120 광고.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장/김한용 사진연구소]

국가등록문화재 제560호로 지정된 금성社의 냉장고 GR-120 광고.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소장/김한용 사진연구소]

 
동아일보에 실린 제품의 광고를 보면 인텔리로 보이는 우아한 서양 여성이 신선한 과일이 담긴 볼을 들고 ‘한국 최초의 금성 전기냉장고’라는 문구를 가리키고 있다. 여성의 좌측에는 문이 활짝 열린 냉장고가 있고, 내부에는 통닭, 맥주, 통조림, 각종 과일 등의 식품이 채워져 있다.  
 
마찬가지로 금성사의 광고사진에는 한국 모델이 등장하지만, 냉장고 광고는 세련된 여성이 있고, 내부에는 서구식 식품이 보인다. 냉장고는 당시 주부에게 있어 깨끗하고, 편리하며 합리적인 서구의 근대적 삶을 표방하는 것이자, 동시에 그동안 꿈꿔왔던 서구식 부엌 설비 ‘시스템키친’의 시작점이면서 위시리스트의 1순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냉장고가 조왕신을 몰아내고 부엌의 주인이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너무 고가의 전자제품이라 서민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냉장고는 동네에 한두 대 있을 정도로, 부잣집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제품이었다. 당시에 600가구당 1대꼴로 보급될 정도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1968년 대졸 초임 월급이 1만1000원이었고, 냉장고의 출시 가격은 8만600원이었다. 서민에겐 여전히 금값이었다. 냉장고가 없는 가정은 여전히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보관해야 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모든 가정에 냉장고가 보급되는 양상을 보였다. 1965년 채 1%도 되지 않던 냉장고 보급률이 1986년 95%를 기록할 정도로 가격대가 어느 정도 평준화하자 서민층까지 상용화했다. 더욱이 한국의 주거 양식이 주택에서 아파트 중심으로 전환되면서, 비로소 키친에는 냉장고가 주인공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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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윤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연구원 필진

[심효윤의 냉장고 이야기] 아시아 지역의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그들의 삶과 문화를 관찰한다. 부엌과 음식문화를 연구하는 <냉장고 프로젝트>와 전통지식 및 무형문화유산을 기록하는 <위대한 유산 아시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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