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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현문우답] 왜 자꾸 내 인생에만 돌풍이 부는 걸까?

왜 자꾸 내 인생에만 돌풍이 부는 걸까?

중앙일보 2020.10.13 05:00
 
우리는 항상 바람을 탓합니다. “왜 내 인생에만 돌풍이 부는 거야?” “왜 나한테만 자꾸 나쁜 일이 생기는 거야?” 오늘 다룰 선문답 일화는 그 이유를 찾아갑니다. 정희윤 기자가 묻고, 백성호 종교전문기자가 답합니다.  
 
불교의 선문답은 도무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인 줄만 알았다. 거기에 파격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는 줄 몰랐다. 지난 편의 ‘숭늉 그릇’ 일화에도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깨달음이 담겨 있더라. 이번 편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건가.
 
“(바람개비를 훅 불면서) 자, 여길 보라. 이렇게 불면 바람개비가 움직인다. 그럼 이게 바람이 움직이는 건가? 아니면 종이가 움직이는 건가?”
 
정말 난감하다. 바람이 움직이나, 종이가 움직이나. 시작부터 꼼짝달싹 못하겠다. 이게 지난 편에서 다룬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라”랑 비슷한 건가?
 
“그거랑은 좀 다르다. 이게 그 유명한 중국 혜능 대사의 ‘깃발인가, 바람인가’ 이야기다.”
 
달마 대사로부터 내려오는 중국 선불교의 맥을 이은 육조 혜능 대사는 '선의 황금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중앙포토]

달마 대사로부터 내려오는 중국 선불교의 맥을 이은 육조 혜능 대사는 '선의 황금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중앙포토]

 
점점 더 궁금해진다. 그런데 혜능 대사가 누구인가?
 
“중국 당나라 때 인물이다. 원래는 나무꾼이었다. 글자를 읽을 줄도 몰랐다. 그런데 출가하자마자 행자 신분에 깨달음을 얻었다.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혜능 스님이 중국 광저우의 광효사라는 절에 있었다. 그런데 스님들이 두 패로 갈라져서 막 싸우고 있었다. 혜능 스님이 가서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랬더니 한 스님이 ‘저길 보라’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봤더니 높다란 장대 끝에서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아니,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데 왜 싸웠나? 그것도 출가한 스님들이, 게다가 두 패로 나누어서. 이유가 뭔가.  
 
“장대 끝에 매달려서 바람에 마구 펄럭이는 깃발. 그걸 보면서 한쪽은 ‘저건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쪽은 ‘아니다. 저건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그걸 놓고 싸움이 붙은 거다. 큰 논쟁이 벌어진 거다. 정 기자는 어떻게 보나. 무엇이 움직이는 것 같나?”
 
'바람인가, 깃발인가' 일화의 무대였던 중국 광저우의 광효사. [중앙포토]

'바람인가, 깃발인가' 일화의 무대였던 중국 광저우의 광효사. [중앙포토]

 
음…, 바람이 부니까 깃발이 펄럭이지 않나. 그러니까 바람은 불고, 깃발은 펄럭이고. 아, 알았다. 깃발과 바람, 둘 다 움직인다! 둘이 동시에 움직이니까.
 
“그것도 좋은 시도다. 혜능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저건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우와, 답이 멋지다. 생각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다. 역시 선문답 이야기에는 뭔가 숨겨진 한 방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따져보자. 움직이는 건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네 마음이다. 여기서 끝나면 뭔가 허전하지 않나. 이게 우리에게 던지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메시지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건 뭔가?
 
“우리의 삶에도 바람이 불지 않나.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바람이 분다. 때로는 산들 바람이, 때로는 돌풍이, 또 때로는 태풍이 몰아치기도 한다. 그래서 내게 소중한 것이 물에 떠내려 가기도 하고, 폭풍을 맞고서 쓰러지기도 한다. 그때마다 우리는 무엇을 탓하나?”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일까, 아니면 깃발일까. 이 물음에 혜능 대사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답을 던졌다. [중앙포토]

바람에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일까, 아니면 깃발일까. 이 물음에 혜능 대사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답을 던졌다. [중앙포토]

 
바람을 탓한다. 태풍을 탓하고, 내게 닥친 힘든 일을 탓한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나?”
 
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심란하고, 더 힘들어질 때가 많다. 왜냐하면 바깥에서도 바람이 불고, 그걸 탓하다 보니까 내 안에서도 바람이 불더라. 그러니까 안에서도 바람이 불고, 밖에서도 바람이 불고. 그래서 더 힘들어지더라.  
 
“맞다. 우리의 삶에는 늘 문제가 있지 않나.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문제. 그게 무엇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럼 답이 나온다. 이 사람 때문이야, 저 사람 때문이야. 아니면 이것 때문이야, 혹은 저것 때문이야.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라. 두 패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스님들과 똑같지 않나. 우리도 ‘이건 깃발 때문이야, 저건 바람 때문이야’ 하면서 바깥 탓만 하면서 살지 않나.”
 
아, 그래서 혜능 대사가 본질적인 해법을 제시한 건가?
 
“그렇다. 혜능 대사는 ‘나를 흔들어대는 뿌리를 아예 뽑아버리자’고 한 거다. 뿌리를 뽑으려면 먼저 그 뿌리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그게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더라. 다름아닌 내 마음이더라. 내 마음을 흔드는 뿌리가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더라. 그걸 정확하게 지적한 거다.”
 
 중국 광저우의 남화선사에 모셔져 있는 육조 혜능 대사의 등신불이다. [중앙포토]

중국 광저우의 남화선사에 모셔져 있는 육조 혜능 대사의 등신불이다. [중앙포토]

 
 
우리는 주로 바깥을 탓하면서 산다. ‘내게 주어진 삶의 문제, 온갖 번뇌. 그 원인은 바깥에 있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우리의 눈을 내면으로 돌리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 바깥만 바라보던 눈을 180도 돌려서 내 안을 보게 하는 거다. 거기가 불교에서 말하는 명상의 출발점이다.”
 
그럼 기독교에도 이런 게 있나? 눈을 180도 돌려서 내 안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말이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바깥을 향하던 눈을 180도 돌려서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일, 그걸 성경이 처음 기록된 언어인 그리스어로 ‘메타노이아’라고 부른다. ‘메타’는 바꾸다, ‘노이아’는 머리란 뜻이다. 머리를 바꾸다, 방향을 틀다. 그걸 우리 말로 ‘회개’라고 부른다. 가톨릭에서 ‘내 탓이오!’를 강조하지 않나. 그게 같은 뜻이다. 내게는 삶의 문제가 많다. 가만히 들여다봤더니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더라. 내 마음이 움직이는 거더라. 그러니 내 탓이오! 이게 기독교 회개의 출발점이고, 불교에서는 명상의 출발점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에 있는 예수 상. 예수는 이곳에서 십자가를 짊어진 채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 자리에 지금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중앙포토]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십자가의 길'에 있는 예수 상. 예수는 이곳에서 십자가를 짊어진 채 길바닥에 쓰러졌다. 그 자리에 지금은 교회가 세워져 있다. [중앙포토]

 
불교와 기독교가 이렇게도 통할 줄 몰랐다. 저도 이제 눈을 안으로 돌리는 연습을 좀 해야겠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뿌리는 내 안에 있으니까.  
 
“물론이다. 혜능 대사가 말했다. 움직이는 건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항상 내 마음이 움직일 뿐이다.”
 
혜능 대사의 바람과 깃발 이야기, 동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정희윤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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