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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은경의 질병관리청에 주문하는 네 가지

중앙일보 2020.10.13 00:27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질병관리본부(질본)가 2015년 메르스(MERS) 사태를 계기로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됐으나, 본부장이 지휘권을 발휘하기엔 제한이 많았다. 인사권과 예산권 및 관련 법령들을 보건복지부가 관장해 ‘무늬만 차관급’이라는 말을 들었다.
 

정교한 방역으로 전문성 살리고
우수 인재 모을 인사제도 만들길

또한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감염병과 만성질환을 직접 관리하는 중대한 업무를 맡는데도, 본부장은 국무회의나 차관회의에 참석할 자격이 없었다. 국정의 주요 결정 과정에서 배제됐다.
 
질본이 복지부에서 독립해 질병관리청으로 승격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에 따른 조직 개편과 역량 강화에 속도감을 촉구하기 위해 직전 질본 본부장을 지낸 필자가 몇 가지 제언해본다.
 
첫째, 인사권과 예산권이 독립됐으니 이를 동력으로 삼아 전문성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질병청에는 역학조사·공중보건·감염병·만성질환·희귀질환 등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민간기관 못지않은 여건에서 일하고 성과에 따라 승진하고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인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어쩌다 들어온 전문 인력들이 인사제도의 미비로 떠나는 장면을 적지 않게 봤기 때문이다. 질병청 소속으로 관련 분야의 전문대학원 과정을 설립하는 것도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둘째, 질병청의 위상 정립이 시급하다. 정은경 초대 질병청장은 현재 복지부 장관이 당연직인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장 직을 수행해야 한다. 해외유입 감염병 발생 시 ‘경계’ 단계에서 꾸려지는 중수본을 총괄 지휘할 수 있어야 감염병을 초기에 진압할 수 있다.
 
또한 각 부처 간 조정도 이때 시작해야 지금처럼 ‘심각’ 단계가 오래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초기에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각 부처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자문하고 정리해 주는 것이 청장의 역할이 돼야 한다.
 
이번에 수도권 2차 대유행을 초래한 국민의 경각심 해이도 일부 부처의 경계 완화 조치가 성급했기 때문이다.
 
전국 5곳에 지정된 광역 질병 대응센터는  병무청·산림청·식약처처럼 조속히 지청으로 개편해야 한다. 전문성과 즉각 대응이 핵심인 현장 방역을 위해서는 지청이 필수적이다. 지자체의 방역 인력을 일부 흡수해 질병청 직할 체제로 재편함이 마땅하다.
 
셋째는 더욱 정교한 방역정책 수립이다. 거리두기 단계를 좀 더 세분화하고 단계별 해당 업종을 구분하는 고·중·저 위험 시설 지정에도 객관적인 자료를 공개해서 국민이 납득하게 해야 한다.
 
생업을 제한하는 일이므로 대다수 국민이 수긍하는, 형평성 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술집은 열고, 학교를 닫는 부조화가 없어야 국민이 방역에 진심으로 협조하게 된다.
 
국민 모두의 참여 없이는 방역 인력과 의료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코로나19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알게 됐다. 위기·소통의 방역 기법을 더 적극적으로 펼쳐서 온 국민이 한 방향으로 가야 3차, 4차 대유행을 막을 수 있다.
 
끝으로 국립보건연구원의 역할 강화다. 보건 관련 기초·임상 연계 연구의 주도권을 부여해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닌 질병청의 전문성을 뒷받침하고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연구를 해야 한다.
 
연구 인력을 보강해 우수한 과학자들이 국가를 위해 일하게 하고 보건 관련 연구·개발(R&D) 예산의 주도권을 부여해야 한다. 진단검사 능력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한 것은 질병청과 보건연구원의 업적이다.
 
하지만 신속한 항체 검사, 백신 및 치료제 개발 등 평시에는 민간이 거들떠보지 않은 분야에 보건연구원은 항시 깨어 있어야 한다. 어깨가 무겁겠지만, 국민의 기대에 부응한다는 사명감과 방역의 최선봉이라는 자부심으로 질병청이 새로운 장을 열어가길 기대한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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