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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생·화] 프로야구 감독의 '품위'는 어디로 사라졌나

중앙일보 2020.10.12 17:09
팀이 정규시즌 3위를 달리는 시점에 갑자기 물러난 손혁 전 키움 감독. 구단은 '자진 사퇴'라고 발표했지만, 석연치 않은 뒷얘기가 많다. [연합뉴스]

팀이 정규시즌 3위를 달리는 시점에 갑자기 물러난 손혁 전 키움 감독. 구단은 '자진 사퇴'라고 발표했지만, 석연치 않은 뒷얘기가 많다. [연합뉴스]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2018년 11월, 키움증권은 프로야구 서울 히어로즈 야구단의 메인 스폰서가 됐다. 야구계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팀 컬러와 잘 어울리는 이름의 기업"이라고 했다. 키움은 젊은 유망주를 잘 뽑고, 잘 키워내는 구단으로 유명하다. 국가대표 주전 김하성과 이정후를 비롯해, 젊고 야구 잘하는 선수가 끊임없이 나온다. 프로 지도자 경력이 없었던 장정석 전 감독도 키움 지휘봉을 잡은 뒤 좋은 지도자로 성장했다. "감독까지 잘 키우는 팀"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장 전 감독이 이끈 키움은 지난해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를 차례로 꺾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위기를 한 발 먼저 차단한 장 전 감독의 현란한 마운드 운영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에 패했지만, "감독 장정석의 미래를 봤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었다.
 
오직 키움 수뇌부만 다르게 판단했다. 하송 신임 대표이사는 취임 5일 만에 장 전 감독에게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대신 손혁 SK 투수코치를 새 감독으로 불렀다. 많은 야구인이 개탄했다. "키움 구단의 장점마저 퇴색하게 한 처사다", "상을 줘도 모자랄 상황인데 의아하다", "감독 교체가 구단의 고유 권한이긴 해도 과정이 석연치 않다" 등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키움은 "장 전 감독이 이장석 전 대표이사의 옥중경영과 관련이 있다"는 핑계를 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이라는 게 들통났다. 거짓말을 하고 또 하다 통하지 않자 사과도 없이 입을 닫고 버텼다. 그렇게 고비를 넘겼다. 키움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키움은 눈치를 봐야 할 모기업이 없다. 구단 수뇌부가 아무리 외부의 비난을 받아도, 안에서 "우린 잘못 없다"고 넘기면 그만이다.
 
허민 이사회 의장은 바로 그런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해 구단에 온 사람이다. 키움은 '경영'이 아니라 '경영 감시자'로 허 의장을 영입했다. KBO에는 허 의장의 존재를 앞세워 "투명 경영을 믿어달라"고 읍소했다. 그런 허 의장이 이번엔 도리어 '구단주' 역할을 시작했다. 허 의장이 데려온 최측근 인사가 3개월도 안 돼 사내이사로 등재되더니, 지난해 말 급기야 대표 자리에 앉았다.
 
그로부터 채 1년이 되지 않아 또다시 '석연치 않은' 사유로 또 한 명의 감독이 물러났다. 허 의장이 선택했던 손혁 감독이 8일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진다"며 갑자기 물러났다. 키움이 정규시즌 3위를 달리고 있던 시점이다. 야구계에는 "허 의장이 손 감독의 선수 기용과 작전에 끊임없이 간섭하고 압박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키움은 "모든 게 뜬소문이다. 손 감독은 자진 사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순위 경쟁이 한창일 때 팀을 떠난 감독의 연봉을 내년까지 보전해주겠다고 했다. 키움처럼 늘 운영비 압박에 시달리는 구단이 말이다.
 
KBO리그는 철저한 '프로'의 세계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한 해 수백억 원을 들여 야구단을 운영한다. 각 팀의 간판선수는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고 그라운드에 나선다. 현장과 프런트는 서로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존중하면서 각자 전문 분야의 '프로'가 돼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키움 수뇌부는 구단을 그저 야구 게임의 일부로 여기는 듯하다. 손 전 감독이 떠난 뒤 감독 대행을 맡긴 인물은 1985년생인 김창현 퀄리티 컨트롤(QC) 코치다. 2013년 키움에 전력분석원으로 입사한 프런트 출신이다. 구단 수뇌부가 감독의 팀 운영을 쥐락펴락해도 저지할 힘이 없다. 돈 많은 야구 애호가가 구단 실권을 틀어쥐었고, 모든 야구인이 선망하는 '야구 감독' 자리의 품위는 땅에 떨어졌다. 
 
히어로즈는 이제 더는 '키움'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팀이 아니다. 사람을 키우기는커녕, 1년도 기다리지 못하고 버리는 팀이다. '허민 히어로즈'라는 비아냥이 틀리지 않는다.
 
배영은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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