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아이는 씨앗이다…자기만의 꽃을 피우게 하라

중앙일보 2020.10.12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3)

우리 집 아이들은 개성이 뚜렷하다. 첫째 아이는 내향적인 성격이라 골똘히 생각하고, 하나를 깊이 탐구하는 편이다. 여러 친구를 두루두루 사귀기보다는 마음이 맞는 몇몇 친구를 사귀는 걸 좋아한다. 
 
둘째 아이는 외향적이다. 집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고 여러 사람과 잘 어울린다. 엄마처럼 혼자 글 쓰는 일은 외로워서 못할 것 같다고 작가라는 직업은 아예 생각도 안 하겠다고 한다.

 
위탁가족으로 만난 막내 은지는 수줍음이 많다. 처음 가는 곳, 처음 보는 사람에겐 낯을 많이 가린다.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조물조물 만드는 걸 좋아한다. 40대 중반에 만난 은지를 통해 나도 육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2017년 오라동 메밀밭에서 은지랑 어진이. 둘째 아이는 외향적이고, 위탁가족으로 만난 막내 은지는 수줍음이 많다. 40대 중반에 만난 은지를 통해 나도 육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진 배은희]

2017년 오라동 메밀밭에서 은지랑 어진이. 둘째 아이는 외향적이고, 위탁가족으로 만난 막내 은지는 수줍음이 많다. 40대 중반에 만난 은지를 통해 나도 육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사진 배은희]

 
“똑바로 앉아야지!”

“미리 챙겨 놓고.”

“확인했어?”

열정만 앞섰던 초보 엄마 시절엔 잔소리를 해서라도 아이를 잘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원하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고 내가 원하는 열매를 맺길 바랐다. 어쩌면 나의 열등감이었는지도 모른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이는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을 품고 태어난 ‘온전한 씨앗’ 말이다. 두 아이를 키울 때 알았더라면 좀 달랐을 텐데…. 지금도 그 부분이 아쉽다. 그땐 내 욕구가 앞서 아이들을 세세히 관찰하지 못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시험 기간 며칠 전부터 교과서를 소리 내서 읽게 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서 또박또박 큰소리로 여러 번 읽게 했다. 시험 범위를 다 읽으면, 그 횟수만큼 동그라미에 색칠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서로 힘 빠지는 일이었다. 아이를 관찰하고 아이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아야 하는데, 내 입장에서 내 방법으로만 가르친 것이다. 씨앗을 관찰하지는 않고 손에 움켜쥐고, 비비고, 쪼개고, 갈아버렸다.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 ‘너는 어떤 씨앗이니?’는 그런 관점을 잘 보여준다. 바람에 흩날리던 홀씨가 노란 민들레꽃을 피우고, 쪼글쪼글 못생긴 씨앗이 수수꽃다리를 피우고, 꽁꽁 웅크린 씨앗이 모란을 피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이렇게 묻는다. “너는 어떤 꽃을 피울래?” 
 
내 뱃속에 작은 씨앗으로 심어진 아이들.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서 세상에 살아있는 씨앗으로 태어난 아이들. 그 아이들을 각각의 씨앗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곽지에서 은지. 위탁가족이 된지 6년째다. 간혹 은지를 보면서 ‘어떤 꽃을 피울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은지야 넌 어떤 꽃을 피울래?“ [사진 배은희]

곽지에서 은지. 위탁가족이 된지 6년째다. 간혹 은지를 보면서 ‘어떤 꽃을 피울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은지야 넌 어떤 꽃을 피울래?“ [사진 배은희]

 
아이들은 꽃을 피울 씨앗이다. 커다랗고 눈에 띄는 꽃이 아니면 어떤가? 아름답지 않은 꽃이 없는데…. 어떤 씨앗인지, 어디에 심어야 하는지, 잘 관찰하고 심고 가꾸면 결국 자기만의 꽃을 피울 것이다. 이걸 깨달은 부모는 한발 짝 뒤로 물러서서 지켜보는 여유도 부릴 수 있다.

 
물을 주고, 병충해를 막아주면서 아이를 지켜본다면 아이도 행복할 것이다. 더 빨리 자신의 색깔을 찾을 것이다. 이렇게 늦게 깨달은 것이 우리 아이들에겐 내내 미안하지만 내겐 은지라는 또 하나의 씨앗이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위탁가족이 된 지 6년째다. 우리 가족은 모두 문과 성향인데 은지는 이과 성향을 보인다. 움직이는 장난감을 분해하고, 다시 맞추는 걸 좋아한다. 수학 문제집이 재미있다고 잠도 안 자고 더하기 빼기 문제를 푼다.

 
간혹 은지를 보면서 ‘어떤 꽃을 피울까?’ 즐거운 상상을 한다. 먼 훗날 은지다운 꽃을 피웠을 때 그 향기는 어떨까? 내가 잘 품으면 건강하게 자라 아름다운 꽃을 피우겠지? 살랑살랑 흔들리며 은지만의 향기를 전하겠지?

 
“은지야 넌 어떤 꽃을 피울래?”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배은희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필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제주도에 사는 시인. 낮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색다른 동거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는 게 아니라, 작고 여린 아기와 하는 동거다. 우린 동거인이면서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가족’이다. 우리의 색다른 동거가 ‘사랑’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동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광고 닫기